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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월화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 극본을 쓴 김현희 작가
ⓒ 이종필
'강남엄마'로 상징되는 사교육 실태를 직접 다뤄 화제를 뿌리고 있는 SBS TV 월화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6월 25일 첫 방송). 이 드라마 시청 소감을 기사로 쓴 것(7월 2일 '강남엄마 따라잡기? 개천에 독약 풀기!')이 계기가 돼 작가 김현희(36)씨를 만났다.

코미디와 시트콤으로 출발한 김현희 작가에게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드라마 입봉작이다. 물론 언론 인터뷰도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나와 마찬가지로 김 작가 또한 71년 돼지띠였다. 드라마에 비친 강남 사교육의 현실도 믿겨지지 않았지만, 그가 나와 동갑이면서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비강남 엄마'란 사실 역시 믿기 어려웠다.

다음은 지난 6일 광화문의 한 일식집에서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를 요약한 내용이다.

'사랑타령' 싫어 사교육 문제 쓰게 돼

- 딸이 초등학교2학년이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특목고에 보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못 보내죠. 특목고 보내려면 벌써부터 뭔가 기초가 잡혔어야 하는데 지금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제가 자신이 없습니다."

-이 드라마를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습니까?
"주변에 보니까 어린이집 엄마들이 다들 애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만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작년 여름부터 시놉시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상적인 사랑타령은 도저히 못 쓰겠더란다. 한류열풍이 한창일 때는 다들 그런 시놉시스를 원했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사회성 강한 드라마를 코믹하게 그릴 수 있는 작가가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을 터인데…. 어디서든 그놈의 획일화는 참으로 고약하다.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아니라 특목고에 목을 매는 중학생에 주목한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은 핵심 단계가 특목고로 내려왔습니다. 드라마 준비하면서 만난 모 외고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거기서 제일 공부 못하는 애가 서강대 간다.' 이번에 명문대들이 교육부와 싸우는 것도 어떻게 특목고 애들 많이 뽑아 가느냐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게 그 똑똑한 애들 대학 들어가면 또 토플 공부하고 고시 공부하고 공무원 시험공부하고 그래요."

-그 아이들 대부분은 삼성 취직하려고 하죠.
"삼성 다니는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신입사원들 보면 과학고 나오고 서울대 나오고 박사 받고, 외고 나오고 또 연고대 나오고… 그러고 들어와서 연봉 5천만 원이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 <강남엄마 따라잡기> 주요 출연진들. 하희라, 유준상, 정선경, 김성은, 임성민 등이 출연했다.
ⓒ SBS
-강남 실정을 잘 모르는 저 같은 사람은 드라마 내용이 진짜 사실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다 진짜에요. 위장전입 조사하는 경우도 그렇고. 초등학교 1학년이 체르니 30번을 치고 바이올린을 하고 수영은 접영까지 마스터 하고 영어를 하고 그래요."

초등학교 입학해서 못 따라가는 자기 딸에게 한소리 했다가 "왜 자기를 유치원 때부터 공부시키지 않았느냐"고 울고불고하는 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지금 비강남 이야기죠?
"네. 강남도 물론 마찬가지에요. 거기는 뭐…. 소수의 강남엄마들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처럼 굉장히 미화가 되고 그래서 나머지 엄마들은 정말 한심한 여자가 되는 거 있잖아요. 그래서 엄마들의 자식에 대한 죄의식, 이런 게 저만 해도 있거든요."

-자식 없는 게 상팔자라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정선경(이미경 역)씨가 그런 얘기 들으면 무서워서 애를 못 낳겠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시트콤을 쓰셨는데요. 혹 시트콤 느낌의 우연적 요소가 드라마의 사실성을 떨어뜨리지는 않을까요?
"그런 질문은 처음인데… 원래는 서상원(유준상 분, 중학교 교사 역할)이 사립학교에 3천만원 주고 들어가는 설정이 있었는데, 이것까지 하면 너무… 안 된다고 해서."

-전학 간다고 돈다발 들고 가는 게 더 충격적이던데요.
"사립학교는 전학 가려면 그렇게 가요."

강북에 사는 이미경(정선경 분)이 강남으로 이사 가서 아들을 명문중학교로 전학시키려고 돈 가방을 들고 학교 교감을 찾아가는 장면이 그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선생님 뽑을 때 돈 받는 게 덜하지 않나요?
"그런데 그 부분이 더 민감하죠. 촌지문제만 해도 지금 막 난리인데…."

아직 비정규직으로 있는 내게 대학교수 되려면 요새 얼마가 필요하냐고 하문하시는 집안 어른들 모습이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 아는 이야기, 아직도 이게 그리 민감한가 싶기도 했다.

물론 김 작가는 일선 선생님들의 고충도 알고 있었다. 드라마를 쓰기 위해 젊은 선생님들이 자주 가는 카페에 가입해서 올라오는 글들을 모니터링했더니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막 대드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고. 문자는 기본이고 MP3 듣고 있어도 통제가 안 되는 게 요즘 교실의 현실이라나.

"절대 강남 때려잡기 아니거든요"

▲ <강남엄마 따라잡기> 한 장면. 유준상(서상원 역)은 극중 중학교 교사로 나온다.
ⓒ SBS
-항간에는 이 드라마가 '강남엄마 때려잡기다', 혹은 '위화감을 부추긴다', 그런 비판들도 있던데요.
"이건 절대 강남 때려잡기가 아니거든요. 강남엄마는 요즘 세대에 공부 잘 시키는 성공한 엄마의 상징입니다."

김 작가도 요즘 악성댓글에 무척 시달리는 모양이다. 현민주 역으로 나오는 하희라씨가 아예 인터넷은 당분간 끊고 살라는 충고까지 했다니.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해 간략한 소개한다면.
"각자의 결말이 있어요. 제 생각엔 각자에게 가장 행복한 결말이 되지 않을까, 각자가 다 길을 찾을 거예요, 아마."

-해피엔딩이군요.
"네. 그런데 중간에 11~14부(10일 현재 6회 방송)까지 좀 슬플 거예요. 이미경(정선경 분) 집안은 점점 더 재밌있어 질겁니다. 자기들은 굉장히 진지하고 심각한데 상황이… 하하하. 그 집은 쓰면서도 저도 너무 웃겨서 자다가도 막 웃었어요. 그 집이 제일 행복해요."

-돈이 많으니까.
"네. 돈이 많으니까."

하긴 코믹 드라마가 슬프게 끝나는 것도 좀 이상하긴 했다. 이미경 역의 정선경씨 연기는 완벽을 넘어선 듯하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윤수미(임성민 분)네 남편은 서울대 나와 봤자 기껏해야 은행원이고, 돈도 별로 없는 것 같던데….
"7회쯤인가 가족끼리 회식을 합니다. 회식하고 돌아와서 그럽니다. '서울대 나오면 뭐해? PB센터? 웃기고 있네. 내가 돈 갖다 때려 넣으면 걔네들 나한테 와서 굽신거려야 돼.'"

"'서울대 없으면 어떨까?' 그런 대사도 써 볼까요?"

-마침 요즘 교육부와 대학들 간의 기세싸움이 드셉니다. 3불 정책과 내신반영비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사실 학교별 수준 차가 있는 건 확실해요. 이 수준차가 요즘은 학원의 질로 결정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학원의 상술에 놀아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동산 문제도 얽혀 있어요. 좋은 중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아파트는 주변보다 1억이 더 비싸요."

드라마 감독이 인터뷰할 때는 기자들이 이렇게 어려운 질문 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했다는데, 그만큼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내친김에 평소 가지고 있던 나름대로의 대안을 슬쩍 던져봤다.

-일단 서울대를 없애고 국립대를 광역 단위로 모집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제가 그런 대사를 써 볼까요. '서울대 없으면 어떨까?' 마침 이미경 대사 중에 그런 게 있거든요. '야, 서울대 나와서 꼴통 짓을 하면 철학이 있다더라. 그런데 고등학교 나와서 꼴통 짓 하면 그냥 꼴통 된다.'"

-마침 올해 대선이 있습니다. 대선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그런 얘기 해 주고 싶어요. 겨울에 가난한 집 부모들은 일찍 집을 나가니까 어린 학생들이 아침에 학교에 와서 있는 거예요. 깜깜하고 추운 교실에. 초등학교 1, 2학년 애들이. 그래서 방과 후 학교뿐만 아니라 방과 전 학교도 꼭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청년실업도 해결하고. 아이들을 잘 교육하는 것이 결국 사회 전체로 이득입니다."

-사회 일각에서는 육아정책 같은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라고 하며 반대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절대 아닙니다. 육아문제는 꼭 나라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특히 방과 후 학교는 나라에서 꼭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전 7시부터 맡길 수 있고 야간에도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도 꼭 필요합니다. 부모가 죄의식 없이 맡길 수 있는 데가 필요해요. 애가 사랑받고 안전하고 집같이 따뜻한 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없으니까 환장하죠."

정권 초기 분배를 성장과 대립시키며 격렬하게 반대했던 보수 언론들이 나중에는 슬그머니 정부에 육아 대책을 요구하는 뻔뻔함도 도마에 올랐다.

"김수현 작가가 불륜에 마침표"

▲ 김현희 작가
ⓒ 이종필
- 경쟁작인 <커피프린스1호점>(MBC TV 월화드라마)의 기세도 만만치 않은데요. 부담되지 않으신가요?
"엄청 부담됩니다. 윤은혜(<커피프린스1호점> 주인공)는 내가 봐도 너무 예쁘더라고요.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아무튼 걱정입니다. 만약에 시청률 떨어지면 분명히 기사들은 그렇게 쓸 거예요. '그것 봐라, 왜 다뤘어, 강남엄마 때려잡더니…' 그래서 15% 밑으로는 안 내려갔으면 좋겠어요."

역시 드라마 관계자는 시청률에 매우 민감했다. 고양이 앞의 쥐라도 이보다는 당당할 것을.

-전작자인 김수현 작가(<강남엄마 따라잡기>는 김수현 극본 <내 남자의 여자> 후속이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드라마 작가인데요. 너무 식상한 플롯을 아직 유지하시는 건 아닌가요?
"저는 김수현·김운경 선생님을 제일 존경해요. 김수현 선생님 드라마는 같은 얘기지만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요. 인간에 대한 깊이가 있죠. 그리고 김운경 선생님은 드라마를 문학으로 끌어올리신 분이고요. 김수현 작가는 지금까지 40년을 너무너무 많은 새로운 것을 계속 보여 주셨어요.

예순이 넘어서 또 새로운 걸 보이는 것은 너무 힘든 거고. 그 나이 때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써야 된다고 생각해요. 김수현 선생님의 그 대사라든가 그 분위기는 누구도 못 쓴다고 생각하거든요. 등장인물 세 명으로 어떻게 그런 얘기를 24부작을 써요. 불륜 하나 가지고.

김수현 선생님은 불륜에 마침표를 찍어 주셨어요. 지금 제작사들에서 웬만한 불륜 드라마 받으면 퇴짜 놓습니다. 더 이상의 불륜은 없어요. 새로운 시도는 젊은 작가들이 해야 돼요. 그런데 지금 방송국에 들어오는 거의 대부분, 기획안의 95%가 로맨틱 코미디에요. '삼순이' 뒷북이죠. 제 기획안이 처음 통과된 건 신선하다, 소재가 독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부터도 계속 그런 걸 써야죠."

'더 이상의 불륜은 없다!' 미처 내가 깨닫지 못한 바였다. 인간에 대한 통찰, 그렇지. 예전에 <로마인 이야기>의 역자 김석희 선생을 인터뷰할 적에 시오노 나나미의 종국적인 메시지가 결국 이거 아니냐고 무릎을 쳤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작품을 쓰실 건가요?
"다음에는 이렇게 욕먹는 거는 안 쓰고요. 생각은 해 뒀어요. 사회상을 반영한 얘기."

-한국 드라마가 위기라고 합니다. 작가로서 위기를 느끼시나요?
"위기죠. 많이 위기입니다. 사실 드라마 16부작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16부를 다 쓰면 책이 세 권이 나옵니다. 어쩔 때는 쓰다가 너무 지루하고 앞에 뭐 썼는지 모를 때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드라마 끝에 가면 흐지부지, 용두사미 되고.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끝에는 어디 안드로메다로 가게 되고…."

한국에서 미드(미국 드라마)와 일드(일본 드라마)가 인기입니다.
"다들 왜 미국만큼 못 만드느냐 하는데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비는 기껏해야 (편당) 1억 정도입니다. 게다가 시청률이 낮으면 PPL(간접광고)이나 해외판매도 못합니다. FTA가 되면 많은 제작사들이 망할지도 모릅니다. 많이 바뀔 거예요. 방송가에도 비정규직이 늘어날 것이고요. 잘 되는 사람은 잘 되겠지만, 양극화는 더 심해지겠죠."

-FTA 때문에 좋은 드라마에 돈이 많이 몰리면 작품의 질이 높아지지 않나요?
"좋아지죠. 세트나 의상이나 규모나…. 요새는 제작사가 많이 늘어나면서 작가들 형편이 그나마 좋아졌습니다. 그전에는 작가들이 먹고살 게 없었어요. 드라마 준비하는 데 2~3년 걸리거든요."

-제작비의 많은 부분을 작가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작가한테 투자해야죠.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을 정말로 좋아해요. 그래서 '일드'가 우리나라 들어오면 성공을 잘 못하는 게 거기는 스토리텔링이 약해요. 그리고 미드도 보다 보면 지쳐요. 왜냐하면 대부분 같은 패턴의 반복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50부작, 100부작 이렇게 하는 데가 없어요. 그러려면 스토리텔링이 정말 필요한데 그걸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요. 제일 쉬운 게 불륜이죠. 앞으로는 문화와 창작으로 먹고사는 사회가 될 텐데… 아무튼 젊은 작가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김현희 작가 약력

1971년 서울 출생
한양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KBS 코미디 작가 공채 5기
<남자셋 여자셋> <점프> <뉴논스톱>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집필
작가가 작가한테 투자하라면 자기 밥그릇 챙기기처럼 보이겠지만, 내가 봐도 작가에 대한 투자가 절실해 보인다. 지식과 콘텐츠를 직접 생산해 내는 사람들의 가치를 우리가 높여줘야 고급명품이 나온다. 이런 사람들 싸구려 취급하면, 우리의 문화상품 전체가 싸구려로 전락한다.

-앞으로 이런 드라마 꼭 써 보고 싶다, 그런 게 있습니까?
"저는 <개선문> 같은… 만약에 절절한 사랑 얘기를 쓴다면 <개선문> 같은 거 써 보고 싶어요."

레마르크의 <개선문>. 요즘 젊은 사람들 책 안 읽는다는 작가의 한탄에 가슴이 뜨끔했던 나는 간만에 아는 책이 나와서 안도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읽어 본 이 책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우리도 전쟁을 겪었으니까…'라고 겨우 대꾸했다.

-끝으로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이 드라마는 강남 때려잡기나 강북 폄훼나 편 가르기 얘기가 아닙니다. 잘못된 교육 때문에 얼마나 엄마와 아이가 힘든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무 좋은 엄마 되려고 하는 건 아닌가, 죄의식을 갖지는 말자, 그런 얘기지요. 본격적인 얘기는 7회 넘어가야 하거든요. 끝까지 봐 주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태그:#강남엄마 따라잡기, #김현희, #사교육,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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