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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술은 내 정성이 깃든 술이야, 한 잔씩 하고 올라가지.”
“어, 정말 향기롭고 맛좋은 술인데.”
등산길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래서 그동안의 산행에서는 금했다. 그런데 이날은 정말 어쩔 수 없이 그 금기가 깨졌다.

 

지난 11일 경북 봉화와 안동시 경계지역에 있는 청량산을 찾은 것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아주 오랜 친구 때문이었다. 본래 청량산 산행계획은 10월 중순쯤이었다. 그런데 무려 50년 가까이 잊고 지냈던 친구의 초청을 받은 것이다.

 

지난 주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그 친구의 소식을 듣게 된 일행 한 사람이 전화통화를 했는데, 우리들이 전국 100대 명산을 등산 중이라고 하자 당장 그쪽지역에 있는 산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획을 앞당겨 청량산을 찾게 된 것이다.

 

서울을 출발한 우리일행들은 경북 안동시에서 그 친구와 반갑게 만나 그와 함께 청량산으로 향했다. 안동에서 청량산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 첩첩산중 길. 이곳이 강원도인지 경상도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 때 우리나라 여느 산과는 아주 색다른 풍경의 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우와! 저 앞산 좀 봐? 저런 풍경, 꼭 옛날에 그린 한 폭의 중국 산수화 같지 않아?”
“아니야. 산수화가 아니라 저건 얼마 전에 다녀온 중국의 천문산 같아.”
낙동강 상류의 물줄기가 휘감아 도는 뒤편으로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은 정말 한 폭의 산수화 같기도 하고, 정말 그 유명한 중국의 천문산 같은 모습이었다.

 

낙동강줄기를 따라 잠깐 달리자 오른편에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를 건너자 청량산 입구다. 입구에서는 도립공원지역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국립공원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도립과 군립공원들이 입장료를 받는 것은 또 무슨 경우야?”

“아, 그거야, 등산객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 청소비에 등산로도 정비하고 하는 제반 경비로 받는 거겠지. 수익자부담 원칙이라는 것,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럼 국립공원은 그런 비용이 들지 않아서 받지 않는 건가?”

그래도 일행 한 사람은 아무래도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길옆에 커다란 바위 한 개가 서있는 입석에 승용차를 주차해놓고 산행에 나섰다. 처음 산길은 평탄했다. 그것도 오르막이 아닌 산을 옆으로 안고 도는 길이어서 걷기는 더욱 수월했다.

 


 


산꾼의 집에서 맛과 향기가 뛰어난 전통약차 구정차를 얻어 마시다

 

“우리 저곳에 들러 차 한 잔씩 들고 올라가지.“
안동시에 살고 있는 옛 친구가 앞장을 선다. 등산로 옆 오른편에 있는 집이었다. 지붕 처마 밑에는 수많은 종들이 매달려 있고 입구의 장승이며 돌탑 그리고 장독대까지 있는 분위기가 여느 집과는 전혀 달랐다.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살펴보니 처마 밑 문틀 위에 걸려 있는 문패에 “산꾼의 집”이라고 써있다. 그래도 차를 끓여 파는 찻집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먼저 들어간 친구가 향긋한 찻잔을 눈앞으로 내민다.

 

차 맛이 매우 좋았다. 향기뿐만이 아니었다. 혀끝에 감도는 맛 또한 여느 전통차와는 질이 달랐다. 맛과 향을 음미하며 한 잔을 마시고 나니 한 잔 더하겠느냐고 묻는다. 내가 사양하자 주인 남자도 한 잔 더하라고 권한다.

 

“이 분이 바로 산꾼의 집 주인이신 이대실씨야. 이 선생님은 달마화 명장1호로서 달마화를 아주 잘 그리시는 분이기도 하지.”
안동 친구가 산꾼의 집 주인을 간략히 소개해 준다. 집안은 온통 전통색으로 가득했다. 집안에 있는 소품들이 모두 고풍스러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맛과 향기가 뛰어난 전통약차인 구정차는 집 주인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대접하는 것이었다. 집안 한쪽에는 아예 커다란 보온통이 설치되어 있었다. 맛과 향기가 특별한 이 차는 아홉 가지 약초를 섞어 끓여 만들어서 구정차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인은 쟁반 가득히 아주 독특한 모양의 찻잔들을 준비해 놓아 이 집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자유롭게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찻잔은 차를 마신 사람들이 씻어서 엎어 놓았다.

 

산꾼의 집 이대실씨는 차를 무료로 대접하는 일 외에도 달마도를 그리고 대금과 가야금을 즐기는 아주 독특한 예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차를 얻어 마시고 밖으로 나와 마당 옆에 있는 창고 같은 곳을 들어가 보니 이곳에도 고무신이며 옛날 축음기와 장구, 손때 묻은 생활도구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산꾼의 집 옆은 나지막한 담장을 사이에 두고 청량정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고즈넉하지만 기막힌 경치의 천년고찰 청량사

 

산꾼의 집을 나와 잠깐 올라가니 청량사가 저 만큼 앞에 바라보인다. 그런데 청량사 입구에서 바라본 경치가 정말 대단하다. 불쑥 솟아오른 바위절벽과 왼편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또 하나의 산봉우리 아래 자리 잡은 절집의 풍광은 매우 빼어났다.

 

우선 아래쪽에 서있는 범종각 너머로 언덕 위에 서 있는 크고 멋들어진 늙은 소나무와 언덕 가장자리에 뾰족하게 하늘을 찌른 5층탑이 뒤쪽의 금탑봉 바위봉우리를 배경으로 절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또 약간 멀리 보이는 유리보전과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건물들도 뒤편의 절벽을 배경으로 단아한 풍경을 연출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범종각이 있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범종각 마당에는 다듬지 않은 통나무기둥의 작은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 정자 안쪽 천정에서 대나무를 타고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이 작은 정자가 바로 아주 특이한 모양의 약수터였다.

 

범종각 터에서 올려다 보이는 예의 5층탑과 소나무, 그리고 금탑봉의 모습은 가히 절경이라고 할만 했다. 또 절벽 아래 세워져 있는 유리보전의 모습 또한 여간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돌계단을 올라 유리보전 앞에 이르렀다. 이 청량사에는 대웅전은 따로 없었다. 이 유리보전이 대웅전인 셈이었다.

 

이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는 고려말에 홍건적의 난을 피해 한 때 이곳에서 노국공주와 함께 머물렀던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이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전남 순천에 있는 승보사찰 송광사의 16국사 중 마지막 국사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가 중창했다.


 

 

술 때문에 산에 오르지 못한 일행 한 사람

 

“여기서 간단히 간식을 들고 올라갈까?”
청량사를 둘러보고 본격적인 등산길에 나섰다. 그런데 모두들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준비해간 간식들을 꺼내 펼쳐 놓았다.

 

“자! 우선 한 잔씩 들라고. 이건 내가 특별히 만든 아주 맛있는 술이야.”
그런데 그때 안동에서 합류한 옛 친구가 술병 하나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산에 오르면서 술을 마시는 것은 매우 위험한데. 마시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괜찮아, 별로 독하지도 않은 술인데 뭘. 적당히 마시면 오히려 좋지.”
우선 내가 술 마시는 것을 만류해 보았다. 그러나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특별히 준비해왔다는 맛있는 술 한 잔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과일과 빵, 그리고 다른 간식과 함께 몇 잔씩의 술을 마셨다. 모두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하는 등산이어서 기분들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산길이 장난이 아니었다. 철도 침목을 잘라서 만든 계단 오르막길은 경사가 매우 급했다.

 

모두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허위허위 가파른 계단길을 올랐다. 그런데 그 계단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등산을 시작했을 때였다.


“어, 난 도저히 안 되겠는데, 난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내려갈 거니까. 그냥들 올라가지.”

등산길에서는 내가 항상 맨 뒤를 따라 올라간다. 이 날도 내가 맨 뒤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는데 바로 내 앞에서 헐떡이며 올라가던 친구가 비틀비틀 뒤로 돌아섰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보니 여간 창백한 모습이 아니었다. 다른 일행들은 벌써 저만큼 앞서가고 있었다.

 

뒤로 돌아선 그는 등산로 옆 바위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가 아예 드러눕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었다. 억지로 올라가게 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상태를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손목을 잡고 맥박을 짚어보니 다행히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잠깐 앉아서 살펴보자 그의 맥박도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얼굴빛도 좋아지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다른 일행들과 함께 올라가라고 한다. 그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체크해보고 일행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깐 올라가다가 휴대전화로 연락해보니 내려가고 있는 중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올라가라고 한다.

 

결국 이날의 산행에서 그는 낙오자가 되었다. 그는 그대로 청량사를 거쳐 주차장까지 내려가 승용차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반갑고 좋은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마신 몇 잔의 술이 결국 산행을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산수풍경이 아주 특출한 영남의 작은 금강산에 취하다

 

“우와! 저 봉우리와 이 골짜기 좀 봐? 이건 완전히 중국의 장가계 저리가라구먼.”
술 때문에 등산을 포기하고 도중에 내려간 친구와 헤어져 조금 올라가자 왼편으로 나온 정말 멋진 봉우리와 골짜기 풍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모두들 너무나 멋진 전망에 눈길을 떼지 못한다.

 

이곳에서부터 오르는 산길은 훨씬 수월했다. 길도 그리 가파르지 않고 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30여분을 오르자 한 봉우리에 도착했다. 자란봉이었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멀리 이 산의 정상인 정인봉(870m)을 비롯하여 줄기줄기 이어진 능선과 봉우리들이 펼쳐져있는데 아름답기 짝이 없다.

 

반대편으로는 아주 뾰족하게 솟아오른 바위봉우리가 기막힌 절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탁필봉과 자소봉이었다. 자소봉 뒤쪽으로도 능선으로 이어진 봉우리들과 산록의 풍경이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산 정말 대단한 산이구먼. 이렇게 멋진 산을 왜 지금껏 모르고 지냈지?”
도중에 하산한 친구가 기다릴 것을 생각하여 정인봉 등산은 접었다. 대신 자소봉을 거쳐 하산하기로 했다. 정말 붓끝처럼 끝이 날카로운 탁필봉을 돌아 자소봉을 오르는 길은 철계단이었다.

 

자소봉 표지석은 봉우리 뒷면 편편한 곳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오른 등산객들이 사진 찍기에 바쁜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또한 일품이었다. 둘러보는 사방의 경치가 어느 한 곳 허술한 곳이 없었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퇴계 이황의 청량산가다. 이 산의 미관이 정말 숨겨놓고 혼자만 즐기고 싶었을 만큼 아름다웠다는 퇴계의 시구가 마음에 닿는 순간이었다. 청량산은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과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축융봉 등 12봉우리를 육육봉이라 부른다.

 

또 봉우리마다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와 어풍대, 밀성대, 풍형대, 학소대, 금가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등의 대(臺)가 있고, 김생굴 금강굴 등 8개의 굴에 전설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산이다.

 

자소봉에 올랐다가 곧 하산길로 나섰다. 어차피 모든 봉우리와 명소들을 둘러볼 수는 없었다. 자소봉에서 곧장 하산길로 나섰다. 다시 산꾼의 집 앞을 지날 때는 몇 사람의 등산객들이 밖으로 나오며 구정차의 향기와 맛을 칭찬하고 있었다.


다시 입석으로 내려오니 차 안에서 쉬고 있던 친구가 창밖으로 두 손을 내밀고 흔든다. 혼자서 몇 시간동안 기다리느라 지루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다시는 산에 오를 때 술 마시지 말아야지.”
그의 얼굴에 술 때문에 산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히 넘쳐나고 있었다.

 

그러나 옛 친구들을 대접하려는 안동친구의 깊은 우정으로 안동시내에서 그가 특별한 맛이라고 권한 요리로 점심 겸 저녁을 먹을 때 곁들인 소주 한 잔은, 산행을 마친 친구들의 피로는 물론 산행을 포기한 친구의 아쉬움까지 깨끗이 날려버리고도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청량산, #청량사, #산꾼의 집, #자소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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