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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맞이하는 해질무렵부터 어둠이 올 때까지의 시간은 늘 숙연함을 느끼게 해준다.
▲ 대천어항 노을 바닷가에서 맞이하는 해질무렵부터 어둠이 올 때까지의 시간은 늘 숙연함을 느끼게 해준다.
ⓒ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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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절기가 바뀌는 것은 '비'가 알려준다고 합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비가 내리면 새싹을 틔우기 위한 봄비이고, 봄에 핀 나무의 새순들이 커지기 시작하면 비가 내리고, 무성한 잎으로 키우려면 더 많은 물기가 필요하지요. 그 때는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이 됩니다.

비가 줄기차게 쏟아져도 그렇게 덥다가 어느 순간에 내리는 비로 인해 서늘해 집니다. 서늘함이 있어야 열매가 여물어 가기 때문이지요. 가을이 갈 즈음이면 또 그간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겨울비가 내리고요.

계절을 바꾸는 비가 내리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올여름 끝에는 계절을 바꾸느라고 비가 내리는 것인지 계절을 지키느라고 비가 내리는 것인지 비가 줄기차게 내렸습니다. 다행히 한가위 연휴에는 비가 내리지 않고 한가위 보름달도 볼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한가위' 고향에 오시는 길에, 아니면 고향 다녀가시는 길에 가족과 함께 또는 연인과 함께 들러서 고요한 마음을 가져볼 만한 곳을 몇 곳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곳들은 도심 속에서 정신없이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한가위라는 이름만큼 오래된 명절과 꿈이 담긴 보름달처럼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또 흑백사진처럼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게 해 줄 것입니다.

사람과 자연의 적당한 경계를 만들어 주는 '꽃지바다'

꽃지바다
 꽃지바다
ⓒ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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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 말없이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누그러지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충남에 여러 바다가 있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계절 가장 잘 어울리는 바다는 뭐니뭐니해도 푸른 '안면도' 바다 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꽃지해수욕장이 있는 '꽃지바다'는 사람과 자연의 적당한 경계를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요즘처럼 태풍이 몰려오기 직전이라면 그 바람에 바닷물이 쏟아질 것 같은 푸른 하늘을 넓게 만날 수 있습니다. 주변에 한적한 바람 아래 쓸쓸함을 느낄 수 있는 철 지난 해수욕장이 많이 있습니다. 또 안면도와 보령 삽시도-대천어항으로 떠나는 배들을 가슴으로 안아주는 영목항도 있습니다.

간월도 간월암
 간월도 간월암
ⓒ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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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바다를 가기 전에 서해안 고속도로 하행선 위를 달린다면 서산시 부석면에 있는 간월도의 간월암도 괜찮습니다. 간월암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곳입니다. 암자는 바다 위에 있어 바닷물이 들어오면 길이 막히고 바닷물이 나가면 길이 드러나 찾아갈 수 있습니다. 무학대사께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간월암은 절의 규모는 작지만 바다 위에 떠 있는 절이라 그곳에 서면 세상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을 확인하게 됩니다.

대웅전, 산신각 등 몇 개의 건물이 있지만 바다에 떠 있는 절인 만큼 용왕전의 모습은 간월암 풍경의 백미입니다(서해안고속도로-홍성나들목-서산A방조제 지나면서 간월암 이정표 있음). 또 간월도는 어리굴젓으로 유명하고 굴밥·해물칼국수 등 바다와 관련된 먹을거리도 풍부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해가 진다면 대천어항을 권하고 싶습니다. 대천시내에서 어항을 거쳐 대천해수욕장으로 가는 해변도로가 몇 년 전에 개설되었습니다. 저녁 무렵, 특히 가을 저녁 무렵 이 길을 가다 보면 대천 시내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빠지면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갯벌과 저녁해 지고 어둠이 내리는 사이까지 풍경이 고요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절로 가는 길이 국보급인 서산의 '개심사'

개심사 가는 길은 길이 국보급으로 마음이 저절로 열리는 곳이다.
▲ 개심사 가는 길 개심사 가는 길은 길이 국보급으로 마음이 저절로 열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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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보다 숲이 그리운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절 중에서 절로 가는 길이 국보급에 속하는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에 있는 개심사를 소개합니다. 주차장에서부터 절에 이르기까지 흙길이며, 아름드리 홍송들이 맞아주는 개심사는 충남 4대 사찰 중의 한 곳입니다.

특히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경지라는 이름의 연못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데 위치한 범종각 기둥, 심검당 기둥 등은  자연스럽게 휘어진 기둥을 사용해 자연스런 멋을 더합니다.

절 이름 그대로, 솔향을 맡으며 호젓한 산길을 걸어 절에 이르면 세속에서 살면서 옹졸했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열리는 곳입니다(서해안 고속도로에서 서산나들목으로 나와 운산-한우개량사업소를 지나면 개심사 이정표).

또 내륙지방에 개심사 가는 길 못지않게 절로 가는 길이 아름다운 계룡산 갑사도 있습니다. 인공조림이지만 갑사로 가는 오리숲은 걷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갑사 안에서는 보물 건물들도 중요하지만 대적전 앞, 단단한 화강암을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주물러 만든 부도 앞에 잠시 서서 한 석공의 마음을 만난다면 앞으로 남은 생이 겸허해 질 것입니다.

바다로, 산길로, 절로 이르는 길 위에 있으니 즐거워야 할 한가위가 왠지 철학책처럼 무거워진 듯합니다. 그렇다면 아이들과 함께 추억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곳을 추천하겠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추억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곳

금산군 남이면에 있는 태영박물관에 가면 지역별 항아리의 쓰임새, 생김새를 알 수 있다.
▲ 태영박물관 금산군 남이면에 있는 태영박물관에 가면 지역별 항아리의 쓰임새, 생김새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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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좋고 물 맑기로 유명한 금산에 있는 태영박물관(관장 임태영·금산군 남이면 하금리·041-754-7942)에 가면 전라도 항아리, 충청도 항아리의 사연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으로 처음에 입장료가 좀 비싸다 하겠지만 입장료 속에는 박물관 야외에서 마실 수 있는 찻값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 지역의 항아리(옹기) 모양새와 쓰임새를 살펴볼 수 있는 야외전시장과 백제, 가야, 신라 등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쓰였던 귀중한 토기들을 볼 수 있는 실내전시관이 있습니다. 야외전시장에는 많은 우리 꽃들도 자라고 있습니다.

연기군 서면 청라리에 있는 연기향토박물관(관장 임영수)는 30∼40년 전 우리 생활사에 흔히 써 왔던 가구, 농기구 등 생활용품부터 시작해 연기군 출토유물·전래유물·민속유물 등 1300여 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박물관 건물은 작지만 그 안에 있는 유물은 백화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합니다. 찬찬히 살펴보며 자녀와 함께 갔다면 근래 생활용품의 쓰임새에 대해 설명하거나 맞춰보기 등을 하면 좋고,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면 가마며 고리짝 등 옛시절을 회상하기 좋은 곳입니다. 근처에 백제 때 절 비암사가 있습니다.

정말 아끼는 숨은 명소, 무량사와 오천성

만수산 무량사는 오래 된 느티나무와 백제계 탑, 우아한 극락보전이 한 데 어우러져 고풍스런 풍경을 자아내는 고찰이다.
▲ 무량사 만수산 무량사는 오래 된 느티나무와 백제계 탑, 우아한 극락보전이 한 데 어우러져 고풍스런 풍경을 자아내는 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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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가 정말 아끼는 곳을 세상에 꺼내 놓겠습니다.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절 무량사와 보령시 오천면에 있는 오천성입니다.

무량사는 세상과 절의 경계가 적절하여 누구에게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는 곳입니다. 일주문이 일품인 무량사는 넉넉한 마당과 보물인 극락전, 백제계탑인 5층석탑, 오래된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고풍스러운 풍경은 여느 절에서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이곳은 또 매월당 김시습 선생께서 생을 마친 곳이라 쓸쓸함이 더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 돌을 밟으며 왜군으로부터 나라를 지켰을 고려며 조선의 수군을 떠올리게 하는 오천성은 오천초등학교 뒤편에 있습니다.

성을 한 바퀴 돌다보면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오천항이 발아래 있는데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고즈넉합니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성벽을 걷는다면 오랜 세월을 사람들 발아래서 숨을 죽이며 살아온 돌의 숨결을 만날 것입니다. 이곳 오천항은 갱개미회무침과 키조개구이가 유명합니다.

지금까지 충남에 있는 바다도 보고 절도 보고 박물관도 보고 성도 걸었는데 가고 싶은 곳이 안 나왔다고요? 그렇다면 조선시대 정자인 여하정과 홍주목의 동헌이었던 안회당 마루에 앉아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홍성 군청 뒤편에 있는 안회당은 조선시대 목조건물로 잘 보존되어 있고 여하정은 안회당 뒤편으로 있는 넓은 잔디밭과 오래된 버드나무와 어우러져 조선시대 선비가 되어 시 한 수가 저절로 나올 듯한 풍경을 갖고 있습니다. 여하정 앞에 안회당, 안회당 앞에 홍주아문, 아 그앞에 조양문 등 직선으로 홍성의 조선시대 관아건물이 21세기인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우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아무 이유없이 기분 좋은 곳

충남 청양군에 있는 11만평 넓이의 고운식물원에는 수천종의 수목과 꽃이 있다.
▲ 고운식물운 충남 청양군에 있는 11만평 넓이의 고운식물원에는 수천종의 수목과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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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향토박물관
 연기향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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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시대가 어떻고 철학이 어떻고 이런 곳보다 그저 보면 남녀노소 누구나 아무 이유없이 기분좋은 곳을 소개하겠습니다.

하늘빛 땅빛 물빛이 아름다운 청양에 있는 고운식물원(원장 이주호, 청양군 청양읍 군량리·041-943-6245)의 꽃들과 나무들입니다. 고운식물원은 1995년 나무와 꽃들을 심기 시작해 5년 전, 세상 사람들에게 문을 연 중부권 최대 식물원입니다.

산악지형의 식물분포도를 그대로 살린 친환경식물원으로 이름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야생화와 미선나무·히어리 등 우리 전통 나무들을 찬찬히 살펴 볼 수 있고 조각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11만평의 식물원에서 살고 있는 수천 종의 나무와 꽃, 식물들은 어릴 적 가난 속에서도 꿈을 키웠던 한 소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입니다.

식물원 위쪽에는 고추장과 된장을 재래식으로 만들어 전통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키는 청양고추랜드가 있습니다. 고향집 장독대를 떠올리게 하는 수백 개의 전통항아리 속에서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로 빚어 만든 고추장과 된장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구경할 만한 곳을 소개했는데 사실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유적이나 유물보다 들판 어느 곳에서나 농민들이 키우고 있는 벼와 고추·콩·수수 등 곡식들의 자라는 모습이 가장 감동적입니다. 사람과 함께 생명을 같이하는 들판의 곡식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유물이고 유적이며 우리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고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존재이고 풍경일 것입니다.

고향 오시는 길이 좀 막히더라도 푸른 하늘을 보며 고향의 맑은 바람을 생각하며 즐거운 귀향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태그:#꽃지바다, #개심사, #무량사, #오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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