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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안 좋아 썰렁한 장터의 모습에 다소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만 같아라'던 생선가게 아줌마의 돈 세는 행복한 모습이 있어서 덩달아 행복한 순간이었다.
▲ 행복한 미소 경기가 안 좋아 썰렁한 장터의 모습에 다소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만 같아라'던 생선가게 아줌마의 돈 세는 행복한 모습이 있어서 덩달아 행복한 순간이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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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장은 3일과 8일에 선다. 장터는 장옥이 기와집으로 새롭고 깔끔하게 단장돼 분위기가 옛날과 영 딴판이다. 허나 낡은 시골장터 때부터 이어온 풍류는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 난장에 나앉아 물건을 파는 다양한 표정의 상인들, 햇밤과 햇과일, 풍요로운 각종 농수산물, 시골장터 사람들의 정과 푸근함은 옛 모습 그대로다.

오후에 찾은 장터는 한산하다. 들목에는 할머니들이 고구마줄기를 다듬고 있다. 구례 봉덕리에서 사는 김옥자(68) 할머니는 고구마줄기하고 고들빼기, 쪽파 서너 단을 해가지고 장터에 나왔는데 쪽파는 다 팔았다고 한다.

“장날마다 온디, 고구마 대 껍질 벗기고 손질해서 한단에 2천원에 팔아.”
“돈 많이 벌었어요?”
‘느께느께 오후에 왔어. 쬐깨 갖고 와 논깨 돈이 안 돼.”
“대목장인데 왜 늦으셨어요?”
“사방대가 아퍼 갖고  병원에 갖다 왔어.”

들목에는 할머니들이 고구마줄기를 다듬고 있다.
▲ 고구마줄기 들목에는 할머니들이 고구마줄기를 다듬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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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몸이 성한 곳이 없다고 한다. 나이 들어 몸이 쇠약해지니까 온 몸이 쑤시고 아파서 힘에 겹다는 할머니는 그래도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싫다는 내색 한번 않고 일일이 묻는 말에 대꾸를 한다.

일본 왜구가 연상되는 이색적인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손자와 함께 장터에 나왔다. 낚시하러온 일본인에게서 구했다는 모자가 왠지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리 올랐따요. 추석 돌아온다고...”

구례장터는 약재시장으로 유명하다. 구지뽕나무, 모과, 골담초, 겨우살이, 갈근, 느릅나무뿌리, 적하수오, 심지어 윙윙대는 말벌이 가득한 말벌 집까지 망태기에 담아 팔고 있다. 지리산자락에서 캔 더덕은 1kg에 5만원, 밭에서 재배한 더덕은 1kg에 1만원에 거래된다. 더덕향이 그윽하다.

“더덕이 비싸네.”
“그리 올랐따요. 추석 돌아온다고.”
“자~ 존(좋은) 놈만 치렀어(골랐어)”
“쫌(조금) 더 줘”
“오늘이 대목장인디 밸라(유별나게) 그라요.”

망태기에 담겨 있는 윙윙대는 말벌과 말벌 집
▲ 말벌 망태기에 담겨 있는 윙윙대는 말벌과 말벌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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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농산물이 진열되어 있다.
▲ 곡물전 온갖 농산물이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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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존(좋은) 놈만 치렀어(골랐어)”
▲ 더덕 “자~ 존(좋은) 놈만 치렀어(골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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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 잡화전이 있는 풍경
▲ 구례장터 철물점, 잡화전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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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건조된 붉은 고추가 포대에 가득하다.
▲ 고추 잘 건조된 붉은 고추가 포대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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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농산물이 진열되어 있는 곡물전, 쇠를 다루는 대장간, 신발가게, 옹기전, 철물점, 잡화전, 뻥튀기 아저씨, 없는 게 없다. 구례장은 만물상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아주머니가 옷가게 앞에서 서성이다 옷가게로 들어선다. 구례 산성리에서 왔다는 박점순(63)씨다. 옷가게 주인과 흥정을 한다. 옷이 얼마냐고 묻자 2만5천원, 재차 묻자 2천원을 깎아주겠단다.

옷가게 주인과 옷을 흥정한다.
▲ 옷가게 옷가게 주인과 옷을 흥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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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가격을 물어보세요. 물어볼 때마다 2천원씩 깎아줄지도 모르니까.“
“!”
“아이들 옷 안 사요?”
“할머니가 사주면 맘에 들간디~, 엄마가 사주겠지.”
“또, 뭘 사셨어요?”
“김치거리 사고, 추석에 쓸 생선 샀어.”
“돈 얼마 썼나요?”
“7만원 갖고 왔는데 다 썼어.”

어물전은 왁자하다.
▲ 어물전 어물전은 왁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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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넘친 어물전

드넓은 장터에서 가장 활기찬 곳이 어물전이다. 한 아주머니가 "3천원, 3천원"하고 외친다. 오징어 한 마리에 천원인데 떨이로 5마리를 3천원에 가져가라고 한다. 서대 7마리에 5천원, 어시장은 생기가 넘친다. 하기야 제수에 가장 중요한 게 어물이니.

장사 잘 되느냐고 묻자 정금자(67)씨는 한 장(23일)이 남아서 별로라고 말한다. 말과 다르게 돈이 두툼하다. 돈을 제법 쏠쏠하게 번 모양. 돈을 세는 표정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

“돈 많이 벌었네요. 장사 오래 하셨나 봐요.”
“아이고, 오래됐어. 생선가게만 30년째여.”
“3천원어치만 주세요”
“이리 가져와 따듬어주께.”

“전어 만원 짜리가 오천원!” 떨이다.
▲ 전어 “전어 만원 짜리가 오천원!” 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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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큰 거문도 먹갈치 한 마리에 3만원이다.
▲ 거문도 먹갈치 엄청 큰 거문도 먹갈치 한 마리에 3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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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행인들이 지날 때마다 소리친다.

“자~ 산 꽃게, 전어, 한치, 떨어 가세요.”
“아이고, 갑장 오랜만이네.”
“문어 없나?”
“문어는 진즉 떨어져 부렀는디, 한치나 가져가.”
“문어하고 갈치와 조기 사러왔어.”

오후 5시가 되자 파장이다.

“전어 만원 짜리가 오천원!”
“요거(손질해 놓은 붕장어)는 얼마요?”
“만원입니다.”(작은 거 다섯 마리, 큰 거 세 마리)

신나는 장터구경

엄청 큰 거문도 먹갈치 한 마리에 3만원이다. 거문도까지 가야 구경할 수 있는 귀한 갈치를 사진 찍었으니 다음에 오면 꼭 사가라고 아주머니가 당부한다.

“이건 참고등어. 아무 때나 안 나와.”
“그거 주세요.”
“프라이판을 달군 다음 그대로 구어, 기름을 넣으면 안 돼.”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자 장터는 분주해진다. 차양막이 바람에 솟구친다.

젠피(향신료)는 되에 가득 담아 5천원이다.
▲ 젠피 젠피(향신료)는 되에 가득 담아 5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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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중앙초교에 다니는 어린이들. 들뜬 마음으로 찾은 시장 구경에 신이 났다.
▲ 신나는 장터구경 구례 중앙초교에 다니는 어린이들. 들뜬 마음으로 찾은 시장 구경에 신이 났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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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피(향신료)는 되에 가득 담아 5천원이다. 드렁크 팬티 3장에 5천원, 대빗자루,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를 골라내는 키, 연탄집게, 리어카에 가득 쌓인 소금, 난장에 야채. 구례장터에는 있을 건 다 있다.

밤도 익어갑니다. 감도 익어갑니다. ‘엄마! 몇 밤 남았어요?’ 그 옛날 설렘으로 손꼽아 기다리던 추석. ‘오늘만 같아라!‘ 말하던 추석이 가까워졌다.  들뜬 마음으로 시장을 찾은 구례 중앙초교 어린이들도 구경에 신이 났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구례장터, #대장간, #약재시장,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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