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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전두환>
ⓒ 시대의 창
백무현 화백이 <만화 전두환>을 펴냈다. 지난 2005년 5월 <만화 박정희>를 펴낸 이후 2년 여만이다.

백 화백은 <만화 박정희>로도 충분히 홍역을 앓았다. 소송 협박에 시달렸고 일부 보수층은 이 책 출간에 맞선 <인간 박정희>를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아예 '어린이 만화까지 박정희 때리기'에 나섰다며 이 책을 어린이 만화로 폄하하더니 "엄정한 논쟁을 넘어 '왜곡'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가"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지칠 법 하건만 백 화백은 그 논란 속에서 이미 <만화 전두환>을 기획하고,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치지 않는 그의 만평은 '빚'

<만화 박정희>가 '인물'에 초점을 두었다면 <만화 전두환>은 '시대'에 방점을 찍었다. '화려한 휴가'와 '인간에 대한 예의'. 백무현은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5월 광주'를 비롯한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집요하게 파헤쳤다.

<만화 전두환> 역시 그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수많은 논란거리가 만화 곳곳에서 발견된다. 보수층의 공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백 화백에게는 현대사를 향한 일종의 사명감이 생긴 것일까. 피하지 않고 묵묵히 가겠다고 한다. "진상을 규명할 계기가 된다면 소송도 감수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먼저 간 사람들에게 진 빚을 조금씩 갚는 것이라는 게 백 화백의 생각이다.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사> <언론, 딱 걸렸어>까지 포함, 네 번째 작품을 내놓은 백 화백은 다음 작품으로 <만화 김대중>을 구상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8월 1일 오후 인사동 기자간담회에 앞서 백무현 화백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지난 2005년 5월 <만화 박정희>를 출간하면서 후속작으로 <만화 전두환>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책이 늦게 나왔다. 5월도 아니고 7월에 나왔다.
"기획은 이미 <만화 박정희> 출간 직후부터 시작했다. 그림은 올해 3월부터 그리기 시작했고… 기획 및 취재에 2년여 걸렸다. 당초 올해 5월 18일에 맞춰 출간하려고 했는데 여러 사정상 좀 늦어졌다."

- <만화 박정희>에서는 글만 맡았는데 이번에는 그림까지 그렸다. 그런데도 그림 작업은 상대적으로 일찍 끝난 것 같다.
"속도도 냈고, 또 다른 분들이 많이 도와줬다. 이번에는 팀을 짜 집중적으로 그렸다. <만화 박정희>를 그렸던 박수찬 화백과는 앵글이 조금 달라 이번에는 직접 그린 것이다. 나는 빠른 전개를 좋아한다."

"영화 <화려한 휴가> 봤는데... 불편했다"

▲ 백무현 화백. <만화 전두환>을 통해 1979년 12·12 하극상 반란부터 15년의 현대사를 짚어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묻지 않을 수 없는데, 왜 다시 전두환인가?
"<만화 박정희> 출간할 때 사람들이 '차기작은 전두환 아니냐"고 은근히 물었다. 그리고 <만화 박정희> 독자들의 요구도 있었다. 물론 속으로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이 전두환 아닌가. 어떻게 보면 <만화 박정희>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87년 6월 항쟁 20년이기도 했고, 정리할 시점이라는 판단을 했다."

- 만평가들은 한 컷을 완성하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데, 일간지 만평을 그리면서 책을 기획하고 취재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
"2년 동안 단행본 60여권 등 엄청난 참고자료를 읽느라 눈이 빠질 정도였다. 생존인물들을 다루다 보니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몇 배 더 힘이 들었다. 사람들도 일일이 만났다. 일(만평) 끝나고 바로 작업실로 가고 아침에 다시 회사로 가고. 몇 달 동안 많이 고통스러웠다. 조정래 선생은 감옥에서 10권이 넘는 책을 탈고했다고 하는데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신 열사들께 죄송한 말이지만… 많이 힘들었다."

- 현대사 조명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백무현에게 전두환은 어떤 기억이고 경험이었나. 개인적 경험이 투영되어 있는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글쎄…… '엽기'? 전두환은 '엽기' 그 자체 아닌가. 광주항쟁에 대한 마음의 부채의식,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나도 그런 게 굉장히 많았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할까. 역사의 진실을 좇고 또 그것을 독자들이 공유한다면 내 부채의식이 조금이라도 갚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영화 <화려한 휴가>와 1권 '화려한 휴가'는 이름도 같지만 묘사장면도 많이 비슷하다. 혹시 영화 봤나?
"봤다. 내 책 내용과 너무 비슷해 정말 놀랐다. 그쪽도 상당히 연구 많이 했다. 그러나 안성기씨가 맡은 예비역 대령 역. 그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학살 군인에 맞서 싸운 사람이 예비역 대령이라니? 시민군 윤상원 대변인 같은 사람은 광주 항쟁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이런 분들 중심의 영화였어야 하지 않을까. 좀 불편했다.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한 사람들은 구두닦이·택시운전사·버스운전사 등 하층 계급이었다. 예비역 대령? 어울리지 않는다."

"엽기 전두환와 싸우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

-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갑자기 병을 얻어 입원했는데 그날이 5월 18일이었다. 책 발간은커녕 출근도 못하고 병원 신세를 졌다. 그리고 병원 TV를 통해 광주항쟁 (27주년) 기념식을 봤다. 그 순간이 가장 안타까웠다."

- 한창 작업 중에 버지니아테크 관련 사태가 터졌다. 이외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는데?(백 화백은 버지니아테크 사건 당시 부시와 미국의 총기소지 허용을 풍자한 만평을 실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사건으로 한동안 만평 연재를 중단했었다.)
"맞다. 그 일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굉장히 곤혹스러웠다. 만평도 잠정 중단됐고, 만평 게재를 재개한 이후에는 느닷없이 장염에 걸렸다. 그런데 입원한 날이 공교롭게도 5월 18일이었다.(웃음) 스스로 단련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 <만화 박정희>도 그렇고 이번 책도 그렇고, 만평가라기보다는 한 명의 역사학자가 서술한 것 같다.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 어떤 계기로 현대사에 천착하게 됐나?
"386의 기억이 다 비슷하겠지만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등을 보면서 (생각이) 뒤집어지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자연스럽게 현대사가 정말 잘못됐구나 생각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습작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1995년 한 지방신문에 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현대사를 집필해야겠다 생각했다."

- 전문적 식견이 많지 않아 취재나 사료 검토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 같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에피소드나 해프닝도 있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어떤 관점으로 책을 쓸지가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사람을 많이 만나 자문을 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새로 알게 된 사실도 많다. '화려한 휴가'가 당시 광주에 투입된 진압군이 펼친 작전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건 사실과 다르다. <한겨레> 기자 출신 윤재걸 선배가 5·18을 취재하면서 책을 냈는데 그 책 제목이 '화려한 휴가'였다. 진압부대 지도부가 저런 문학적인 작전명을 만들 능력이나 있었겠나."

▲ <만화 전두환> 1권 '화려한 휴가'중 한 장면. 백무현은 '학살'만을 부각하지 않고 광주항쟁을 둘러싼 역사의 조각들을 맞춰간다.
ⓒ 시대의 창
"KAL 858사건 진상규명된다면 소송도 반길 것"

- 책 얘기를 좀 하자. 우선 민감한 장면이 많다. 특히 KAL기 폭파 사건은 '조작'이라고 확실히 표현했다. 특히 KAL기 사건 관련해서는 전두환이 모든 것을 준비해 두고 스위치를 누르는 장면으로 처리했다. '팩트'라고 자신하나."
"스위치를 누르는 장면. 그게 만화가 가지고 있는 묘미다. KAL사건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증거가 없는 것이 신기하다는 거다. 공중에서 폭파했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을 수 있는지. 국정원 등으로부터 고소당할지 모르겠지만 난 전두환 정권과 안기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회에 문제제기하고 싶었다. 소송도 각오하고 있다. 차라리 이번 일을 계기로 사건 규명이 된다면 반길 것이다."

- <조선일보> 방우영 사장과 <동아일보> 김병관 사장이 노태우 대통령 앞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도 나온다.
"이미 보도된 적 있는 사실이다. 꼭 이 장면뿐 아니라 그 당시 권력과 언론의 추악한 관계가 얼마나 많았나. 전두환을 칭송해 마지않았던 언론 보도 역시 일일이 뒤졌고 광주항쟁 등을 보도한 <조선일보> 사설 등도 꼼꼼히 살폈다. 혹시 빌미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 책 맨 마지막 페이지에 '이 책을 전두환 시대를 살아온 분들과 이름없이 스러져간 역사의 넋들에게 바칩니다'라고 썼다. 그러나 '전두환 시대'는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맞다. 전두환은 연희동에만 있지 않다. 우리나라 사방 도처에 전두환이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전두환을 고발하고 싶었다. 삶의 공동체보다는 탐욕을 좇는 모든 사람과 그런 사회적 분위기, 이게 모두 전두환이다."

- 모든 등장인물을 실명 처리하고 있는데, 딱 한 명 이니셜 처리가 있다. 87년 대선 당시 김영삼 광주 유세 때 부하에게 '사람을 동원해 지역감정을 일으키는 사건을 만들라'고 명령하는 보안사 준장인데. 유일하게 ㅎ준장으로 표현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끝까지 애썼는데, 확인이 안 됐다. 사료에도 H준장으로만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이니셜 처리했다."


"나는 '나이롱 역사학자', 시대적 사명감 있어야 한다"

- 작업중에 경남 합천 '일해공원' 추진 계획을 들었을 텐데. 책에도 맨 앞과 맨 뒤에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강조했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그냥 담담했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생각했다.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인터넷카페도 생기는 마당인데. 그리고 우리 사회 도처에 전두환이 깔려있는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분노를 넘어선 담담함을 느꼈다."

- 인간 전두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서도 전후 현대사의 주요장면을 모두 담고 있는데 이 흐름을 관통하는 맥은 무엇인가?
"쉽게 말해 '호남은 어떻게 해서 왕따가 됐는가'다. '빨갱이'이라는 딱지는 어떻게 붙여졌는가. 전라도·호남을 포위해 온 우리나라 현대사의 장면들을 다루며 호남의 집단 이지메 현상을 되짚었다. 내란 음모 사건 하나로 호남이 '빨갱이 세상'이 됐는데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만화 박정희> 때도 소송 얘기가 있었다. <만화 전두환> 역시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만화 박정희> 때도 박지만씨 등이 소송을 준비하려다 관둔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국정원 등에서 검토 중일 것이다. 김지하 시인도 불편할 수 있고.(책에서 김지하는 그 유명한 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를 <동아일보>에 실으려 했으나 거절당했고 며칠 뒤 그 글은 조선일보에 실렸다,) 하지만 다 각오하고 있다. 강조하지만 차라리 그것으로 인해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규명된다면 오히려 반길 일이다. 하지만 만평가가 이런 것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물론 전두환이지만 어떤 캐릭터가 가장 기억에 남나?
"박종철 사망사건의 진실은 한 교도관의 용기에서부터 출발했다. 또 광주항쟁 때는 한 학교 선생이 공직을 박차고 총을 들었다. 이런 사람들이 민주화의 주역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마음에 남는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민주주의도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다음엔 <김대중>?

- 만평가의 영역을 현대사 연구의 영역으로 넓혔는데 앞으로도 이 작업은 계속할 생각인가?
"'나이롱 역사학자'에 불과하다(웃음). 현대사를 대중적으로 옳게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시사만평가들이 해야 할 일 많다. 시대적 책무가 있다. 시사만평가들은 일반 만화 못 그린다. 그릴 것이 따로 있다. 앞으로 이런 책무나 사명감은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독자들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 어떤 생각을 했으면 좋겠는가?
"아, 전두환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시대가 있었구나. 이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특히 젊은 층이 그렇다. 책을 내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는데 '영화에는 '왜'라는 것이 빠져있었는데 만화를 보고 그게 채워졌다'고 했다. 보람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책을 읽었으면 한다."

- 다음 작품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기획을 준비중인가?
"…솔직히 '김대중'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만화 김대중>을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남북화해시대를 준비하는 김일성이나 김정일도 도전해보고 싶다. 최근 두루두루 자료를 살피고 있다.

만화 전두환 1~2 세트 - 전2권 - 2판

백무현 글.그림, 시대의창(2016)


태그:#만화 전두환, #백무현, #화려한 휴가, #만화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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