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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비 때문에 얼마 가지 못하고 속초에서 일 박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까지 비가 온다.
사우나 내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로 미역국을 먹고,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밖에 나오니 언제 비가 그쳤는지 햇빛이 쨍쨍하다.
부리나케 앞에 있는 창고에 넣어두었던 자전거를 꺼냈다.
그리고 오늘 좀 빨리 갈 작정으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상가들이 즐비한 인도로 갔다가 도로로 갔다가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얼마가지 않아 드디어 바다가 보였다.
나의 이번 여정은 아마도 이 바다가 보고 싶어 해안가길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후련해져 오고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쯤 가다보니 대포항이라는 팻말이 나왔다.
이 곳은 꽤 유명한 항구로 나도 옛날부터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리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대포항 입구에서
 대포항 입구에서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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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니 바다 쪽으로는 게딱지 같은 조그마한 가게들이 연이어 붙어있었다.
아마도 고개도 제대로 못들을 것 같은 그 가게 안으로 주인 아주머니만 부산하게 들락거렸다.

대포항5
 대포항5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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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는 간혹 손님이나 연인들이 두엇 앉아 한낮 소주잔을 기우리고 있었다.
그 옛날 중국의 연변인가 용정에 갔을 때, 그 숨막히게 붙어있던 다닥다닥 붙어 있던 그 광경들이 생각났다.
만약에 화재라도 난다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안쪽 길로는 제법 괜찮은 슬레이트 집들이 이어져 있었다.
건어물을 파는 가게 회를 파는 가게들이 연이어 붙어 있었다.
횟집에서는 장정들이 거리까지 나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전거 곁으로 오더니 깃발을 보고 흥미가 생기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아주 뚱뚱한 후배를 보고 나를 따라 가면 금방 살이 빠질 것이라고 농을 하여 나도 같이 맞장구를 쳐줬다.

수백의 얼굴
 수백의 얼굴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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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어물 가게 좌판대에 명태들이 갖가지 표정을 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명태 노래가 입 속에서 흥얼거려 진다.
이 노래는 양몀문님의 시를 노래로 만든 것이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푸트의 왕처럼 미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바닷가의 풍경들은 대부분 어디서나 본 듯한 낯익은 풍경이다.
사람들이 수런거리고 약간 복잡하게 붐비는 곳을 보니 어판장이었다.

대포항6
 대포항6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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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광주리들이 원색으로 놓여있었으며 아주머니들의 억센 목소리들만 왁자하게 들렸왔다. 양수기로 끓어올린 바닷물은 판장 안으로 작은 개울을 만들면 급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대포항7
 대포항7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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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야, 뭐가 맘에 안드는데,
말을 해야 알 것 아니야
더 놓든가 말든가.”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 앞으로 색색의 광주리를 즐비하게 놓고, 손님 한 분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한 번 손님과 흥정이 시작되면 집요하게 거래를 하는데
금방 살 것처럼 실컷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가버리면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
옆집에 가서 다시 물어보는 그 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여인네들도 남정네와 단둘이 있으며 금방 수줍어하는 여인이 된다.
옆에 있는 아줌마가 싸게 준다면 숭어 새끼 한 마리, 물간 오징어 두 마리, 이면수 한 마리를 합쳐 만원에 준단다.

포장 밖에서 회를 먹으며
 포장 밖에서 회를 먹으며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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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바로 옆, 포장 밖으로 자리를 잡아주는데, 아주 지저분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풍경마저도 포근하게 다가온다.

대포항8
 대포항8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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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항9
 대포항9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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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주머니가 상추, 고추, 초장들을 들고 오는데, 각각 1000원씩이란다.
해풍을 맞으며 거의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나니,
그 사이 해가 많이 넘어가고 있었다.
여행자는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안되는데,

대포항10
 대포항10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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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세가 그랬던가

“여행자는 지나온 곳에 마음을 놓고 오지 않는다”고.

불경에도 보면 이런 얘기가 있다.

어떤 스님과 동자가 개울을 건너려고 하는데 옆에 한 아낙네가 그 개울을 건너지 못해 안절부절 하더란다.
그래서 스님이 그 아낙을 업고 물을 건너는데, 동자가 뒤에서 보니 엉덩이를 만지락거리는 것 같더란다.
물을 다 건너고 나서 다시 스님과 둘이서 걸어가는데 동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더란다.
그래서 스님에게,
‘스님, 스님께서는 어찌 불도를 수행하는 사람인데
아녀자의 엉덩이를 그렇게 만질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
‘아, 이 녀석아
나는 아까 물을 건너고 그 아낙을 물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너는 아직까지 무겁게 업고 왔느냐고,’

포장 밖으로 나오니 아주머니가 잘가라고 한다.

어판장을 거슬러 오르자 남자와 여자 두 분이 서계시고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한 분이 회를 열심히 썰면서 말을 하신다.

‘언니야, 언니는 잘게 썰어라 하고,
오빠는 크게 썰어라, 하면
나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고 하시면서 투정을 하신다.

광주리 옆을 보니 고기 한 마리 밖으로 빠져 나와 있는데, 어디로 갈 때가 없어 보인다.
목숨을 건 탈출일 텐데, 광주리 밖으로 넘치는 물에 간신히 숨만 쉬고 있다.  아무리 봐도 저 고기는 살아날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간신히 빠져 나왔는데, 갈 때가 없다.
 간신히 빠져 나왔는데, 갈 때가 없다.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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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저렇게 오갈 때가 없으면 얼마나 막막할까.
갑자기 그 고기가 한없이 불쌍해져, 잡아서 바다로라도 던져 주고 싶었지만 그렇다가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혼날 것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고기들을 다 바다로 살려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또한 우리는 그 고기를 먹고 살지 않는가.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먹이사슬, 만물이 영장이라는, 천적이 없다는 인간. 

갓 잡아온 햇문어
 갓 잡아온 햇문어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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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경매, 극도의 눈치 작전
 문어경매, 극도의 눈치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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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을 보니 방금 잡아온 피문어 10여 마리를 놓고 아주머니 4명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경매를 한다.
근해에서 잡은 피문어가 큰 것 한 마리에 8만 원씩이라고 한다.
하얗고 엄청나게 큰 고기가 있어 물어보니 방어라고 했다.

대포항14
 대포항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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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탁자와 의자들이 어지럽게 널려 사람들은 배를 채우고 있다.

곗날, 대포항에서
 곗날, 대포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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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절규
 한 송이 절규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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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판장을 나와 자전거를 타고 다시 부둣가를 거슬러 오른다.
대부분 여자 한 분만 앉아서 장사 하는 집들이 많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띄엄띄엄 눈을 띠었다.

대포항, 아직은 쌀쌀한지
 대포항, 아직은 쌀쌀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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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파는 생선들도 내 고향 남해바다의 생선과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광어, 우럭, 도다리, 모래멍게(남해바다는 돌멍게), 해삼, 새치(이면수)들이 많이 보인다.
이면수는 남해바다에서는 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싱싱한 회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낮술
 낮술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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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어물 가게 앞에서 살펴보니 오징어, 노가리, 마른명태, 문어 등이 있었다.
쥐포가 있어 포장을 보니 세상에, 여수 오천동에서 가공된 것이 여기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기로 계속가면 어디가 나오느냐고 물어보니 <외옹치항>이 나온단다.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돌아가자 한가한 방파제에 횟집 몇 개가 낮잠처럼 고요하게 잠들어있었다.
그냥 돌아서 내려오는데 맨 마지막 가게에 있는 예쁜 아줌마가 말을 건넨다.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는데, 손님들한테 물어보고 싶었던 얘기가 있다고 하면서
“장사가 왜 이렇게 안되는지 묻고 싶다”고 힘없는 얼굴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 가게는 이 항구에서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가게였다.
그러니 손님들이 구태여 이 끝까지 올라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낼 모래 진해를 가는데 어디를 가면 좋으냐고 물어온다. 그래서, 사량도와 고성 공룡 발자국 해변을 추천해 주었다.

다시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는데, 마지막 나오는 입구 쪽에 조그만 가게들이 또 계속 붙어서 튀김을 팔고 있었다.

새우튀김 가젹
 새우튀김 가젹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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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냉동 새우튀김 10마리에 3000원인데, 근해 큰 새우튀김은 한 마리에 천 원씩이나 했다.

잠깐의 휴식
 잠깐의 휴식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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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튀김을 먹고 있는데 대학생 몇 명이 옆에 있다가 자기들도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이것저것 묻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학창시절에 꼭 가보라고 하면서 묻는 대로 알려주었다.
자 이제 주문진을 향해 출발이다.
얼마쯤 가다보니 갑자기 주위가 조용하다.
돌아보니 한참동안 차가 지나가지 않는다.
마음이 편안해 진다.
아, 이 조용함의 극치,
그 옛날 혼자 덩그라니 토방에 앉아 시골마당을 바라보던 때가 생각났다.
한 낮 빨래줄 위로 잠자리만 떠올랐다 앉고 하던 그 깨어질 것만 같던 고요. 하늘에는 솔개만 유유하게 떠있고 정말 소리 한 점 들리지 않던 그 절대 고요가 갑자기 내 마음 속으로 다가왔다. 
나도 운전을 하지만 정말 차들의 횡포, 그 굉음의 횡포는 너무나 심한 것 같다.
정말 정부에서는 이제라도 차를 만드는 대기업들에게 소음세나 환경 오염세라도 부과하면, 보다 깨끗한 환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도 환경을 깨끗이 하고, 조용하게 만드는데 큰 노력들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태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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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여 세계오지 배낭여행을 했으며, 한강 1,300리 도보여행, 섬진강 530리 도보여행 및 한탄강과 폐사지 등을 걸었습니다. 이후 80일 동안 5,830리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였습니다. 전주일보 신춘문예을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시를 쓰며, 홍익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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