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전거여행 도중 만난 아이들과 기념촬영하는 글쓴이.
 자전거여행 도중 만난 아이들과 기념촬영하는 글쓴이.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당신의 희망을 세 가지만 알려주십시오!"

지난해 5월 한 대한민국 청년이 자전거 세계일주에 도전했다. 당시 그가 지닌 거라곤 자전거(조나단) 한 대와 단돈 30만 원, 그리고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희망질문'뿐이었다. 그 주인공 박정규는 그렇게 70일 동안 중국 4431km 종단을 이뤄냈고, 이어 인도와 미국 횡단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올해 6월부터는 쿠바를 시작으로 남미대륙을 한창 누비고 있다.

이런 박정규의 일거수일투족은 1년 4개월 넘게 <오마이뉴스> 독자들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 도중에도 오지의 PC방을 뒤져가며 틈틈이 생생한 사진과 함께 자신의 소식을 기사로 전했기 때문이다. 흔히 여행을 모두 마친 뒤 후일담 쓰듯 정리해 나오는 말끔한 여행기와 달리 박정규가 현장에서 쏘는 글과 사진 속엔 언뜻 다듬어지지 않은 듯하면서도 현장감이 살아있다.

자전거 중국종단을 정리하는 첫 보고서

<대한민국 청년 박정규의 희망여행> 표지
 <대한민국 청년 박정규의 희망여행> 표지
ⓒ 한국방송출판

관련사진보기

이 책 <대한민국 청년 박정규의 희망여행>(아래 희망여행)은 자전거 세계일주의 시험대였던 중국 자전거 종단을 정리한 첫 보고서인 셈이다.

여기에는 그날그날 올린 기사에서 모두 담을 수 없었던 숨은 이야기들, 그리고 여행 도중 만난 중국 친구들의 '희망노트'에 꼭꼭 눌러쓴 21명의 희망메시지가 오롯이 담겨있다.

중국말이라곤 '니하오' '짜이찌엔' 정도 인사말이 고작이던 그였기에, 출판을 위해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야 비로소 희망노트에 담긴 낯선 언어들을 번역할 수 있었다고 한다.

"1. 평화로운 세계를 희망합니다. 2. 우리의 우정이 계속되기를 희망합니다. 3. 훌륭한 음악가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당신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 리쉬에천(14세)

"1. 박정규씨 당신이 중국에 온 걸 환영합니다. 2. 당신의 여정이 언제나 순조롭길 바랍니다. 3. 당신이 다시 중국에 올 수 있기를 바라고,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짜오홍샤(25세)

자신의 희망 세 가지를 적으라고 건넨 희망노트엔 정작 낯선 이방인의 순탄한 여행을 빌고 그와 다시 만나길 바라는 친구들의 희망이 가득했다. 뒤늦게 우리말로 번역돼 나온 희망메시지에 중국 친구들 하나하나의 얼굴과 추억을 교차시키며 눈시울이 붉혔을 글쓴이의 모습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마음을 여는 순간 우리는 모두 친구

"중국은 변수가 많아서 분명히 한달 안에 한국으로 돌아올 거야!"
"자전거 수리를 좀 더 배우고 떠나라!"


몽골부터 4431km를 자전거로 달려 쿤밍에 도착한 글쓴이.
 몽골부터 4431km를 자전거로 달려 쿤밍에 도착한 글쓴이.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이런 주변의 충고와 우려가 아니었더라도 시작은 역시 무모했다. 국내 자전거여행 경험도 일천한 그가 낯선 땅, 얼마나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 여행에 홀몸으로 뛰어든 것부터 그랬다. 그곳에는 돌발적인 자전거 펑크, 악천후, 심한 갈증, 음식·숙박 문제 등 숱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글쓴이가 여행하면서 만난 순박한 현지인들의 크고 작은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우려들은 곧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글쓴이조차 중국인들이 왜 이 낯선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에게 친절을 베푸는지 의문을 품는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 손님이라서? 한류 열풍 때문에? 그들과 같은 자전거 타는 사람이라서?….

내가 보기엔 글쓴이 특유의 인간미와 적극적인 친화력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기에 자신의 국토를 자전거로 종단하겠다고 나선 외국인이 독특한 모험에 대한 현지인들의 동경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면서 세계일주는 큰돈을 들여야 한다는 선입견을 몸소 깨고 있다.

자전거 세계여행의 매력은 단지 저렴한 경비에만 있는 건 아니다. 자전거 여행이 지닌 느림의 미학이 얼마나 많은 인연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글쓴이는 역시 증명하고 있다.

중국종단여행의 종착지인 쿤밍에서 만난 리차오·왕매이즈 커플. 쿤밍에 머문 며칠동안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에게 온갖 친절을 베푼 그들을 위해 글쓴이는 마지막 저녁 모처럼 '거금'을 들여 케이크를 준비하고 촛불 파티를 벌인다. 촛불의 우정 앞에서 그는 '울림'을 느낀다. 여기서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는 자전거 세계일주를 멈추지 않게 만드는 힘의 원천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나의 심장은 9626번째 종이배를 타고 방금 바다에 도착한 것처럼 터질 듯이 뛰고 있다. 머리, 어깨, 가슴, 손, 다리, 발바닥까지 온 몸으로 심장의 울림이 퍼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 울림을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다시 길을 떠난다." (책 마무리 대목)

중국종단 종착지인 쿤밍에서 글쓴이가 리차오, 왕매이즈를 위해 준비한 케이크.
 중국종단 종착지인 쿤밍에서 글쓴이가 리차오, 왕매이즈를 위해 준비한 케이크.
ⓒ 박정규

관련사진보기



대한민국 청년 박정규의 희망여행

박정규 지음, 나래울(한국방송출판)(2007)


태그:#희망여행, #자전거, #박정규, #중국종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