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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왜 하필 없는 빵을 달라는 거야?’


프랑스 혁명 당시 빵을 달라고 지겹게 외치는 국민들에게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앙투아네트가 한 말이다.

 

마리앙투아네트는 기아에 허덕이던 서민들의 고통을 알 리 없다. 전제군주제 사회에서 군주와 귀족들은 세상이 민주적으로 바뀌기를 바랄 리 없다. 식민지시대 민족을 배신한 변절자가 변절의 대가로 누리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광복의 가시밭길을 가겠다고 하겠는가?


5·16을 혁명으로 보는 사람들은 주권을 도둑질한 정치군인들의 시혜를 받았거나 아니면 민주의식이 결여된 사람이다. 교육을 보는 관점도 효율이나 경쟁이란 시장논리로 볼 수 있고 약자배려라는 평등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관점도 있다.

 

<싫든 좋든 학교차는 존재한다>의 저자 김선호는 시장의 논리, 즉 수요지중심의 효율성 논리에서 교육문제를 진단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시카고 대학 헤비거스트교수의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히면서 수월성교육의 정당성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저자는 5·16을 '혁명’으로 기술해 놓고 있다. 영향력 있는 교육계원의 시대착오적인 역사의식에 어이가 없다. 5·16이 혁명이면 4·19는 쿠데타라는 말인가?

 

저자의 교육관은 ‘교육에 시행착오란 없다’고 진단한다. 국정교과서가 오류가 없다면 친일인사의 시나 소설을 기술했던 일이며 5·16을 혁명으로 기술한 사실을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국정교과서에는 분명히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사실을 외면할 수 있는가? 봉건사회에서 교육이 자본주의 시각을 가르칠 리가 없고,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시민교육을 할리가 없다. 전제군주제 사회에서는 전제 군주제 인간형을 양성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형 인간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싫든 좋든 학교차는 존재한다>의 저자는 "이념적으로 전교조는 교장, 사학 그리고 교육관료를 주적으로 여긴다고 한다. 왜냐하면 학교교육자체가 지배계급의 기득권 유지수단이며 교장, 사학, 교육관료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권의 '앞잡이'라고 믿는 까닭"이라고 단정한다.

 

충남예산 보성초등학교 서승목 교장은 "전교조 교사집단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다가 결국 심리적 갈등으로 노모의 집옆에 있는 은행나무에 목을 매 자살한 것"이라 단정하고 "출근부에 도장을 못 찍겠다거나 학습지도안을 못 쓰겠다"는 전교조의 활동에 대해 "계략을 가지고 행동하는 ‘혁명전위대’"라는 색깔공세를 퍼부었다.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고 하고, 학급문집, 학급신문을 내고,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고 하고, 신문반, 민속반 등 학생들과 대화가 잘 되는 CA반을 이끄는 교사, 탈춤, 민요, 노래, 연극을 가르치는 교사,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생활한복을 입고 풍물패를 조직하는 교사, (특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원리 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군사정권이 이런 교사가 '전교조 교사'라며 식별법을 내 놓았던 일이 있다.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가 나쁜 교사일 리 없지만 전교조가 하면 나쁜 것이다. <싫든 좋든 학교차는 존재한다>는 저자의 이러한 시각과 너무나 빼닮았다.


평준화에 대한 저자의 시각에도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의 형평성과 수월성은 어느 한 쪽도 포기할 수 없다. 형평성과 수월성 중 어느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인가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갖고 있는 고민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31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교육의 기회균등을 국가가 감당해야 할 큰 의무중의 하나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평준화를 폐기처분해야할 가치로 규정하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색깔까지 칠하고 있다.


교육의 기회균등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평준화정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준화가 수월성을 배제한다는 주장에 따라 보완책으로 도입한 것이 특수목적고다. 그러나 학벌이나 대학서열화가 엄존하는 현실에서 특수목적고가 기능을 못해 일류대학 입학을 위한 관문으로 변질됐다는 사실을 저자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평준화’는 폐기처분해야할 가치라든가 ‘부정부패가 많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정이 많고 예의를 지키자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은 객관성도 합리성도 결여 된 편향된 시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있는 집’ 아이들이 돈많은 부모 덕택으로 비싼 학교에 다니고 싶으면 다닐 수 있게 되면 문제가 없겠는데 ‘있는 집’ 이건 ‘없는 집’ 이건 이런 선택의 여지가 없는 까닭에 한국학교가 싫으면 외국으로 가야될 판이고 그래서 기러기 아빠가 자꾸 생겨난다"는 시각이나 "학교차를 방지하게 위해서 대학입시 수능시험의 난이도를 조정해서 문제를 쉽게 출제한다" 또는 "수능시험문제가 어려워지면 부모들의 사교육비의 부담이 늘어나서 정부로서는 사교육비절감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노릇이다'"는 시각은 근거자료도 없이 객관성이 결여된 흑백논리로 교육문제를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시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못 가진 학생’들을 배려하는 데 너무 신경을 쓰는 바람에 발목이 잡혀 갈 길을 못가고 있는 형편"이라는 진단이나 ‘학원 강사가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사들보다 학생과 학부모의 신임을 더 많이 얻은 까닭’을 교육이 아니라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입시전문가인지 교육자인지를 구별하지 않고 '학습방법'이 교사들보다 뛰어났다는 식의 판단은 교육학자로서 논리적인 근거도 없이 성급한 진단을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인재를 길러내자거나 돈 있는 사람이 자기 돈으로 자식 공부를 더 많이 시킨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공정한 경쟁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나,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식의 사회경제적 지위까지 대물림하겠다는 게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저자가 기술했듯이 해방정국에서 우리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일본 관료들이 쫓겨 가고 난 뒤 많은 일자리가 필요했는데 그 일자리를 차지한 게 누군가? 독립운동을 한다고 만주로 간도로 쫓겨 다닌 독립운동가의 자녀들인가? 아니면 친일한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집 아이들이 많았는가?


이승만 정권 12년간 각료 115명 중(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인데 반해 부일 협력 전력자는 34.4%인 33명이나 된다. 경찰 간부의 80%가 일제 경찰 출신이고 초대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을 비롯해 2, 4대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 국회의장을 지낸 정래혁이 일본 육사출신이라는 사실을 두고도 정권의 정당성이나 기득권을 옹호할 수 있는가?


저자는 "교육양극화’란 없으며 ‘능력을 성적으로 표시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양극상태를 수적개념이나 평균점을 통해서 만들 수는 있지만 양극화란 인간에게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다. 또 "사회집단 간에 수입격차가 있다고 양극화라 하고, 학교 성적이나 서울대에 들어가는 신입생 수에 집단 간 격차가 생겼다고 양극화라고 한다면, 이는 양 집단 간에 이간을 부추기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과 건강한 사람이 ‘똑같은 경쟁을 하자’는 것은 인간적이지도 인도적이지도 못하다. 땀 흘려 일한 사람이 번 돈으로 자식들이 누리는 것을 누가 나쁘다고 할 것인가? 정경유착이나 탈세한 돈으로 해외에서 원정출산을 하고, 이중 국적을 가지고 그들에게 유리한 능력(영어)으로 기득권을 대물림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정당하해야 하는가? 약자에 대한 배려나 기회균등이라는 가치는 우리 사회가 존속하는 한 폐기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다. 색안경을 끼고 그 눈에 비친 사실을 진실이라고 우기는 것은 독선이요, 오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홈페이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싫든 좋든 학교차는 존재한다

김선호 지음, 장락(2007)


태그:#교육,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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