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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지난 시각. 밖에는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하다. 선선해진 공기는 코 끗을 스치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어질러진 책상 서랍 한 편에서 오래된 '김광석' 테이프를 꺼내들었다. 두툼한 헤드폰으로 잔잔한 멜로디가 흘렀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녹차를 담은 찻잔에는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 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흔 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김광석 4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김광석 씨. 그의 음악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김광석 씨. 그의 음악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 김광석을 추억하는 이들의 작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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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음반과 같이 80년대 후반에서 90대 초반까지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대중가요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대학방송국 아나운서 시절 음악프로를 진행하면서부터다. 방송국에는 오래된 LP판들이 많았다. 이상우, 신해철, 이상은, 여행스케치, 피노키오… 초장기 그들의 풋풋했던 모습이 담긴 LP판 케이스는 추억이 담긴 앨범을 보는 마냥 신기했었다. 

당시 음악들의 매력은 요즘 대중가요에서는 찾기 힘든 '순애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차라리 시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사랑에 대해 가장 정제된 표현을 사용한 노랫말 그리고 통기타와 하모니카가 만들어내는 서정적인 멜로디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럼 당시 대중음악의 소재로 주류를 이룬 '순애보'는 무엇을 통해서 가능했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당시 대학가에 불어 닥친 사회적 변화라고 말하고 싶다. 즉 '민주화'를 통한 민중가요의 쇠퇴와 '사회주의 소련의 붕괴'에 따른 지식인들의 지표상실이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직선제 개헌과 같은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개혁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가 상당부분 희석되어 갔다. 80년대 후반의 캠퍼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학생계급도 '민중문화'를 자신들의 문화로 받아들이던 태도를 벗어나, 그동안 체제개혁을 외치면서 잊고 지내던 '내면의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민중가요는 이제 시위현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노래들이었지, 주류 대중음악시장이나 캠퍼스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노래는 아니었다. 결국 89년 이후 민중가요는 대중적으로 어필 할 수 있는 서정가요풍의 히트곡을 내놓지 못하며, 점차 시대에 뒤처지게 된다. 그리고 투쟁, 해방, 독재타도 등을 표현한 노랫말이 사라진 빈공간을 사랑, 이별, 우정 등을 표현한 대중음악들이 점점 파고들게 되었다.

또 90년대 초반으로 접어들면서 발생된 '사회주의의 맹주' 소련의 붕괴는 그동안 절대화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성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즉 그 이념을 둘러싼 신성함은 유행 속에 풍문처럼 사라져 버리면서, 갑작스런 삶의 기준이나 판단의 척도가 사라져버린 당시 대학생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은 방황하게 되었다.

청춘과 열정을 모두 쏟아 부었던 신념이 사라진 작금의 사태. 눈앞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남루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고통과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 대학생들은 그 빈 공간을 메울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존중받을 수 있는 일. 다시 말해 기표로만 존재하는 신성함을 채울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했다.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란 노래를 통해 가요계에 데뷔한 이상은 씨. 큰 키와 매력적인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란 노래를 통해 가요계에 데뷔한 이상은 씨. 큰 키와 매력적인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 이상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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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 직면했던 대학생들이 처음 눈을 돌린 대상이 가난하지만 순수한 사랑의 문제였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해 물신주의, 자본주의적 가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그것들을 뛰어넘는 숭고함을 '순애보'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대결구도가 서슬 퍼런 시기일 때에야 '사랑'이라는 것은 사소한 것에 불과했고 오히려 세상을 바꾸겠다는 '체제개혁의 장애물'이 되었다. 하지만 민주화의 진전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한갓 유행으로 전락했을 때, 남루한 일상 속에서 먹고살기 위해 버둥대는 인간을 동물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사랑'이라는 가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갔던 대중가수들도 변화되어가는 사회적 흐름에 따라갔다. 대표적인 민중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맴버였던 김광석, 안치환, 권진원 등도 이 시기 민중가요계를 떠나 '순애보'를 주제로 자신들의 새로운 노래문화를 만들어 갔다.

또 MBC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등을 통해 데뷔한 이상은, 이상우, 신해철 등의 신선한 얼굴들도 대중음악시장에 등장하게 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 이상은 5집 <언젠가는>


가을이 다가오면 저녁시간 라디오 프로에서 지나간 대중가요를 많이 들려준다. 특히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음악은 이중 주류를 이룬다. 계절을 타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가을의 시작은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과 왠지 모를 외로움으로 출발한다. 화려했던 계절이 지나가고 남긴 그 쓸쓸한 감정을 따뜻한 녹차 한잔, 그리고 훈훈한 '순애보'로 달래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태그:#김광석, #대중가요, #민중가요, #가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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