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부산국제영화제 심볼

12회 부산국제영화제 심볼 ⓒ 성하훈


한주 앞으로 다가온 부산국제영화제가 영화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10월 4일 개막하는 부산영화제를 향한 관객들의 열정은 지난 20일 시작된 일반상영작 예매를 통해 올해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예매 개시 20분 만에 팔린 표만 4만 여장. 예매 첫날 56회 작품이 매진됐고 7만 여장의 표가 팔리며 흥행대박을 예고했다. 지난해는 예매 첫날 팔린 표가 5만 5천여 장이었으나 거의 20%가 늘어난 수치다. 영화제 측에 따르면 '5만장은 낮 12시쯤 넘어섰다'고 한다. 

왠만한 화제작들은 대부분 예매시작 30분 만에 매진됐고, 매진된 표를 구하는 애타는 요청만이 홈페이지에 가득했다. 개막 1주일을 앞두고 매진된 상영이 270여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12회째를 맞는 올해 영화제도 관객의 열기만 보자면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열리는 국제영화제는 모두 3개.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다. 그렇지만 규모나 열기 면에서는 부산이 가장 앞선다. 영화제별 특성이 있다지만 외형적 수치는 전주와 부천이 쉽게 따라오지 못 할 정도다.

전체 관객 수를 놓고 볼 때 올해 제일 많은 관객이 들었다는 전주가 6만 여명이었고 부천이 5만 여명 정도. 이에 비해 부산의 평균 관객은 18만 여명으로 최대 20만 여명에 육박할 때도 있어, 다른 영화제의 3~4배 정도다. 예매 첫날 대란이 벌어지는 것은 부산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일 정도다.

아시아 영화는 더 이상 변방아닌 세계 영화의 중심

<M> 12회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인 이명세 감독의 영화 <M>

12회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인 이명세 감독의 영화 ⓒ 부산국제영화제


그렇다면 관객들은 왜 이토록 부산국제영화제에 열광할까? 관객들이 부산을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들이 가장 꼽는 부분은 역시 수준 높은 영화다. 전주와 부천도 좋은 영화들이 많이 찾지만 부산의 상차림은 이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영화제 위상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프리미어’다. 위상이 높은 영화제일수록 전 세계 최초로 상영되는 월드프리미어나 자국을 제외한 외국에서 상영되는 인터내셔날 프리미어를 기본 조건으로 한다. 외국영화라 해도 타 대륙의 영화가 다른 대륙에서 처음 상영된다면 지역의 영화제들 중에서 우위로 대접 받는다.

 12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12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 부산국제영화제

올해 부산영화제의 프리미어는 모두 92편. 이중에서 월드프리미어가 66편이고 인터내셔날 프리미어는 26편이다. 아시안 프리미어는 101편으로 프리미어의 숫자는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부산영화제가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 로테르담영화제가 올해 월드프리미어 45편, 인터내셔날 프리미어 25편, 유럽 프리미어 30편을 유치한 것과 비교할 때 충분히 점수를 받을 만하다"고 밝혔다.

또한 "부산의 라인업에 대한 해외 언론의 반응은 예년과 많이 다르다"면서 "아시아영화에 초점을 맞추지만, 동시에 아시아영화가 더 이상 변방이 아닌 세계무대의 중심에 올라서게 지원하겠다는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여기에 아시아 각 나라의 작품들과 해외 유명 영화제의 수상작, 3세계의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상차림은 부산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해마다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유혹하는 부산영화제에 그 중에서 몇 작품만 선택해야 하는 관객의 행복한 고민은 깊어질 따름이다.

영화 축제가 주는 낭만성과 전염성, 그리고 각종 부대행사의 흥겨움은 여기에 더해지는 부분이다. 해운대의 풍경과 수영만의 바닷바람, 남포동의 축제분위기가 결합되며 안겨주는 영화제의 정취는 부산이 갖고 있는 독특한 장점인 것이다.

지난 5회 영화제 때 비 내리는 날씨에 상영된 <어둠 속의 댄서>는 부산영화제의 낭만적 정취를 대표하는 사례다. 당시 취소냐 강행이냐를 놓고 고민하다 상영된 영화에 무려 3000여명의 관객들이 몰려든 것. 비옷을 입고 슬픈 영화에 빗물과 함께 눈물 흘리던 관객들의 모습을 보고 한 외국 게스트는 장엄하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검열철폐 시위 2회 영화제 기간중 표현 자유 및 검열철폐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원 감독과 독립영화인들

▲ 검열철폐 시위 2회 영화제 기간중 표현 자유 및 검열철폐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원 감독과 독립영화인들 ⓒ 부산국제영화제


스크린쿼터 반대 1인시위 지난해 개막작 <가을로>의 김대승 감독이 영화제 기간 중 한미 FTA 반대 및 스크린쿼터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 스크린쿼터 반대 1인시위 지난해 개막작 <가을로>의 김대승 감독이 영화제 기간 중 한미 FTA 반대 및 스크린쿼터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 스크린쿼터문화연대


검열철폐 시위를 벌이는 독립영화인들,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치는 영화인들, 안티조선 시위를 벌이는 배우의 모습 등은 문화적 해방구의 역할도 감당하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또 다른 단면이기도 하다.

2회 때 국가보안법으로 수배중인 영화<레드헌트> 조성봉 감독을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상영관으로 이끈 것이나, 97년 대선을 앞두고 남포동을 찾은 이회창 후보를 끝내 야외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만든 것은 문화 해방구 ‘영화제’를 지키려는 부산의 남다른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상세대의 문화 갈증, 영화제를 살려내다

이렇듯 관객들에게 주는 부산의 매력은 상당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들의 바탕은 관객들의 열정에 기인한다. 관객의 지지가 부산영화제를 키워냈기 때문이다.

처음 개막했던 96년 1회 영화제는 국제영화제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많았던 영화제였다. ▲빈번한 상영사고 ▲티켓 발권 시스템 문제 ▲영화제에 있어서는 안 될 검열로 삭제된 필름의 상영 등 곳곳에서 어수선함을 드러낸다.

남포동 피프광장 1회 영화제 때 남포동 야외무대 앞을 가득 메운 관객들

▲ 남포동 피프광장 1회 영화제 때 남포동 야외무대 앞을 가득 메운 관객들 ⓒ 부산국제영화제


그러나 이를 만회시킨 것은 작품마다 몰려드는 젊은 관객들의 열정이었다. 극장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관객들은 상영관을 메우며 영화 열기를 폭발시켰다. 그 바탕에는 영상세대들의 문화적 갈증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중심은 일본영화였다. 알음알음 동호회를 통해 화질 나쁜 비디오로 문화적 욕구를 해소하던 젊은 관객들에게 제대로 판을 벌여준 부산영화제는 놓칠 수 없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특색 있는 작품들이 관객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당시 외신이 소개한 부산은 '거리에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역동적이고 활기찬 영화제'. 마치 굶주린 이리떼처럼 남포동을 가득 메우며 극장 앞에서 진 치던 젊은이들 덕택에 부산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영화제'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2000년 5회 영화제 때 부산을 찾은 외국감독들도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젊고 활력이 넘치는 영화제”라며 한결같은 찬사를 보낸다. ‘18만 명이 넘는 전체 관객 중 10대와 20대가 80%를 차지하고 영화제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 대부분이 20~30대인 영화제는 지금까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가 부산을 키워내고 그를 바탕으로 영화제 또한 좋은 영화로 보답하는 구조가 부산영화제 발전의 중요한 키워드인 것이다.

하지만 부산영화제를 지지하는 만큼 관객들의 갖는 서운함 또한 적지 않다. 10년을 넘겼음에도 관객들에 대한 배려는 더뎌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1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집결호> 티켓

1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집결호> 티켓 ⓒ 성하훈


경북 의성에 사는 손 아무개 씨는 이번 영화제를 앞두고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두 번 정도를 제외하고는 10여년 가까이 매년 영화제를 찾을 만큼 ‘피프 폐인’이었던  그가 이번에는 단 한편도 예매를 못하며 영화제에 불편한 마음이 생긴 것이다. 

원인은 이번에도 겪게 된 예매대란이었다. 해마다 전쟁처럼 겪던 인터넷예매는 영화제측이 아무리 개선했다고 해도 믿을 수 없어 예매처로 추가된 ‘GS25 편의점’을 선택했는데 결과는 실망뿐이었다.

영화제 상품권인 예매권까지 구입한 손씨는 부근에 ‘GS25’가 없어 아침 일찍 1시간 거리인 안동까지 달려갔건만 ATM 기기 오류는 그에게 단 한 장의 표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예매권의 스크래치를 모두 벗겨내 현장예매 활용도 불가능해지면서 들뜬 마음이 짜증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조직위에 거세게 항의해 온라인 예매가 가능한 새로운 예매권을 받기로 했지만 "올해는 영화제랑 멀어져야겠다“면서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라 늘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실망입니다. 관객들이 늘 몰려들며 위해주니까 영화제가 관객들을 우습게보면서 오만해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피프 폐인이여, 우리의 명절을 즐기자!

사실 올해 예매시스템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해도 빠짐없이 말썽을 일으키던 인터넷예매가 원활하게 이뤄지며 불만건수도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매처가 늘어나면서 관리 부담역시 늘어났고 예매처별 환경을 세세하게 파악하지 못한데서 오는 한계는, 많지는 않지만 일부 관객들의 불편을 초래했다.

이에 대해 영화제 전산담당 스태프 천민권씨는 “예매전용이 아닌 금융거래를 같이 사용하는 ATM기기이다 보니 일부 GS25 편의점 예매에 불편이 있었다”고 말하고 “2800여 점포의 ATM기 상태를 파악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관객들의 불편을 겪게 된 데에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올해 발생한 문제점들은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지석 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다.

▲ 김지석 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다. ⓒ 성하훈


영화제를 키워 온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 개선은 부산영화제가 앞으로 더욱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2년째를 맞으며 부산영화제는 이제 영화 애호가들에게 하나의 트렌드가 돼 버렸다. 가을이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고, 영화를 보기 위해 부산까지 가는 일은 당연한 일로 인식되고 있다.

12살 소년으로 성장한 영화제 또한 올해 ‘Beyond Frame(경계를 넘어서)’라는 새로운 슬로건으로 미래의 도약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가야 할 부분으로 여겨진다. 관객의 열정과 지지가 없다면 부산국제영화제의 존재 가치 또한  낮아지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앞두고 김지석 프래그래머가 관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그래서 더욱 의미있게 들린다.

"피프 폐인’ 여러분. 저희는 지난 1년간 정말 열심히 준비를 했습니다. 올해도 우리의 명절날(10월 4일~12일), 한자리에 모여서 미친 듯이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사랑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멍석을 열심히 깔겠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