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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안전’이라는 과목이 생겨서 체계적인 안전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안전이 위협받을 때에 몸에 밴 습관과 지식으로 위기에 대처하죠. 조그만 우리나라에서 인적자원이 무엇보다 최대자원이잖아요. 요즘처럼 안전사고 때문에 후천적 장애인이나 사망자가 많은 세상에 절실한 과목이죠. 그래서 이 사회에다가 정식으로 각 학교수업의 일환으로 ‘안전’과목을 만들 것을 주장합니다.”
 

 평소 아주 서글서글하고 자상한 송영권 소방관(안성소방서)이지만, 이렇게 말할 때만은 아주 진지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장은 처참한 화재 현장에서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과 함께 뼛속 깊이 절실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 시도한 사람, 119 구급차에 태우면 살려달라고 아우성


일도 많고 탈도 많은 119 요원에게 몇몇 일화를 물어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터. 그 물음에 송 소방관은 당장 생각나는 일화를 털어놓는다.

 

“자살 시도한 사람 신고받고 현장에 출동하여 119 구급차에 태우면 대부분 살려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자살 시도한 사람을 119 구급차에 실어 오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죠. 그게 계기가 되어 지금도 만납니다. 그러고 보니까 인생 상담도 하는 셈이네요.

 

제일 기억에 남는 사고는 평택에서 근무할 때 농장 기계 체인에 아이의 다리가 말려 들어간 것을 2시간 걸려 기계를 절단하고 아이를 구조한 사건입니다. 8세 된 어린아이와 함께 2시간 동안 차분하게 대화하면서 기계에 말려들어간 아이의 다리를 고군분투 끝에 구조해낸 것이 화제가 되어 텔레비전에도 방영된 적이 있죠.

 

한번은 119 상황실에서 근무하는데 술 취한 사람이 전화를 해서 2-3시간 동안 술주정을 해대더라고요. 차마 끊지 못하고 다 받아 줬더니 술이 깨니까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슬며시 전화를 끊더라고요.”

 

어찌 일화가 이뿐일까.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니 소방관들이 겪은 일화만 간추려서 책을 내도 좋은 책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죽음의 사선이 누구보다 끈끈한 공동체정신 만들어내


화재 진압 소방관들은 전쟁에서 전투하는 군인들만큼이나 동료애가 강하다.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언제 어떻게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화마와의 싸움 현장에서 속히 화재를 진압하겠다는 일념과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에 집중하다 보면 정작 자기 자신이 위험에 노출되는 걸 깜빡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주위 동료가 객관적인 눈으로 코치해주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 된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동료애가 다른 직업보다 강할 수밖에 없고 팀워크가 무엇보다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들에겐 가족들보다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친척들을 만나야 할 명절, 휴일 등에 더 바쁜 직업이기에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정이 두터워질 수밖에. 의도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소방관 세계에는 살아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용기’와 ‘만용’을 구분하는 것


일이 일인 만큼 소방관들이 다치는 일은 다반사다. 크고 작은 부상이 있게 마련. 아무리 사전에 현장을 파악하고 조심하더라도 현장은 항상 유동적이고 예기치 못할 변수는 항상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적절한 상황판단이 생명이다.

 

무모한 구조 활동은 자신도 죽이고 남도 죽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안 다쳐야 인명도 구할 수 있는 법. 현장에서 무모한 만용과 적절한 용기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라는 것이다.

 

무작정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속히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을 구해내라는 군중들의 요구에 휘말려 무방비 상태로 불길로 뛰어들다 보면 십중팔구 자신마저 다친다. 주위 주민들이 소방관이 슈퍼맨이기를 바랄 때 참 당황스럽다는 게 소방관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주민들의 반응이 희망도 주고 좌절도 주고


“몇 시간 동안 화재현장에서 화마와 싸우다 보면 목이 너무 마릅니다. 그럴 때 주위 주민 들 중에 여름엔 시원한 냉차 한 그릇, 겨울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주면 그렇게 힘이 날 수가 없어요. 아직은 그런 정이 살아 있더라고요.  반면 화재현장에 늦게 왔다고 '쌍소리'를 하며 욕하는 주민이나 119 구조대가 병원으로부터 돈 받아먹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으면 억장이 무너지죠. 그런 때가 가장 그만 두고 싶죠.”

그러고 보니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민 봉사직이기에 시민들의 반응에 따라 힘도 냈다가 좌절도 하는 것이렷다. 시민들 때문에 울고 웃는 참으로 착한 족속들이 소방대원들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송 소방관은 팔순 장인과 아내 그리고 자녀 3명을 안성의 조그만 아파트에 함께 살면서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어깨엔 5인 가족이 걸려 있지만, 그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한다 하겠다.

 

“저 이래 뵈도 행복지수가 상당히 높은 사람입니다. 하하하.”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1일 안성소방서 http://www.anseongfire.or.kr/  봉남동 지구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태그:#안성 소방서, #송영권 소방관,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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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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