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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과 포즈를 취한 트랜스젠더 무희
지난 한 해 한국인 해외여행자 수는 천백만 명이 넘는다. 그 가운데 태국 방콕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는 백만 명에 이른다. 방콕은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천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아시아 최대의 관광도시다. 이 도시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 코스가 바로 트랜스젠더 쇼와 무어이타이 경기장이다.

태국 인구 7천만 명 가운데 100만 명에 이르는 트랜스젠더들과 태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무어이타이 선수들은 방콕을 찾은 관광객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방콕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액세서리'같은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콕의 진짜 주인들이기도 하다.

이방인들의 달콤한 휴식과 태국 서민들의 치열한 삶이 마주하는 곳 방콕. 그 곳에 두 명의 여자가 있다. 한 사람은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성의 삶을 살고 있고, 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무어이타이 선수다.

'쁘라디사안', 태국에서 무어이타이 선수로 살아간다는 것

▲ 무어이타이 선수 쁘라디사안의 경기 장면
태국 전통 격투기인 무어이타이는 고된 훈련과 거친 경기로 유명하다. 경기 도중 선수들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경우도 많다. 무어이타이 선수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이 길로 뛰어들었다.

여자 무어이타이 선수인 '쁘라디사안'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열일곱 어린나이에 무어이타이를 시작해 지금까지 9년 동안 선수생활을 해왔다.

그동안 수많은 경기를 치렀고 대전료도 받았지만 가정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경기에 출전해 받는 대전료는 패하면 우리 돈으로 3만원, 승리하면 15만원을 받는다. 승패에 따라 다섯 배나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경기 일정이 가까워 오면 훈련은 더욱 혹독해진다. 승리를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훈련에 매진해야 하는 고단한 삶. 그나마 경기가 자주 열리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제엔', 트랜스젠더로서의 삶

▲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제엔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했다는'제엔'은 '남자로 태어난 것은 신의 실수'라고 단언한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엔은 여자로 살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제엔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교사의 꿈을 버려야 했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남들보다 배로 노력해야했다. 내성적인 성격의 제엔이 영화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100만 명이 넘는 트랜스젠더가 존재하지만 역시 태국에서도 트랜스젠더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하나의 당당한 사회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무대 위에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제엔은 믿는다.

지난 5월, 태국 최고의 트랜스젠더 미인선발대회인 '미스티파니유니버스' 대회가 열렸다. 이날은 이제 막 트랜스젠더로 세상 밖으로 나온 제엔이 처음으로 무대에 서는 날이기도 했다.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정받고 싶은 제엔. 전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트랜스 젠더들 가운데 예선을 통과해 본선 대회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단 서른 명뿐이다. 미인대회에 처음 출전한 제엔은 과연 예선을 통과하고 자신의 꿈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쁘라디사안' 또 다른 선택의 길 앞에 서다

▲ 여성 무예타이선수 쁘라디사안
무어이타이 국가대표 선수의 꿈을 이룬 쁘라디사안. 하지만 챔피언도, 국가대표도 쁘라디사안의 가족을 윤택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스물다섯의 여자 무어이타이 선수의 삶은 고단함의 연속일 뿐이다.

그녀의 가족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꿈꾼다. 그녀가 무어이타이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경찰시험에 합격해 지금보다 여유롭게 가족들을 돌봐주기를 바란다. 그녀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고 있다.

'제엔' 꿈을 향해 달린다!

트랜스젠더로서 무대 위에서 성공하고 좀더 완전한 여자가 되고 싶은 제엔은 그 꿈을 위해 성전환수술을 결심한다. 몇 년 전 막내 남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제엔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 엄마와 언니,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 여자로서의 제엔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제엔은 트랜스젠더로서의 삶도, 아버지에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모두 포기할 수 없어 갈등한다. 제엔의 성전환수술 결정 소식에 아버지는 난색을 표하고 제엔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꿈이 있기에 제엔은 멈출 수 없다. 아직 이룬 것보다 채워갈 앞날이 더 많은 스무 살 트랜스젠더 제엔의 미래에 대한 믿음과 노력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미묘하게 흔들어 놓는다.

제엔과 쁘라디사안의 방콕 스토리,'삶은 계속된다'

▲ 미스 티파니 대회에 참가한 제엔
경찰시험을 준비하는 한편, 생활을 위해 무어이타이 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쁘라디사안은 관광객을 상대로 열리는 무어이타이 쇼장을 오가면서도 새로운 꿈에 대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기대했던 오디션에서도 탈락하고 미스 티파니 대회 본선에서도 고배를 마시게 된 제엔.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부족한 자신을 채워가며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간다. 내일을 위해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삶이다. 내일의 꿈이 있기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내일에 도전하는 제엔과 쁘라디사안. 이들은 방콕에서 만난 우리들 자신의 또 하나의 자화상이다.

양념 없이 그 자체로 향기로운 봄나물 같은 다큐멘터리

카메라는 이들의 일상을 묵묵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당신이 방콕을 여행하게 된다면 거리에서 이들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만일 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혹은 차오프라야 강 아름다운 노을 저 너머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 그 순수한 모습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봄, 강원도 정선에 사는 두 할머니의 들꽃 같은 삶을 다큐멘터리 영상에 담아 호평을 받았던 김성환 PD는, 야생에서 자란 봄나물 같은 그들의 삶을 '그냥 살짝 데쳤을 뿐 양념을 하지 않고'상 위에 올려놓는다. 어찌 보면 무미건조하게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향기롭다.

덧붙이는 글 | KBS 수요기획 ‘제엔과 쁘라디사안의 방콕 스토리’ 
연출: 김성환 / 글: 마혜원
방송일시: 2007년 7월 11일 (수) 밤 11시 30분,  KBS 1TV


태그:#트랜스젠더, #방콕, #무어이타이, #수요기획, #성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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