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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원평전> 책표지
ⓒ 풀빛
서른의 꽃다운 나이로 무자비한 계엄군에 맞서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붉은 피 꽃잎처럼 흩뿌리며 죽어간 윤상원에 대한 기억을 미국인 브래들리 마틴 기자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분명히 살아있는 모습으로 내 마음 속에 그릴 수 있는 단 한 명의 희생자가 있다. 그는 바로 5월 26일 외신기자회견을 열었던 시민군 대변인이다. 나는 광주의 도청 기자회견실 탁자에 앉아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 젊은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다. 그의 두 눈이 나를 향해 다가오자 나는 그 자신 스스로도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중략)

…그의 눈길은 부드러웠으나 운명에 대한 체념과 결단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강한 충격을 준 것은 바로 그의 두 눈이었다. 바로 코앞에 임박한 죽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그의 눈길이 인상적이었다. (18~19쪽)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간직했던 윤상원, 그는 서른의 짧은 생애 동안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삶을 보여주었다. 미래가 보장된 주택은행이란 직장을 포기하고 노동자들과 더불어 생활했고, 자신의 자취방과 수입과 의식과 시간을 공동체를 위해 제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을 향해 몸을 던졌다.

윤상원과 함께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다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숨을 거둔 일곱 열사들을 일컬어 '들불 7열사'라 부른다고 한다. 밤하늘 북두칠성처럼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 되어 살았던 윤상원, 박용준, 박관현, 신영일, 김영철, 박효선, 박기순 등 '들불 7열사'의 넋은 지금 망월동 국립묘역에 잠들어 있다.

평전을 읽다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불꽃처럼 살았던 윤상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서 살았던 짧지만 뜨거운 삶이었다. 불꽃처럼 살았던 삶에 녹아 있는 고뇌와 아픔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짧았던 첫사랑 이야기, 가난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는 아들의 고민, 탄압 속에서 위축되는 들불야학을 둘러싼 마음고생, 도청에서 들불야학 1기 졸업생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설득할 때 어쩔 수 없이 흔들리던 목소리, "…너희는 제발 집으로 돌아가거라."

윤상원이 떠난 지 27년이 지난 지금,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의 모교인 전남대학교에서, 광주사례지오고등학교에서, 그의 생가에서, 기념관에서 크고 작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꽃잎처럼 산화한 젊은 넋이 부활의 꽃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윤상원 평전>도 새 옷을 갈아입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90년대 초반 <들불의 초상 윤상원 평전>이 간행 후 17년 세월이 흐른 뒤 개정판이 나오게 된 것이다. 1980년대 5월 광주민중항쟁에서 죽음을 맞기까지 온몸으로 항전했던 윤상원이 보여준 불꽃같은 삶을 27년이 지난 지금 되살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박호재, 임낙평 지음/풀빛/20,000원


윤상원 평전

박호재.임낙평 지음, 풀빛(2007)


태그:#윤상원평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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