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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에게 부쩍 많이 듣는 말이 내가 '구닥다리'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시대와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 구세대의 전형이라는 말이렸다. 설명을 좀 더 붙인다면 요즘 젊은 세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옛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조금 거북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도대체 구닥다리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나'라고 하는 삶의 자리에서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현기증의 정체가 분명치 않다.

 

우리집 둘째 아들 녀석이 고등학교 2학년이다. 학교 성적은 신통치 않지만, 심성이 착하고 건강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머리를 항상 더부룩하게 까치가 집짓기 일보 직전으로 하고 다닌다. 머리를 안 깎는 것은 아닌데 머리를 기계에 대지 않고 산뜻하게 깎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발 머리 좀 산뜻하게 학생답게 깎으라고 해도 들은 척 만 척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한 번은 이발소에 데려가서 산뜻하게 깎아달라고 했더니 이발사가 머리를 깎는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서러웠으면 머리를 짧게 깎는다고 눈물을 다 흘리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하면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게 하고 다니는데 내가 구닥다리라서 요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핀잔을 준다.

 

내가 사는 동네는 부산 한복판 초량동이라는 곳인데 골목길이 많기로 유명하다. 저녁나절 골목길을 지나다보면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런데 골목길 풍경이 가관이다. 남녀 아이들이 더운 여름철 서로 부둥켜안고 걷질 않나, 옷을 벗었다고 해야 할지 입었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청바지 무르팍은 다 찢어져서 너덜너덜 완전 거지꼴이다.

 

걸음도 똑바로 걷질 않는다. 남의 집 아이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를 완전 고물상 고물 취급을 한다. 한번은 중학생 남녀 아이가 우리 교회 교육관에서 벌거벗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절초풍할 뻔한 적도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살고 있는 교회 건물 3층 사택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중학교 정문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교문을 빠져나오는 풍경을 보면 영락없이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문자보내기에 열중한다. 교통량도 많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꿈 많은 소년답게 씩씩하게 활달하게 걸으면 얼마나 보기 좋겠는가.

 

누굴 탓할 마음이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새로운 풍속도에 대해 적응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기성세대가 그저 아이들을 무책임, 무방비로 방치해 두는 것이 옳은 것이고 신세대이고 세련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어른이 사라졌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는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어른이라는 칭호를 받지 못한다.

 

어른이라면 잘못된 것을 보고 "안 돼!"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젊은이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고 혀를 차는 어른들은 많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나무라는 어른들은 없다는 것이다.

 

어른이라면 때로는 길을 막고 서서 "여기는 절대로 넘어갈 수 없다"고 호통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며 흥타령에 젖어 있다고 어찌 신세대요, 세련된 기성세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핍의 빈자리를 못견뎌하는 현대사회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제껏 누려보지 못한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의 습득과 함께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어른들의 거친 이야기 속에 밴 인생철학도…. 그리워할 것도 동경할 것도 없는 사회, 필요하면 과학과 물질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사회 속에서 존경심이 자리 잡을 곳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구닥다리'라는 말 때문만은 아니다. 다만 시대의 흐름이 그러하니 요령껏 눈치나 보고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 입을 다물고 있고, 아무 쓸데없는 고리타분한 고리짝 진짜 구닥다리로 전락할까봐 그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구닥-다리 : (舊---) [구ː-따-]「명」 여러 해 묵어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사물, 생각 따위를 낮잡아 이르는 말. 사람을 일컬을 때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태그:#정체성, #구닥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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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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