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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8천만 년 전 바다였던 곳. 그 얕은 바다 속에는 조개들이 살고 산호들이 자라고 있었다.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그 산호와 조개들은 마른 채로 땅위에 남아 있었다.

몇 억 몇 천만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 무른 땅의 석회질은 비와 바람의 침식작용으로 깎여 나갔다. 마치 예술가가 심혈을 기울여 깎은 듯한 이 절세의 기암괴석은 원가계(袁家界)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험한 원가계의 고산지대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험준한 원가계가 가장 늦게 개발된 이유가 원가계의 협곡에 흩어져 살던 토가족을 몰아내는 데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하니 말이다. 이 협곡에서 토가족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원가계는 워낙 험해서 토가족 중 일부는 산적이 되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 원가계는 참으로 상상을 뛰어넘는 곳이다. 이 지구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에 눈이 맞춰지고 안목이 높아졌음을 쓸데없이 자부하던 나의 여행경력을 비웃는 곳이었다. 장가계 안에 자리한 원가계는 장가계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한국 여행자들도 가장 많이 다녀가는 곳이다.

▲ 백장절벽. 수직으로 솟은 암봉의 높이가 모두 400m가 넘는 곳이다.
ⓒ 노시경
백장절벽(百丈絶壁). 원가계에 접어들면서 처음 만나게 되는 거대한 바위, 아니 거대한 하나의 암벽이다. 수직으로 솟은 암봉의 높이가 모두 400m가 넘는 곳이다. 칼로 자른 듯이 날카로운 절벽이 마치 시야를 가리듯이 우뚝 서 있다. 지금까지 내가 눈으로 보아온 기암괴석 암봉의 기억들이 허탈하게 느껴진다. 세상은 참으로 넓고 다양한 곳이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이 높은 암벽들의 꼭대기와 중간 중간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나무들은 원가계의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고 있다. 작은 잡목들이 바위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원가계에 비가 많이 내리고 습도도 높아서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수분이 계속 공급되기 때문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다리 이름 '천하제일교'

▲ 천하제일교. 암봉과 암봉 사이를 세로로 연결하는 다리 모양의 긴 암벽이다.
ⓒ 노시경
암봉과 암봉 사이를 세로로 연결하는 다리 모양의 긴 48m 암벽이 있다. 자연이 만든 이 다리 밑으로는 높이 약 360m의 낭떠러지가 이어진다. 이름 하여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다리라는 뜻의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 멀리서 보면 이 다리가 너무 높은 곳에 걸려 있어 마치 다리가 하늘에 닿아 보인다는 뜻도 담고 있다. 중국인들의 과장된 작명에 웃음을 금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이 다리의 이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H형 모양의 다리를 건너는 곳에 사랑의 자물쇠들이 잔뜩 걸려 있다. 중국의 명산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사랑의 자물쇠는 중국의 독특한 문화관습이다. 연인들이 사랑과 행복을 기원하며 걸어둔 것이 사랑의 자물쇠들이다.

나중에 연인들이 헤어지게 되면 이곳에 와서 사랑의 자물쇠를 다시 풀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자물쇠의 열쇠를 암봉의 낭떠러지 밑으로 던지기도 한다. 너와 나는 절대 헤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연인이 헤어져도 내던진 열쇠를 찾으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천하제일교 아래의 협곡은 접근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자물쇠를 걸고 사랑을 맹세한 연인과 헤어지면, 이 사랑의 자물쇠 미신을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천하제일교는 꽤 넓어서 사람이 건널 수 있는 폭이 3m나 된다. 거대한 수평 암봉을 건너며, 바라보는 아래쪽은 마치 구멍이 뚫려 있는 듯하고, 전망이 아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 다리를 손을 잡고 건너면 행복하게 오래 장수할 수 있다고 한다. 하늘에 걸친 듯한 다리 위에서 자연의 기를 받아들이고 싶은 인간들이 바람이 이 다리에 걸려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암봉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고 산위를 계속 걸었다. 암봉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명편옥(名片屋)과 중한우의정(中韓友誼亭)이 있다. 우리 일행의 안내인과 절친해 보이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경영하는 기념품 매점 겸 찻집이다. 이 가게의 처마 아래로는 이곳을 다녀간 한국인들의 명함이 청사초롱으로 만들어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암봉 정상 아래 부근에 만들어진 등산로를 걷다보면 가끔 기념품 가게들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한글로 된 가짜 장뇌삼을 팔고 있었다. 다들 가짜 장뇌삼인줄 알지만 가격이 워낙 싸다보니 일행 중 한명이 장뇌삼 열 뿌리를 샀다. 향내는 진짜 인삼 냄새가 나서 그럴 듯 했다. 호기심이 많은 이 동료는 이 장뇌삼 뿌리를 가져다가 우리 일행의 점심 식사 중 나온 소주에 섞어 인삼주를 만들었다. 원가계를 내려온 후 점심시간, 이 원가계 장뇌삼주는 우리 일행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어울리지 않는 엘리베이터

▲ 미혼대. 거대한 거인들이 열병하여 서 있는 것 같다.
ⓒ 노시경
미혼대(迷魂臺)는 넋을 송두리째 빼앗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이름이다. 특이한 암봉, 눈길이 가는 암봉에는 항상 중국인들이 붙여준 이름들이 있었다. 미혼대는 마치 거대한 거인들 수십, 수백 명이 열병하여 서 있는 것 같다. 봉우리 아래 협곡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정도로 깊다. 분명 혼을 빼앗는 정경이지만, 내 눈은 백장절벽에서부터 원가계의 거대한 암봉에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만약 원가계에서 미혼대를 먼저 구경했으면, 분명 넋을 잃었을 것이다.

▲ 건곤일주.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는 거대한 기둥이다.
ⓒ 노시경
건곤일주(乾坤一柱)가 이어진다. 건곤일주는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는 거대한 기둥이다. 원가계 지도에서 건곤일주를 보고, 이 건곤일주가 어디에 있는지 한번 찾아보기로 했는데, 수많은 암봉 중에 외로이 서 있는 이 암봉이 건곤일주임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꽃의 정원 같이 아름다운 암봉들이 이어지는 후화원(后花園)에서 원가계의 절경들과 헤어졌다. 나와 나의 일행은 세계 최초의 관광용 엘리베이터라고 하는 백룡(百龍)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326m를 수직으로 내려왔다. 이 강철구조의 엘리베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엘리베이터라고 한다.

절벽에 붙어 있는 엘리베이터는 단 2분 만에 나를 원가계에서 지상세계로 인도하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밖의 풍경을 내려다보면, 유리 밖의 거대한 암봉들이 순식간에 모습이 변하며 지나가고, 엘리베이터는 암봉 속으로도 154m를 들어간다.

▲ 백룡 엘리베이터. 순식간에 326m를 수직으로 내려간다.
ⓒ 노시경
나는 이 신비로운 원가계 암봉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이 도무지 마음에 안 들었다. 거대한 금속성의 기계가 아름다운 암봉에 걸려 있는 것이 왠지 조화롭지 못 하다. 이 아름다운 원가계에 굳이 세계 제일의 엘리베이터가 필요할까 싶다.

나는 이 높은 산악에서 전혀 다리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절경을 감상했지만 무언가 아쉬웠다. 산 정상을 오른 후 땀을 흘리며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과 감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순식간에 내려온 엘리베이터 아래에서, 이제는 원가계의 거대 암봉들을 위로 올려볼 수밖에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7년 5월말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가계, #원가계, #천하제일교, #미혼대,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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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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