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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자가 되고 싶다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어떤 계기로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신문이 재밌었고, 시사 잡지가 재밌었다. 그래서 막연히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막연한 꿈에 비해 나의 대학진학은 나름대로 확고한 목표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정치부 기자가 되고 싶어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그저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린 나이에 정치외교학과에 가면 신문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정치 현상들에 대해 배울 것을 기대했으니까….

그렇게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생각 없이 놀았다. 적당히 학점 관리만 해줬다. 그러면서 '부끄럽게도'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어렸을 때부터 기자라는 꿈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나는 기자가 되고 싶어한다'고 스스로를 규정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부끄럽지만 인정해야겠다. 나는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왜 기자가 되고 싶냐'는 물음에도 누구나 다할 수 있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2007년 여름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 6기 대학생 인턴기자들 단체사진.
ⓒ 최재인

나는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니다

나는 노는 것을 참 좋아한다.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 마시고 노래방 가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생활을 시작하며 익숙해진 나의 대학 3년간의 생활패턴과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아침 9시 출근, 퇴근시간 미정. 하루하루 꽉꽉 채워 바쁘게 산다는 것,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랜만에 느껴봤다. 하루 이틀만 혼자 있어도 외로움에 쩔쩔매던 내가 6주 동안 혼자 자취하면서도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깐.

"항상 '더듬이'를 세우고 다녀라."
"의심을 멈추는 순간 팬도 멈출 것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기사거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의심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숨겨진 문제들이 많다. 인턴기자 활동 전 나의 '더듬이'에는 많은 것들이 걸리지 않았고, 의심의 끈을 놓고 산 시간이 그것을 잡고 산 시간보다 많았다. 하지만 인턴을 하며 항상 '더듬이'를 세우고, 모든 것을 의심하도록 노력했다. 쉽지 않았다. 여전히 나의 더듬이에는 많은 것이 걸리지 않았고, 나의 의심은 부족했다.

어찌 한 술밥에 배부르길 바라겠는가. 인턴활동이 끝났다고 더듬이를 다시 머릿속으로 구겨 넣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작동시키다 보면 언젠가 내 '더듬이'에도 많은 것들이 걸릴 날이 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턴 후에도 별 생각 없이 살아왔던 나의 '과거'와의 작별을 지속해야 한다. 너무 안일해서 너무 편안했던, 익숙한 그 세계야. 이제는 영원히 안녕!

문화! 낯설었던 당신이여

▲ 인턴기자들이 6주 동안 함께 했던 공간.
ⓒ 최재인

2주의 교육기간이 끝나고 문화팀으로 배정받았다. 내가 왜 문화팀이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문화에 대해 아는 것도,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드라마 보고, 영화 보는 정도.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문화팀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제작보고회에서 이동건·한채영·엄정화 등 유명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들뜬 마음을 인턴기자 체험기에 그대로 옮겨 적었던 기억이 난다. <디워>를 우리나라 어떤 사람들보다도 먼저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괜히 뿌듯하고 설레기도 했다.

청소년국제영화제와 디지털영화제에 참여하며 23년 동안 영화제 한번 안 가보고 뭐하고 살았나 싶기도 했다. 이순재씨와 신구씨의 생생토크 현장에 생생하게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즐거웠다. UCC스타 조리사 투혼과 인터뷰 기사는 처음부터 내가 기획하고, 취재하고, 기사를 쓴 것이라 무엇보다 애정이 갔다.

걱정이 반이었던 시작과는 달리 문화팀 인턴생활은 항상 설레고 재밌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신문의 문화면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겼었는데 어느새 문화면이 내 눈길을 끄는 것을 느낀다. 문화는 내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전문가'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만 해도 멋진 일이다.

그래도 한편으로 남아 있던 아쉬움은 떨칠 수 없었다. 굵직굵직한 사건의 현장에 있는 사회팀 다른 동기들이 부러웠다. 날마다 인턴게시판에 올라 있는 샘물교회·이랜드·타워크레인 노동자 점거 농성 현장 등 다른 동기들의 동선을 보며 나도 현장을 뛰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이랜드 현장에 한번 나갈 수 있었던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인턴은 끝났다, 그러나...

마지막 2주는 팀을 나눠 기획기사를 짜는 것이었다. 기획 아이템을 내면서 아이템이 팍팍 떠오르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 장난처럼 동기들한테 "나는 더듬이가 없나봐"라고 말하며 진짜 그런 것 아닐까하는 생각에 걱정됐다. 내가 생각했던 아이템들은 이미 기사화가 됐던 것이거나 뒷받침할만한 팩트가 충분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2주 동안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쏟아내어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그래도 아직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많다. <오마이뉴스> 인턴은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인턴을 하기 전에는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고, 나는 기자가 되기 위한 여정의 '출발선'조차 제대로 끊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출발선을 끊었다. <오마이뉴스> 인턴 기간 동안 '연습'했던 것을 바탕으로 이제는 '실전'에 돌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마이뉴스>와 소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리라.

▲ 인턴기자들과 뒤풀이 자리에서 한 컷. 나는 오른쪽 맨 앞에 앉아있다.
ⓒ 최재인

6주 동안 내 곁에는 나와 같이 출발선을 끊은 11명의 동기들이 있다. 더운 날씨 빡빡한 일정에 쉽게 지칠 만도 했지만 누군가와 함께 같은 길을 간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되었다. 경험 못지않게 인연은 소중하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그 말을 다시 한 번 옮겨 적고 싶다.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꽂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밀 씨를 또 딱 하나 떨어뜨리는 거야.

그 밀 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지금 니들 앞에, 옆에 있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엄청난 확률로 만난 거고 또 나하고도 그렇게 만난 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부르는 거야. 인연이라는 게 좀 징글징글하지.

-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中 -

태그:#인턴, #오마이뉴스,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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