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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무장 세력에 억류된 23명의 한국인들과 파송 단체인 샘물교회와 한민족복지재단에 대해 일고 있는 비난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람의 생사가 달린 문제를 두고 "순교하러 갔으니 순교하게 해라"는 등의 글이 너무 쉽게 네티즌들에 의해 회자되는 부분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24일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피랍자 가족들이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는데, 여러 견해와 해석이 있을 순 있지만 국민 여러분들 특히 네티즌 여러분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기독교가 보여 왔던 공격적이고 물량 중심적인 선교행태로 인한 일반 대중의 강한 거부감을 고려할 때, 지금의 비난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출국 전 정부로부터 출국을 보류할 것에 대한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경고하는 문구가 적힌 안내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을 만큼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과시적인 일련의 행동들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한국 교회의 잘못된 선교 정책을 돌아보고 자성의 기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 성직자로서의 저의 생각입니다.

주러 와도 미운 놈이 있다?

▲ 박은조 한민족복지재단 이사장이 23일 오전 경기도 분당 샘물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과 관련해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저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인도네시아에서 95년도부터 2년간 해외봉사활동을 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해외봉사활동을 떠나기 전, 국내 교육 기간 중 교육을 담당하는 어떤 분이 했던 말 중에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말 속담에 주러 와도 미운 놈 있고, 받으러 와도 고운 분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을, 2차 대전 이후 국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뀐 유일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 한 켠에 꼭 새겨서 겸손으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주러 와도 미운 놈 있다"는 말을 여러 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컸던 탓에 2년간 봉사활동을 하며 늘 염두에 두고 활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는 제국주의 시대 때 식민 지배를 받았었고,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 세계최빈국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 탓에 우리보다 훨씬 많은 국제원조를 하면서도 늘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여타 서방국가나 일본과는 달리 개도국으로부터 남다른 호응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혹 '내가 가진 것이 있으니 너희들은 감사하게 받으라', 혹 '너희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내가 주는 걸 받아야 해' 하는 식의 물량주의적이고 과시적인 태도를 갖고 접근하면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십상이고, 주러 가서 뺨 맞기 딱 좋습니다.

설령 순수하게 인도적인 입장에서 봉사를 한다고 해도,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정부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치안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의 활동은 정부의 스파이는 아닌지, 그들과 한통속이 아닌지 하는 의심에서부터, 어디 꼬투리 잡을 건 없는지 하나하나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단기 체류하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고, 여럿이 팀을 이룬 종교적 성향을 띤 단체인 경우에는 더더욱 갈등과 위험 발생 요소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23명이 위험 지역에 들어갔던 것은 한국교회의 무모한 선교정책이 빚어낸 결과라는 비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문화적인 차이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오해와 감정적 불편함을 낳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 깃발과 점집

▲ 卍자가 새겨진 깃발-위는 흰 색, 아래는 빨간 색으로으로 인도네시아 국기와 같은 모양이다.
ⓒ 고기복
얼마 전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길을 가던 중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길모퉁이에 높이 걸려 있던 깃발을 보며 누군가 먼저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 저거 메라 뿌띠(Merah Putih, 인도네시아 국기)네. 저기 인도네시아 사람 사나?"

그런데 그 깃발을 본 또 다른 친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상하네, 메라 뿌띠 나찌잖아. 인도네시아에서는 저러면 벌 받는데"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기는 흰 색은 위쪽, 빨간 색은 아래에 절반씩 되어 있는데, 우리가 본 깃발엔 흰 색에 만(卍)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만자를 알 리 없는 인도네시아 친구 입장에서는 나찌 문양과 같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깃발이 국기가 아니고, 점집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깔리만딴(Kalimatan)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우리 동네에도 점쟁이들이 많은데, 한국에도 있어요? 깔리만탄에서는 그 사람들이…"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매해 독립기념일 때마다 마을 어귀에 국기를 그릴 정도로 국기에 대한 강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이고 보면, 그러한 반응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깃발을 단 사람은 인도네시아 국기와 똑같은 모양에 만자를 새겼지만, 자신이 인도네시아 국기를 훼손했거나 인도네시아 사람을 무시할 의도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깃발을 보았던 인도네시아인들은 그 깃발을 보며, 원치 않게 기분이 상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러한 문화적 충돌은 외지 사람들과 현지인들 사이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단기 체류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문화적 무지에서 오는 실수를 했을 때, 오해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매사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일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내세우는 믿음도 좋지만, 세계 곳곳의 분쟁현장에서 현실을 무시하고 선교니 봉사니 하며 조급하게 나서는 것은 오히려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위험에 직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더욱이 수십 명이 동행하며 여기 저기에서 드러내 놓고 기도하는 모습은 물량주의적인 선교로 비춰짐과 동시에 타종교를 무시하는 적대적 행위라는 비난을 받기에 딱 좋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번 사태가 지혜로운 선교 정책의 부재가 가져온 비극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불사 각오하고 선교를 감행하는 것은 믿음이기 이전에 맹신에 지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들은 구원받아야 돼"라고 말하며 모든 민족을 선교의 대상으로 보고, 선교적 열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가르침에 합당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목숨을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목숨에는 교회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선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사람과 함께, 선교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포함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가 혹은 선교적 열정을 품은 사람이 목숨을 담보하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사람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수도 있는데, 한국교회의 선교행태의 잘잘못을 논한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논의가 한국 교회의 선교 정책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금번 피랍 사건과 관련한 온라인상의 논의들이 종교에 대한 비판 이전에 23명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논의들이 선행되기를 바라고, 그들의 안전을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제가 일하고 있는 쉼터에는 대부분이 무슬림 신자들이 오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사인 제가 그들에게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중에는 저에게 십자가를 선물하기도 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조급하게 공격적으로 다가가지 않아도, 기도 가운데 선교의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는 점을 한국교회가 알았으면 합니다.


태그:#아프카니스탄, #샘물교회, #해외봉사, #한국교회, #해외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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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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