도저히 이기기 힘든 경기였다. 지난 19일 저녁 사이타마 방문 경기 끝무렵 터진 간판 수비수 최진철의 극적인 만회골이 전북 팬들에게 4강행 희망을 부풀게 했지만 정작 안방으로 와서는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최강희 감독이 이끌고 있는 전북 현대(한국)는 26일 저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본선 8강 토너먼트 두 번째 경기에서 우라와 레즈(일본)에 0-2로 완패했다. 2006년 이 대회 챔피언에 오르며 K-리그의 자존심을 한껏 높였던 전북의 발걸음은 그렇게 멈췄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 그것도 축구이며 실력인데...

 

전세기를 타고 동해를 건너온 수천 명의 우라와 팬들이 전주월드컵경기장 남쪽 골문 뒤 응원석을 붉게 물들이며 보기 드문 긴장감을 연출한 이 경기는 시작 후 4분도 지나지 않아 일이 터졌다.

 

그 일은 방문 팀 우라와 레즈의 선취골이었다. 그런데, 이는 명백하게 제1부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 오심이었다. 골을 넣은 다나카 다츠야는 공격형 미드필더 폰테가 오른발로 중거리슛을 터뜨리는 순간 전북의 최종 수비수 정인환보다 분명히 앞에 있었고, 문지기 성경일의 몸에 맞고 흘러나온 공을 손쉽게 밀어넣은 것이었다.

 

축구 규정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오해가 많기로 유명한 오프사이드 규정의 국제축구평의회 결정 사항에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다.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던 선수가 골포스트나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온 볼을 플레이 하거나 상대편을 맞고 튀어나온 볼을 플레이하는 것"

 

곧, 그 위치에 있던 선수가 이처럼 이득을 얻어도 오프사이드 반칙이라는 것이다. 바로 다나카가 이 규정에 걸린 것이었는데, 제1부심의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먼저 한 골을 넣어도 시원찮을 경기에서 심판의 어이없는 직무유기로 먼저 골을 내주는 바람에 전북 선수들은 평정심을 잃기 시작했다.

 

22분, 빠른 발놀림을 바탕으로 공격의 물꼬를 터 줘야 할 정경호가 빨간 딱지를 받고 말았다. 상대 벌칙 구역 안쪽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다가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유도했다는 판정이었다. 우라와의 핵심 수비수 츠보이가 다리를 내밀며 그를 막아섰지만 정경호가 넘어지는 동작은 과장된 행동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카릴 이브라힘 알 감디 주심은 가차없이 그에게 두 번째 노란딱지를 꺼내들며 쫓아냈다. 정경호는 이미 8분 전에 제2부심에게 던지기 소유권에 대해 항의하다가 노란 딱지 한 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북의 역전 가능성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67분에는 뼈아픈 자책골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팬들의 응원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더 줄어들고 말았다. 오심으로 꺾이기 시작한 기세가 거기서 다시 살아나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주저앉은 것이었다.

 

전북의 맏형 최진철은 선취골을 내주고 2분 쯤 지나서 상대 미드필더 스즈키가 넘어져서 치료를 받고 있는 사이에 다른 필드 플레이어들을 향해 양 손가락을 머리에 올려가며 '집중'이라는 말을 크게 외쳤다. 하지만 이는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물론, 결정적인 장면마다 전북 선수들이 보기에 억울한 판정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거기에 너무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제대로된 축구를 못했다. 거기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선수들 대부분의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시야가 좁아진 선수에게는 자꾸만 무리한 동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선택의 폭도 좁아질 뿐더러 함께 뛰는 주위의 동료들에게 힘만 빠지게 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경기 시작 직전 양팀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는 순간, 전북의 정경호는 활짝 웃는 표정을 지으며 우라와 선수들과 눈을 맞추었다. 그러한 여유가 경기 내용에 반영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경기 양상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것'

 

보이지는 않지만 축구장에서 정말 필요한, 축구 실력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2007.09.27 09:51 ⓒ 2007 OhmyNews
전북 AFC 챔피언스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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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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