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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점점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다. 무려 네 시간이나 걸리는 향적봉도 30분이면 오른다. 두레박처럼 생긴 곤돌라는 쇠줄에 매달려 올라간다. 그것은 힘이 센 쇠줄을 여러 가닥 겹쳐 연결했는데도 힘이 드는지 쉬엄쉬엄 올라간다. 소름끼치는 끼이익 소리는 어슷하게 박힌 쇠봉을 바라보게 하고 고개를 쳐들어 쇠줄을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

문득 하늘이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어 수수밭에 꽁무니를 박고 죽은 호랑이가 생각난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뛰어내려도 될 만큼 가까워 보인다. 여러 사람이 줄 하나를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쇠줄에게 그리고 두레박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 이현숙
▲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향적봉
ⓒ 이현숙

시간이 더디 흘러갔지만 어느덧 설천봉 정상. 설천봉은 운동장처럼 반듯하게 닦여 있다. 설천봉을 지나 숲이 우거진 길을 찾아 걷는다. 향적봉 가는 길이다. 나뭇가지가 어찌나 촘촘한지 가까이 다가가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뭇잎과 들꽃을 벗삼아 걸은 지 20여분 향적봉 정상이 보인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있다. 사진을 찍고 바위에 걸터앉아 먼 산을 바라본다. 길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다. 15년 전 나는 이곳을 여러 번 왔었다. 그때보다 길이 더 생겼고 잘 닦아졌다. 설천봉에서 올라오는 길, 안성으로 내려가는 길, 산악인의 집으로 내려가는 길. 산악인의 집에서는 다시 백련사로 내려가는 길과 남덕유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북쪽으로 무주읍내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황소등처럼 튼실해 보이는 산등들이 겹쳐져 있다. 자세를 약간 틀어 동쪽을 바라보면 우리가 방금 다녀온 반딧불이 마을이 있고, 나제통문도 있다. 이 산 어느 기슭을 내려가다 보면 인공호수인 무주호와도 만날 것이다. 있는지도 몰랐던 무주호는 길을 잘못 들어 발견할 수 있었다.

▲ 신라와 백제를 넘나드는 나제통문
ⓒ 이현숙
▲ 반딧불이 서식지...
ⓒ 이현숙
▲ 길을 잘못 들어 보게 된 무주호
ⓒ 이현숙

북쪽동네인 무주읍내는 한창 반딧불이축제 중이고, 서쪽 동네인 안성은 지금 골프장 반대운동으로 어수선하다. 자그마한 저수지가 보이는 아랫동네가 안성이다. 칠연계곡이 있고 용추폭포가 있는 안성. 덕유산 자락, 드넓게 펼쳐져 있는 천혜의 자연을 이용해 골프장을 만들려 하고 있다.

▲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폭포...용추폭포
ⓒ 이현숙
▲ 칠연계곡
ⓒ 이현숙

위로는 덕유산이 점잖게 서 있고 차로 10분만 가면 덕유산에서 흘러내리는 칠연계곡이 나오고, 앞은 탁 트여 있어 가슴이 시원해지고, 게다가 10분만 가면 고속도로와 연결된다. 개발을 우선으로 하는 그들이 이런 조건을 그냥 보아 넘길 리 없다.

산악인의 집으로 내려가 커피를 한 잔 마신다. 남덕유에서 넘어오는 등산객들이 배낭을 내리고 쉬면서 산밑을 바라본다. 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 방금 찍은 디카를 켜 보여준다. 파란 하늘에 하얀 조각구름 몇 점. 그리고 그림 같은 주목 한 그루. 이건 아마도 덕유산의 증명사진일 듯싶은데 그냥 내려가지 말고 이 풍경을 꼭 찍어야 한다며 손짓으로 길을 가리킨다.

▲ 덕유산 산악인의 집, 집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었다.
ⓒ 이현숙
▲ 덕유산은 주로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었다
ⓒ 이현숙

곤돌라 시간(4시) 때문에 그냥 올라가려던 우린 마음이 변해 남덕유 가는 길로 방향을 튼다. 키 낮은 잡목 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진다. 파란 하늘은 몇 점 조각구름으로 환상적인 그림을 그려 놓았다. 남덕유에서 오는 사람들은 지친 기색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저 언덕만, 저 언덕만 하다가 드디어 돌아선다. 15년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길. 난 백련사에서 올라왔다가 오수자굴 쪽으로 내려가고는 했다. 그때 내 직업은 조리사. 무주구천동에 반해 겨울 한 철을 무주리조트에서 일하면서 시시때때로 덕유산엘 올랐다. 동네 아가씨 왔다며 환대해주던 산장지킴이 허대장님도 7년 전 산을 내려갔단다.

▲ 쇠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 두레박을 타고...
ⓒ 이현숙
너무 늦은 시간에 오른 적도 있었다. 그때 허대장님이 아직 리프트(그때는 관광용 곤돌라가 없었다)가 끝나지 않았을 거라며 리프트가 닿는 설천봉 길을 알려주었다. 나 혼자가 아니고 먼저 와 있던 남자 대학생과 함께였다. 그래서 우리는 험난한 길을 가는 동반자가 되었다. 겨울의 막바지. 숨어 있는 길은 무척 미끄러웠고,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렸다.

엉금엉금 기어서, 때론 서로 손을 잡아 주면서 겨우 리프트 승차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리프트는 끝난 상황. 난 그때나 지금이나 겁이 많았다. 그래서 스키장에 다니면서도 스키는 신어본 적도 없다. 여행이나 산만 좋아해 틈만 나면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을 뿐. 그런데 우리 앞에 놓인 건 가파른 슬로프. 되돌아갈 수 없으니 넘어지고 엎어지더라도 그 길을 걸어 내려가야 했다.

나는 30대 아줌마, 그는 아직 어린 티를 벗지 않은 창창한 대학생. 고대 국문과 3학년이라고 했다. 국문과라는 말에 내 문학에 대한 한이 술술 풀려나왔다. 그는 문학인과 문학가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문학가가 안돼도 문학인은 될 수 있다며. 그러나 거기서 멈출 수 없는 게 야무진 내 꿈이었다. 겨우 소설가라는 이름만 딴 지금도.

천신만고 끝에 스키하우스에 안착. 다행히 서울 가는 버스 시간 전이었다. 부랴부랴 식당으로 안내, 저녁을 먹게 하고 버스까지 전송해 주었다. 어제인 듯 잊히지 않는 그 기억이 어쩌면 내 삶을 강렬하게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면서 세월만 낚고 있으니까.

덧붙이는 글 | 덕유산에는 지난 6월 16일 다녀왔습니다.


태그:#덕유산, #향적봉, #무주호, #용추폭포, #칠연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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