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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뚫고 나온 갯갈대
ⓒ 이정우
볕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유월의 하늘은 더위를 업고 나서야 했기 때문인지 더 더웠고,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지열이 더 후끈거렸다. 그늘 없는 소금밭은 더 뜨거울 줄 알았지만, 우리들은 모였다. 허옇게 낀 소금버캐의 흔적들, 한때는 짱짱했을 소금창고의 사라짐. 그 후의 잔재들이 가슴을 짜안 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스러지고, 부서진 흔적들에게서 더 평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일행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 바닷물을 저장해 뒀던 곳
ⓒ 이정우
여기저기서 생명의 움틈이 보였다. 갯개미취의 여린 이파리가 두 손을 하늘로 모으고 시금치 같은 파란 얼굴을 하기도 했고, 해홍나물이 타일의 틈새를 비집고 나와 강한 생명력의 끈질김을 보여주기도 했다. 염분을 머금고 자라나는 생물이어서 해홍나물이란 이름이 붙여 줬다는데, 붉기보다는 파란색을 더 많이 띠고 있었다. 오래된 소금밭이라서 염분이 많이 빠진 토양이라는 뜻일는지도 모르겠다.

▲ 타일 틈새를 뚫고 나온 씩씩함
ⓒ 이정우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넓은 타일마당이 나온다. 소금을 일궜던 그 바닥이 아직도 촘촘하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듬성듬성 돋아나는 퉁퉁마디, 나문재의 맑은 미소가 반가웠다. 따끈한 타일 바닥에 손을 짚어 봤다. 뜨겁기도 했고, 까닭 모를 잡아당김을 느끼기도 했다. 신을 벗어 놓고 맨발로 걸어봤다. 발바닥 밑이 뜨끈하면서도 싫지가 않았다. 땡볕이기도 했고, 그늘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한껏 달궈진 타일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말 그대로 천연찜질방이다.

▲ 소금밭에 벗어 놓은 운동화
ⓒ 이정우
우리들은 엎드려서 사진을 찍기도 했고, 누워서 뒹굴기도 했다. 작은 갯개미취를 찍는다고 엎드렸다가 잠깐 졸았다. 뱃가죽도 따뜻했고, 얼굴에 스치는 염분 섞인 뜨끈함도 까닭 없이 좋았다. 그리고 연일 나돌아다닌 탓에 피곤함도 있었다. 편안했다. 짠내가 코끝을 스치기도 했고, 뜨거운 열기가 배에서 등짝에서 쳐들어왔지만 곤한 나는 잠깐의 오수를 즐기는 것에 집중했다.

▲ 갯개미취의 어린잎
ⓒ 이정우
예전과 다름이 있다면, 소금밭이 온통 붉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는 거다. 붉게 핀 해홍나물들이 소금밭 바닥을 깔고 있어야 했고, 그 뒤로는 갯갈대가 파랗게 둘러쳐져서 붉음과 녹색의 조화로움이 한껏 어우러져야 하는데, 그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생물들이 말라가고 있었다. 바닷물이 점점 빠지고 나서 육지 식물이 자리를 잡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작년까지 멀쩡하게 잘 자라고 있던 해홍나물의 흔적을 거의 볼 수가 없다는 거다. 작년의 해홍나물 흔적만이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 소금밭의 해홍나물
ⓒ 이정우
우리들은 그 소금밭에서 장난기가 발동했다. 누군가가 '우리 여기서 냉면 시켜먹어 보자' 했고. 당장 전화번호를 수소문해서 알아냈고, 냉면을 시켰다. 때맞춰 다른 일행이 연락을 해와서 점심 후에 먹을 팥빙수까지 주문을 끝냈다. 허허벌판, 소금밭에서 먹는 냉면, 뙤약볕을 피해 그늘로 찾아들지도 않았고, 주저앉은 엉덩이 밑에서의 열기도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돈 들여가는 찜질방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결론이었기에.

▲ 소금밭 풍경
ⓒ 이정우
시원했다. 천연의 찜질방에서 먹는 냉면 맛이. 소금밭에서 시키는 냉면인 줄을 안 냉면집에서는 얼음을 더 넣어줬는지 다 먹을 때까지 얼음이 둥둥 떠다녔고, 후식으로 먹는 팥빙수는 비록 슈퍼에서 공수된 것이지만, 일품 후식이었다. 확 트인 공간. 맘껏 깔깔거려도 주위에 미안하지 않았고, 철석 주저앉거나 벌러덩 누워도 눈치 볼 주위의 다른 상황들이 없었기에 정말로 우리들은 맘껏 웃고, 맘껏 뒹굴었다.

▲ 천연찜질방의 이모저모
ⓒ 이정우
참 좋다. 한낮에 아무렇게나 뒹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그 공간에서 같이 뒹굴어도 흉이 되거나 폐가 되지 않을 지인들이 늘 함께 있다는 것도. 그 순간엔, 소금창고가 몽땅 사라진 커다란 일이 있었던 유월의 끝자락이기도 했고, 그 아쉬움을 서로 달래느라 가슴 한 편이 허전하기도 했고, 아리기도 했었기 때문에 더욱 그 순간이 소중했을 거다. 훗날 그 자리에 서면 또한번의 허전함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도 우리들은 감지했지만, 아무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 작년의 마른가지 흔적
ⓒ 이정우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살려야 한다는 것도, 허물 것은 일찌감치 허물고 새롭게 일궈야 한다는 것도 모두 맞는 말이다. 각박한 일상에서 좀 더 좋은 거, 좀 더 돈벌이가 되는 것을 찾는 일도 맞는 말이지만, 자꾸 허물어져가는 우리들의 따뜻한 가슴 한 구석이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도 가끔은 되짚어 줘야 하지 않을까.

물론 추억만 먹고 살 수도 없고, 자연이 좋다고 생업을 접고 들로 산으로만 다닐 수도 없지만, 그래도 뭔가가 꿈틀거리는 가슴들을 안고, 서로에게 작은 떨림을 전할 수 있는 우리들만의 염분 섞인 정서를 나눠 가질 공간 하나쯤은 고집해도 좋지 않을까.

▲ 소금밭의 흔적
ⓒ 이정우

덧붙이는 글 | 사진을 마우스로 클릭하시면 원본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소금밭, #염전, #해홍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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