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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져 있는 쿰란 기념조형물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져 있는 쿰란 기념조형물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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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잃어버렸던 여권을 찾았다고?"
'어디, 어디, 정말 나왔네, 만세! 만만세!"


몸이 둥둥 뜨는 사해에 들어갔다가 나온 대가로 여권을 잃어버린 일행 때문에 모두들 기분이 여간 우울했던 게 아니었다. 그런데 여권을 찾았다는 환성이 터진 것은 다음코스인 쿰란에 도착하자마자였다.

버스가 쿰란유적지 주차장에 도착하여 모두들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내리고 있던 여권을 잃어버린 일행을 뒤따르던 다른 일행이 무심코 앞선 일행의 점퍼 뒤쪽을 만지는 순간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게 뭐야? 왜 이런 게 등 뒤에 있지? 혹시 여권 아닌지 찾아봐요?"

그렇게 해서 발견된 것이 잃어버린 여권이었다. 점퍼 주머니 한쪽이 터져 있어서 그쪽으로 빠져나간 여권이 점퍼 뒤쪽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주차장에 내려선 일행들은 모두들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귀국일자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일행 한 사람을 이스라엘에 남겨놓고 간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일정은 그야말로 우울한 여행이 될 뻔 했었는데 여권을 찾았다니 모두들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가 사해문서가 발견된 쿰란이잖아요,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여권을 발견한 것은 우리들에겐 사해문서를 발견한 것만큼이나 대단한 경사인데요."

일행 중 한 사람이 여권을 찾은 일행을 헹가래라도 쳐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되찾은 여권을 치켜든 일행을 중심으로 모여든 다른 일행들이 빙 둘러서서 기쁨의 만세를 불렀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여권을 찾아들고 기뻐하는 일행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여권을 찾아들고 기뻐하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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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유적지 전경
 쿰란유적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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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광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았다면 이상하게 생각했겠지만 주변에는 다행히 우리 일행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시간 동안 우울했던 우리들의 여행길은 다시 즐거움과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들은 언덕을 올라가 쿰란유적지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우선 유물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다.

유물전시관 안에는 목욕실과 작업실 등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과, 양가죽에 쓴 문서, 토기물병과 몇 가지 생활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경건 제일주의로 살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삶에서 정결의식을 매우 중요시했던 사람들이었다. 예루살렘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에서 벗어나, 이곳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메마른 광야의 바위 산자락 쿰란에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세상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빛의 아들들임을 자처했다. 

그들의 삶은 철저한 경건의식과 노동, 그리고 묵상의 생활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목표는 성경을 필사하는 일이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기도를 하고, 하루의 노동과 식사와 교제를 통해 신을 묵상하고, 성경을 쓰기 전에는 항상 목욕을 하여 몸을 경건하게 했으며, 깨끗하게 세탁한 새 옷을 갈아입고 새 물감과 새 붓으로 성경을 썼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경부터 시작된 이들의 공동체는 서기 68년 로마군의 침공으로 막을 내렸다. 로마군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때 그들은 필생의 목표로 양가죽두루마리에 써 놓은 성경 필사본들을 토기 항아리에 담아 바위산 속의 동굴 안에 깊이 숨겼다.

그렇게 숨겨 놓았던 양가죽 두루마리 고문서들이 발견된 것은 1947년 봄이었다. 이 지역에서 양을 치던 베두인 소년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기 위하여 입구가 반 쯤 허물어진 동굴 속에 돌을 던졌는데 무엇인가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루마리 고문서가 발견된 11개의 동굴 중 제4동굴
 두루마리 고문서가 발견된 11개의 동굴 중 제4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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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죽 두루마리 문서
▲ . 양가죽 두루마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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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생각한 소년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동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동굴 안에서는 깨어진 항아리와 함께 뚜껑이 덮인 항아리 여덟 개가 발견 되었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그 중 일곱 개는 빈 항아리였고 한 개의 항아리 속에서 두루마리 문서 3개가 발견된 것이다.

이렇게 우연히 발견된 문제의 동굴과 두루마리 문서는 결국 고고학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 후 사해 서북 연안의 동굴들은 베두인들이나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답사되었고, 매년 계속해서 새로운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쿰란 지역의 두루마리문서가 감추어진 동굴들은 1956년 봄까지 11개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발견된 순서에 따라서 1에서 11번까지 번호가 매겨졌다. 그 밖에 와디, 무라바트 지역의 동굴들과 길베트. 밀드 지역에서 발견된 사본들, 그리고 아인. 페스카 폐허에서도 대단한 가치가 있는 사본들이 계속 발굴되었다.

유물전시관 밖으로 나오자 옛 건물터들이 즐비하게 나타났다. 대부분 바닥에 돌이 깔려 있어서 이 지역이 2천여 년 전의 그 시절에도 바위산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유적지 한 편에는 제법 넓은 마당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커다란 나무 몇 그루가 서 있어서 일행들은 그 밑에 모여 앉아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저쪽을 보십시오? 툭 튀어 나온 커다란 암벽에 상당히 큰 구멍이 보이지요, 저 동굴이 바로 제4동굴입니다."

모두들 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동굴은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툭 불거진 바위덩어리 앞쪽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저 동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문서는 다섯 편의 창세기 단편과 출애굽기 단편 여덟 개, 그리고 레위기 단편이 하나, 신명기 단편이 열네 개, 여호수아기 단편이 둘, 사무엘기 단편이 셋, 또 이사야서와 예레미야, 소예언서와 잠언, 다니엘서 단편 셋이 발견 된 곳으로 아주 유명한 동굴입니다."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발굴 유물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발굴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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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풍경
 유적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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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둘러보는 전망은 그야말로 황량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유적지 뒤쪽은 불그죽죽한 바위산들이고 앞쪽은 작은 평지를 지나 사해가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사해 건너편 역시 앙상한 바위산들이었다.

쿰란 유적지를 모두 둘러보고 나설 때까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우리들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절이 관광시즌이 아니어서 그런 모양이었지만 덕분에 우리들은 아주 여유롭고 넉넉한 관광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 버스에 오르십시오, 다음엔 엔게디로 가겠습니다."

엔게디라? 엔게디가 어디지? 순간 선뜻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다윗왕의 이야기였다. 그가 아직 어린 목동이었을 때 이웃나라인 블레셋에서 쳐들어온 군대 중에서 골리앗이라는 거인이 있었다.

골리앗은 몸집도 엄청나게 컸을 뿐만 아니라 힘도 천하 장사여서 이스라엘 군대 중에서는 아무도 그와 상대할 장수가 없었다. 당연히 거인 골리앗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패전의 위기에 몰렸다.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거인 골리앗과 맞선 상대가 바로 다윗소년이었다. 그러나 골리앗 앞에선 다윗은 고양이 앞의 작은 쥐처럼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상대가 될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다윗이 던진 물맷돌에 이마 한가운데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골리앗은 어이없이 쓰러져 죽고 말았던 것이다. 옛날에 보았던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 다윗이 당시의 왕이었던 사울왕에 의하여 궁중으로 들어가지만 시기와 질투심에 눈이 먼 사울왕이 죽이려하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쫓겨 들어간 곳이 바로 엔게디였다. 우리들은 바로 그 다윗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엔게디는 쿰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버스가 잠깐 달려 도착한 엔게디의 풍경도 쿰란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두루마리 고문서를 보관했던 것과 같은 모양의 토기항아리
▲ . 두루마리 고문서를 보관했던 것과 같은 모양의 토기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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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줄기가 흘러내리는 바위산 골짜기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바위산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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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편은 앙상한 바위산들이었고 앞쪽은 사해바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발견되었다. 뒤쪽의 앙상한 바위산 골짜기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모습이었다. 모두들 믿기지 않는 풍경에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떻게 저렇게 앙상한 바위산 골짜기에서 물이 흘러내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분명히 물줄기였다.

"아니 어떻게 저런 곳에서 물이 흘러내려올 수가 있지요?"

누군가 가이드에게 묻는다. 사실은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궁금증이었다.

"이 지역이 바다표면보다도 300여 미터나 낮은 곳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가는 물줄기지만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물은 지하수라고 했다. 이 지역이 낮은 지역이어서 주변의 높은 지역에 내린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서 이 골짜기에서 흘러내린다는 것이었다. 물줄기는 연중 그침 없이 계속 흘러내린다고 한다.

그때 그 산줄기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바라보인다. 우리들이 있는 곳에서는 상당히 먼 거리여서 마치 양떼들이 바위산으로 오르고 있는 모습 같았다. 쌍안경으로 바라보니 모두들 등에 배낭을 짊어진 젊은이들이었다.

"저들은 아마 유대인 학생들일 것입니다. 다윗은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대한 조상이거든요, 그래서 다윗의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숨어있었던 동굴이 그 위에 있다고 했다. 다윗을 쫓던 사울왕은 다윗이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다윗의 동굴에 들어간다.

다윗으로서는 사울왕을 얼마든지 쉽게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 그의 옷자락을 약간 베어냈을 뿐이었다. 사울은 결국 이웃나라의 침공으로 목숨을 잃고,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게 되었던 것이다.

바위산을 오르고 있는 이스라엘 학생들
 바위산을 오르고 있는 이스라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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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계의 20세기 최대 발굴이라는 사해고문서가 발견된 쿰란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 받는 다윗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니 어느 듯 해가 설핏 기울어져 있었다. 다음 코스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여리고였다.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하늘은 우리일행들의 기분처럼 그 사이 맑게 개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쿰란 , #엔게디,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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