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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오후 4시 40분께 서울 여의도 CCMM빌딩 12층.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을 복도에서 마주쳤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비정규직 대담을 마무리한 직후였다.

 

표정은 밝았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양대 노총을 대표하는 위원장들과 잇달아 만나시는데…"라고 물었다. (대담 직후 문 전 사장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만남도 예정돼 있었다. 이 회동은 비공개였다.)

 

문 전 사장은 웃으면서,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분들이어서…"라며 간단하게 답했다. "그래도 기업가로서 (대선)출마를 선언하시고, 이렇게 (노동계 대표 인사들을) 만나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재차 물었다.

 

문 전 사장은 "요즘 사회가 얼마나 어려운가"라며 "비정규직이든가, 고용문제 등… 이 분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대책을) 고민해 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자본과 노동의 만남. '사람 중심 경제'를 표방한 문 전 사장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최근 대구 등 지방의 중소기업 현장 방문에 이어, 30일엔 양대 노총의 전현직 위원장들과 연이어 마주 앉았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양대 노총 전현직 총수와 만나

 

문국현-이수호 대담은 언론과 인터넷 등의 생중계로 공개됐지만, 문국현-이용득 회동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당초 이날 오후 이용득 위원장과 회동이 예정된 곳은 서울 강남 모 호텔이었다.

 

하지만 대담이 끝난 후 문 전 사장의 강남 이동시간을 감안해, 이용득 위원장이 직접 여의도로 찾아온 것이다. 지난 29일에는 한때 문국현-이수호-이용득의 이른바 '3자 대논쟁'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최근 주요 이슈인 비정규직 해법을 두고, 양대 노총을 대표하는 전현직 위원장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그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두 전현직 위원장이 과거 양대 노총의 연대투쟁을 이끌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도 이 같은 3자 직접회동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하지만 이후 문 전 사장 쪽과 양쪽 위원장 사이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각자 회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최근 비정규직 해법을 둘러싸고 양대 노총이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황에서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문국현 캠프의 김헌태 상황실장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인 비정규직과 고용문제를 두고 양대 노총을 대표하는 전현직 위원장과 만나 공감대를 이룬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말했다.

 

이수호 "이야기 통하는 것이 많다"... 이용득 "사람 중심 경제에 관심 많다"

 

실제 이날 이수호 전 위원장과 이용득 위원장 모두 문 전 사장의 노사관이나 비정규직 해법 등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이수호 전 위원장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도록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문 전 사장과) 이야기가 통하는 바가 많고, 상당히 저희들 쪽에서 존중해야 할 말씀이 많아서 좋다"고 평가했다.

 

이용득 위원장도 "문국현 후보의 사람 중심 경제에 관심이 많다"면서 "(정부와 자본가들이) 이런 시각을 갖췄다면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사장은 이날 현행 2년으로 돼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기간을 없애고, 장기화될 일자리의 경우 아예 정규직만 채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서구 유럽식 일자리 창출과 함께 평생학습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는 그의 지론이기도 하다.

 

이용득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선 사교육비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보육, 교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거 문제와 관련, 토지 불로소득과 건설과정에서 부당하게 챙기는 이득을 적극적으로 회수해서 '반의 반값' 아파트를 실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이 위원장은 "대선 주자 가운데 문 후보와 같은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노동계, 문국현 바람을 주목하다

 

문 전 사장과 이수호-이용득 전현직 양대노총 위원장의 연쇄 대담과 회동은 약 5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그러나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이 만남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 등은 이날 회동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계 안팎에는 이날 회동을 예사롭게 보지 않은 시각도 있다. 특히 이수호 전 위원장의 경우 민주노동당 경선 과정에서 한때 민주노총의 독자 대선 후보로까지 언급됐던 인물이다. 이용득 위원장의 한국노총은 이미 이번 대선에서 '정책연대'를 선언한 상태다.

 

조합원을 상대로 대선후보 여론조사를 발표하고, 9~10월께 독자적인 대선후보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이 위원장도 이날 문 전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한국노총 지도부가 대선 지지 후보를 결정해왔지만 조합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11월에 한국노총의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서 지지후보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당락 여부를 떠나 문국현 후보와 같은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면서 "기업가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정치사를 바꿔가는 것이 보기도 좋고, 또 반응도 좋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 산하 금융산업노동조합의 한 고위간부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문국현 바람을 노동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 바람이 미풍이 될지, 태풍이 될지 유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익구 한국노총 대변인도 "문 후보의 노동자 교육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창출 모델,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이 위원장의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와 여러모로 닮았다"고 설명했다.

 

대신 강 대변인은 "이번 회동은 정치적 의미를 떠나 책임과 신뢰의 노사관계를 위한 사회적 만남"이라며 일정한 선을 그었다. 이번 회동이 자칫 '문국현 지지'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가짜든, 진짜든 CEO는 CEO 관점으로 사물을 볼 뿐" 비판도

 

물론 문 전 사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다. 정책과 관점이 신선하긴 하지만, 기업가로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대선예비후보는 "문국현이 이명박에 비해 참신하고 진지하다"면서도 "영혼이 타락한 CEO와 비교해서 참신한 CEO이지, 진정 노동자의 아픔을 아는 지도자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심 후보는 "가짜 경제의 CEO건, 훨씬 나은 진짜 경제의 CEO건 결국 CEO의 관점으로 사람과 정치를 바라본다"면서 "경제관 역시 노동자 등 국민을 생산요소로 취급"할 뿐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도 "수구보수와 비교하면 문국현 모델이 매우 진보적이고 개혁적일 수도 있다"면서 "양심적이고 깨끗한 기업가로서 받는 평가와 노동자, 서민을 위한 진정한 진보적 대안이라는 평가는 구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바람으로 진보진영은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5년이 지났고, 문국현 바람은 다시 진보진영의 또 다른 논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불씨가 그냥 이대로 꺼질지, 아니면 어디로, 어떻게 튀어 '큰불'로 번질지 진보진영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태그:#문국현, #룰루, #이수호, #이용득,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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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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