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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 이전부터 숱한 관심을 모은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시청률 20%를 넘기며, 시청률 면에서 좋은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논란이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는 역사 고증이다. 판타지사극이기 때문에 고증에 크게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판타지사극이라도 사극이기 때문에 고증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드라마 <한성별곡>이랄지, 영화 <왕의 남자>처럼 조선시대와 관련된 사극들은 고증의 질이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경우 고증과 거리가 먼 판타지사극을 자청하는 경향이 점차 늘어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은 소재 측면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이는 기존 사극들 중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워낙 많이 시청자들이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그런 점에서 <태조왕건>, <무인시대> 등 고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삼국시대 사극의 경우 신선하긴 한데, 자료가 부족하다. 대신 작가와 연출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제작진은 고증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핑계'로 사실과는 거리가 먼 상황을 넣곤 한다.  그런 점이 극대화 된 것이 바로 퓨전사극 <주몽>으로, 이 드라마는 고구려 초기 자료가 적다는 것을 이유로 수많은 부분에 허구를 집어넣고, 판타지적인 면을 추구하였다. <태왕사신기>처럼 완전한 판타지를 추구하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소품 면에서는 논란이 됐다.

 

 

이를테면 드라마 <주몽>에서 나오는 한나라 중장기병의 모습이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이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형태 기병은 그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면구(面具)라는 안면을 보호하고 있는 갑옷을 쓰고 있는데, 이는 그 당시 일본 등에서나 쓰인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고 네티즌 중 일부는 빈정거리면서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나즈굴과 비교하기도 했다.

 

고구려 문화와는 너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태왕사신기>

 

<태왕사신기>는 고증 측면에서 사실과 너무나 다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태왕사신기에 나오는 모든 소품과 배경이 지적 대상이다.

 

 

우선 건축물의 경우 고구려 건축물과는 다르고, 도리어 중국에 가깝다. 건물 형태만 중국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자주 쓰는 노란색이나 붉은 색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위 사진 중 가장 위가 태왕사신기 세트장, 가운데가 중국 자금성, 그리고 아래 있는 것이 충남 부여군에 있는 백제역사재현단지 건축물이다. <태왕사신기> 세트장은 동시대 건축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백제역사재현단지 건물보다, 중국 자금성과 더 비슷하다. 치미라고 불리는 지붕 끝 장식 외에는 건물 칠까지 거의 흡사하다.

 

고구려 궁성이었으리라 추측되는 안학궁을 KAIST 박진호 연구원이 복원한 바 있고,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고구려 안학궁 조사 보고서>를 공개해 일반에게 제공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서  안악 1호분, 안악 3호분, 무용총 등에는 고구려 건물 모습이 매우 잘 그려져 있다. 백제역사재현단지 또한 고려와 일본 건축, 그리고 부여 동남리 금성산에서 출토된 청동제탑신 등의 유물을 참고하여 만든 것으로서 여러자료를 통해 철저히 고증하였다. 자료가 없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이다.

 

 

의복 또한 마찬가지다. 의복의 경우 고구려는 긴 저고리가 특징으로서 드라마 상에서 보이는 의상과는 거리가 크다. 드라마 의상도 도리어 중국에 가깝거나, 무협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의상이다. 더군다나 고구려에서 주로 입었고, <연개소문> 등에서도 그 모습을 보여준 바 있는 주름치마도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이러한 자료들이 수두룩하며, 이를 바탕으로 이미 복원을 해 놓은 것도 있다. 왜 고구려를 다루는 사극에서 정작 고구려 복식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였다면, 이와 관련해서 쓸 수 있는 고증 자료가 너무나도 많다. 고구려는 더 이상 자료가 부족한 역사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구려에 대한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으며, 이 중에서 대중이 접할 수 있는 것들도 여럿 있다. 또한 이를 가지고 문화 콘텐츠와 접목시키는 시도도 계속 되고 있는데, 정작 고구려를 다루는 사극에서 이들을 이용하지 않는다. 아니, 이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 그럴까?

 

이는 아무래도 연출자나 드라마 관계자들이 과거 사실의 복원보다는 흥행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애초에 판타지사극을 표방함으로써 고증 같은 역사 문제의 시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일 것이다.

 

판타지사극은 동북공정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위험하다. 특히 동북공정과 맞물려 중국과 역사분쟁을 겪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소지도 충분하다.

 

최근 동북공정에 대한 반감으로서, 그리고 민족적 자긍심의 분출이라는 미명 아래에 고구려 관련 사극들이 선보이고 있다. <연개소문>, <대조영>, <주몽> 등이 그것이고, 이번에 방영한 <태왕사신기>까지 가히 고구려 사극의 열풍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에 중국에서도 이들이 역사왜곡 사극이라고 하면서 수입 금지를 하겠다고 하는 등 동북공정과 관련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도 설인귀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는 등 역사공방이 치열하다.

 

문화콘텐츠를 통한 이러한 공방은 대중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동북공정에 맞서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문화사대주의라는 오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사대주의란, 자문화중심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신의 문화를 하찮게 여기고, 다른 국가나 민족의 문화를 숭상하여 이를 좇는 것을 의미한다. 고구려를 통하여 민족 자긍심을 보여주려는 판타지사극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문화사대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고구려를 자랑스럽게,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고구려의 유산을 통하여 그 당시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다. 고구려 자료들을 이용하면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흥행성을 의식하거나 복잡한 역사고증을 피하려고 시도가 오히려 실제와는 먼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한국의 사극에서 한국이 없다

 

 

현재 중국에 가서, 옛 발해 상경용천부를 찾아가면 그들은 중국식으로 쌓은 성과 중국식 건물 조감도를 버젓이 보여주며 중국 역사라고 홍보하고 있다. 고구려 비사성이었던 중국 대흑산산성에 가면 고구려 성곽 흔적보다는 중국식 성곽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방영하는 사극에 중국 건물과 흡사하고, 도리어 한국과 거리가 있는 모습이 재현된다고 해 보자.

 

<태왕사신기>는 해외 수출을 목적으로 한 드라마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럼 해외에서 <태왕사신기>를 통하여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쥬신 같은 허구적 실체를 해외에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

 

우리의 것을 천시하고, 외국의 것을 높게 보는 데에서 문화사대주의는 병폐로서 작용하였다. 더군다나 우리의 것 중에서 훌륭한 것이 많음에도 이를 일부러 배제하고 판타지란 미명 아래 외국의 것을 따라간다면 우선 지금은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도리어 우리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이미 태왕사신기는 방영분 다수가 녹화를 끝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와서 다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을 계기로 차기 고구려 사극을 만들 때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태그:#태왕사신기, #문화사대주의, #배용준, #상경용천부, #자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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