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도루가 홈런보다 더 상대팀을 흔들어 놓는 경우도 있죠."

지난 15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17차전 중계를 하기 위해 잠실구장을 찾은 한 방송 관계자는 경기 전 담소를 나누다 도루 이야기가 나오자 도루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물론 바로 득점으로 연결되는 홈런보다 한 베이스만을 진루할 수 있는 도루가 무조건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그러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묘하게도 이날 맞붙은 두산(144개)과 한화(43개)는 8개 구단 중 도루 1위와 8위에 올라있는 팀이다. 두 팀의 도루 차이는 101개에 달하고, 한화의 총 도루 개수보다 두산 이종욱 혼자 성공한 도루 개수(43개)가 많다. 그야말로 두산은 8개 구단 중 최고의 '스피드 팀'인 셈이다.

이렇듯 두산이 스피드를 업그레이드 시킨 데는 '쌕쌕이 3총사'로 불리는 이종욱-고영민-민병헌의 활약이 있었다. 김동주-최준석 등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거포가 없는 두산이 매서운 공격력을 갖게 된 것도 빠른 선수들이 기동력을 앞세워 상대팀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상대 내야진을 흔들어놓는 '공포의 발'을 지닌 두산 쌕쌕이 3총사들의 활약상을 살펴보자.

'최고의 톱타자'로 거듭난 이종욱

두산의 톱타자 이종욱 이종욱

▲ 두산의 톱타자 이종욱 이종욱 ⓒ 두산 베어스


이종욱은 방출 선수에서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톱타자로 거듭난 두산의 '신데렐라'다.

영남대를 졸업하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후 곧바로 상무에 입대했다. 이후 2005년 말 상무를 제대한 뒤 현대에서 방출 당했을 때만해도 이종욱을 눈 여겨본 팀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2006시즌을 앞두고 선린상고(현 선린 인터넷고) 동기인 손시헌의 소개로 어렵사리 두산에 입단했지만, 그가 주전으로 도약하리라고 생각한 사람 역시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종욱은 이러한 냉소적인 시각을 뒤로하고 2006시즌 12경기에 나와 타율 .284에 51도루를 기록해 많은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03년 프로 데뷔 이후 단 한 경기도 1군에서의 기록이 없던 이종욱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전벽해'와도 같은 기량 성장이었다.

지난 시즌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이종욱은 과거에 자만하지 않고 올 시즌 더욱더 만개(滿開)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반짝하는 것보다 꾸준함'이 더 어려운 프로의 세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진 셈이다. 16일 현재 114 경기에 출장. 타율 .315 1홈런 43타점 77득점에 43개의 도루를 기록 중인 이종욱은 이제 두산을 넘어 8개 구단 톱타자 중 단연 최고로 손 꼽힐 만큼 성장한 상태다.

비록 LG의 톱타자 이대형(49개)에게 밀려 도루 부분 2위로 '2년 연속 도루왕' 등극은 쉽지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좌투수에게 약해 매 경기 주전으로 출장하기가 쉽지않은 이대형과 달리 이종욱은 좌-우타자를 가리지 않고 강한 모습을 보이는 데다 타격감 역시 절정에 올라있기 때문에 도루왕에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다.

프로에서 '극과 극'을 몸소 경험한 두산의 톱타자 이종욱이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빠른 발에 공격력까지 돋보이는 고영민

두산의 3번 타자 고영민 고영민

▲ 두산의 3번 타자 고영민 고영민 ⓒ 두산 베어스


182cm-73kg이라는 체격을 지닌 고영민은 얼핏봐서는 키에 비해 왜소해 보인다. 따라서 얼핏보면, "과련 저렇게 왜소한 선수가 풀타임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2002시즌 처음 1군 무대를 밟은 고영민의 성적은 16경기에 나와 안타 1개(타율 .100)와 도루-타점을 한 개씩을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가능성은 있었지만, 프로 무대에서 바로 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잠잠하던 고영민은 2006시즌 붙박이 2루수이자 팀의 대선배인 안경현을 1루로 밀어내고, 2루 자리를 꿰찼다. 그의 주전 기용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고영민은 116경기에 나와 타율 .270에 2홈런 29타점 14도루를 기록해 이러한 우려를 일축했다.

지난 시즌 '맛보기 활약'을 보여준 고영민은 올 시즌 역시 제 몫을 하고 있다. 두산이 치른 117경기에 모두 나와 타율 .271에 11홈런 62타점 84득점 31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선수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는 3번 타순을 시즌 중반부터 맡고 있지만, 충실히 제 몫을 다해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도루를 31개(3위)나 기록했다는 것 역시 고영민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하는 힘이다. 으레 3번 타자들은 도루 부분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영민은 다른 3번 타자에 비해 다소 뒤지는 장타력이나 타율을 기동력으로 만회하고 있을 정도다.

'기동력있는 3번 타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고영민이 과연 남은 정규시즌과 가을 잔치에서도 지금과 같은 뛰어난 활약을 계속해 줄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음지에서의 활약이 돋보이는 민병헌

두산의 외야수 민병헌 민병헌

▲ 두산의 외야수 민병헌 민병헌 ⓒ 두산 베어스


앞에서 언급한 이종욱과 고영민이 두산의 젊은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면, 28개의 도루로 이 부분 4위에 랭크되어 있는 민병헌은 '음지에서의 활약'이 돋보이는 선수다. 비록, 화려한 공격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하위 타순에서 상위 타순으로 찬스를 이어주는 역할과 외야 수비 등에서 제 몫을 해주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소금같은 선수이기 때문이다.

덕수 정보고를 졸업하고 2006시즌부터 두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민병헌은 지난 2006시즌 80경기에서 타율 .197 4타점 17도루로 '빠른 발'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올 시즌 강한 어깨가 필요한 우익수 자리를 점점 자신의 자리로 굳혀가고 있는 민병헌은 수비나 주루 능력을 팀에서 인정받고 있다.

비록 공격력은 주로 8-9번 타순에 배치되어 9월 16일 현재 타율 .246에 2홈런 28타점 28도루로 다소 아쉬움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병헌을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이종욱-고영민처럼 아직까지 화려한 공격력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민병헌. 앞으로 그가 지금처럼 두산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계속된 활약을 이어가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스포홀릭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두산 베어스 이종욱 고영민 민병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