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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새벽 5시다. 우리 회원 3명이 새벽의 해인사를 보기 위해 차에 오른다. 성보박물관 앞에 차를 세우고 깜깜한 길을 찾아 일주문으로 향한다. 예전에 몇 번 와 봤지만 아직 날이 어두워 길을 더듬거린다. 일주문에 이르니 5시 15분이다. 일주문 앞에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전’이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에 이르니 한 떼의 사람들이 벌써 절에서 나온다. 템플스테이하는 사람들이겠거니 했더니 비로자나부처님 친견법회에 참석하고 나오는 길이란다. 부지런도 하시지, 5시20분에 벌써 절에서 나오니. 우리도 비로자나불을 보기 위해 보경당으로 들어간다. 통일신라시대 헌강왕 9년(883년)에 만들어진 목조 비로자불이 두 분 안치되어 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 조명 속에서 보는 부처님이 참 경건해 보인다.

 

 

다시 법당을 나와 아침의 여명 속에서 구광루를 지나 대적광전 앞마당에 이른다. 대적광전은 해인사의 중심법당이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법당에서는 스님들이 염불을 하면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 불빛 속으로 부처님의 모습도 보인다. 신성한 느낌이 밖으로 퍼져 나온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신도들도 절을 하며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다.

 

법당 앞마당에는 3층석탑과 석등이 있다.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물 배치다. 해인사에서는 이 3층석탑을 정중탑이라고 부른다. 해인사가 떠가는 배의 형국이고 그 가운데 탑이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석등은 구조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조각기법이나 예술성은 평가할 만하다. 이들 두 작품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다.

 

 

잠시 후 푸르른 여명이 사라지고 대지가 밝아온다. 어떤 사람이 소원을 빌며 탑돌이를 한다. 신선한 아침의 기도, 영험이 있을 것 같다. 나는 대적광전을 돌아 수다라장(修多羅藏)으로 간다. 수다라장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의 고유 명사이다. 그런데 공사를 해서 대적광전 뒤 계단으로 오르는 문이 차단되어 있다.

 

 

팔만대장경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 사람 소리가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그곳 퇴설당(堆雪堂)에서 스님들이 활동을 하는데 무작정 들어갈 수도 없다. 상황을 보기 위해 나는 담을 돌아 수다라장 뒤편으로 간다. 뒤편 언덕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수미정상탑이 있다. 이 탑은 배 모양의 해인사에 돛대역할을 하도록 1986년 만들어졌다. 8각7층의 석탑으로 높이는 14m다.

 

이곳에서 앞을 내다보니 해인사 당우의 지붕선 너머로 건너편 매화산이 보인다. 옅은 안개 속에 보이는 산들이 정말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번에는 수다라장을 돌아 학사대 전나무를 살펴본다. 통일신라 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곳을 떠나면서 지팡이를 꽂았는데, 이것이 지금의 전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최치원 선생이 857년에 태어났으니 이 나무의 수령이 1000년은 넘었다는 얘기가 된다.

 

학사대 전나무를 내려와 다시 장경판전을 들어가기 위해 서쪽 방향의 입구를 찾았다. 다행히 보살이 그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8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8시가 되려면 아직도 2시간이나 남았으니 오늘 대장경 보기는 틀린 것 같다. 미련을 두지 않고 장경판전을 내려온다.

 

 

이번에는 서쪽에 있는 궁현당, 경학원, 수월당 등 스님들의 공부방을 지나 내려온다. 아침이라 스님들이 웃통을 벗고 세수도 하고 운동도 한다. 이내 범종각 앞에 이르러 나도 감로수를 한잔 마신다. 나무를 통해 물이 떨어지게 하니 운치도 있고 선적(禪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곳 큰 마당에서 아까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한 의상조사 법성게도(法性偈道)를 발견한다.

 

法性圓融無二相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습이 아니며
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은 변함없이 본래부터 고요하다.
    […]
窮坐實際中道床 마침내 실제로 중도자리에 앉게 되니
舊來不動名爲佛 옛부터 변함없는 그 이름이 부처로다.

 

 

 

망상을 버리고 법을 따라 부처의 경지에 이르라는 얘기로 들린다.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법성게도를 따라 한바퀴 돈다. 나 외에도 두어 사람 신자가 길을 따라 돈다. 한 7~8분쯤 걸리는 길이다. 이제 해인사 경내는 다 본 셈이다. 또 의상조사의 법성게도 체험 했으니 내려가야겠다.

 

해탈문을 향해 가다보니 우리 회원들 몇이 이제야 절로 들어선다. 그들과 인사하고 일주문 쪽으로 내려가니 좌우에 쭉쭉 뻗은 나무들이 나를 호위하는 듯하다. 일주문에 내려와 뒤를 돌아보니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들이 정말 아름답게 피어있다. 보라색의 무릇꽃과 가야산 해인사라는 현판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약 1시간 반에 걸친 새벽 해인사와의 만남은 머릿속에 좋은 기억으로 저장된다.

 

덧붙이는 글 | 합천군 두번째 이야기로 해인사 편이다. 해인사는 문화유산과 큰 스님들이 많아 4회 정도 연재해야 할 것 같다. 


태그:#해인사, #세계문화유산, #고려대장경 판전, #대적광전, #3층석탑과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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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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