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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끓인 콩나물국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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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전부터 사무실에서 점심을 지어먹고 있습니다. 그 전엔 근처의 식당에서 매식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만날 사 먹는 음식의 맛이 매양 그렇고 하여, 또한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때 다만 한 푼이라도 절약할 요량으로 사무실에서 점심을 지어먹기로 한 것이었지요.

사무실은 선배님 한 분과 제가 관리비를 공동납부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외 전기료와 전화비 외 인터넷까지 사용하자니 한 달이면 수 십만원의 고정비가 들어갑니다. 하여 그같이 다만 밥값이나마 아끼자고 의기투합을 한 것이었지요.

마침 집에 있는 전기밥솥 겸 밥통이 연식(年式)이 오래 되어 밥도 잘 안 되고 금세 눌어붙는 등의 행패(?)를 부리는 중입니다. 그래서 어차피 새로 사야 할 전기밥솥이었음에 그걸 사무실로 가지고 나왔지요.

반찬은 저와 선배님이 그때그때 알아서 집에서 밑반찬과 고추장 따위들을 가져다가 반찬으로 먹습니다. 전기밥솥에 씻은 쌀을 안쳐 밥을 짓는 시간은 통상 오전 11시입니다. 그럼 오전 11시 35분에서 40분이면 밥이 완성되었다며 전기밥통이 "빽빽"하고 웁니다.

이어 우린 응접실 탁자에 신문지를 한 장 펴 깔고 냉장고를 열어 밑반찬을 꺼내 밥을 먹지요. 국과 찌개가 없이 그렇게 서걱서걱 대충대충 먹던 점심에 변화를 도모한 건 어제였습니다.

평소 집에서도 밥과 반찬을 잘 하는 때문에 그제 저녁에 퇴근하면서 콩나물을 500원어치 샀습니다. 그러면서 '내일은 이걸 조금만 가져다가 사무실에서 끓여야지!'라는 생각을 뇌리에 담았지요.

한움큼의 콩나물을 꺼내 물에 씻은 뒤 비닐봉지에 담았습니다. 이어 조그만 밀폐용기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기타의 조미료를 적당량 비축했지요. 제가 출근하는 시간은 언제나 오전 여섯시입니다. 선배님은 오전 7시 430분 안팎이고요. 출근하여 신문을 읽고있는데 선배님이 나오셨습니다.

"오늘 점심엔 제가 시원한 콩나물국 끓여드릴게요!"
그러자 선배님은 단박에 미소를 만면에 머금으셨습니다.
"자네의 장모님도 인정하셨다는 그 환상의 콩나물국을 오늘 드디어 공개한다는 얘기렷다?"

평소 사람은 좋은데 입이 푼수인 선배님은 그예 주변의 지인에게까지 소문을 냈습니다.
"오늘 점심은 우리 사무실로 와! 홍 부장(제 직책이 무늬만 '부장'입니다)이 비장의 콩나물국을 선보인다네."

그래서 늘상 둘이서만 먹던 점심에 어젠 의외의 지인 둘이 추가되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공짜 점심 좀 얻어먹읍시다."

밥을 넉넉히 지었고 콩나물국에도 물을 충분히 부어 넷이 충분히 먹을 양으로 끓였지요. 갓 지은 뜨거운 밥에 펄펄 끓인 콩나물국을 먹던 선배님과 지인들(선배님의 친구이자 저로서도 지인들입니다)은 단박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아~ 정말 시원하다!"
"우리 마누라가 끓인 솜씨보다 낫네!" 

순간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슈? 나는 일찍이 조실모(早失母)하고 홀 아버지와 살아오면서 밥과 음식 만드는 걸 어쩌면 운명이자 숙명적으로 배워온 사람이라오. 그러하거늘 그깟 지엽적인 콩나물국 끓이는 것 쯤은 천하의 명필인 한석봉이가 고작 하늘 천(天)자 하나 쓰는 수준일 따름이죠!'

부끄러운 얘기겠지만 그러나 더욱 철저히 밝히고자 합니다. 그건 바로 글과 사연이란 건 모름지기 진실성이 최고의 생명이라 알며 지금도 습작중인 필부가 바로 저라는 위인인 때문입니다.

오래 전부터 장모님께서도 인정하신 저의 콩나물국을 시원하게 잘 끓이는 비법은 바로 불 조절에 있습니다. 콩나물국을 단숨에 끓이자면 비린내가 날 뿐 아니라 시원한 맛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콩나물국이 펄펄 끓게 되면 불을 강(强) 중(中) 약(弱)으로 서서히 변화시키면서 콩나물의 숨을 모두 죽여 콩나물 내부의 아스파라긴산의 엑기스까지 모조리 추출해내야만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제가 잘 끓인 콩나물국을 잘 드신 지인들은 사무실을 나가면서 또 오겠다고 하여 가슴이 철렁이게 했습니다.
"선배님들~ 다음에 또 오시는 건 좋은데 빈손으론 오시지 마시고 4킬로짜리 쌀이라도 한 봉지 들고 오시는 센스는 아시겠지요?"

저는 지금도 무변하게 어렵고 못 사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시원하게 콩나물국을 끓이는 노하우가 바로 불을 강, 중, 약으로 변화시키면서 진득하게 기다리는 것이듯 앞으로도 제가 하는 모든 일에 그와 같은 열정을 쏟으면서앞으로 도래할 풍요와 행운을 진득하게 기다릴 참입니다.

그 외에도 오전 여섯시의 출근과 같은 성실하며 노력하는 자세까지도 놓치지 않을 작심입니다. 

덧붙이는 글 | 싱글벙글 쇼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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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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