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주말에 어김없이 대형마트에 갔으리라. 훗날 인류학자가 지금의 우리를 일러 '호모 쇼핑쿠스'라 할만도 하다. 우리는 살아있음을 '소비'로 증명해야 한다. 한 사람의 자본주의적 건강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포인트 카드 점수만한 것이 있을까. 한국의 호모 쇼핑쿠스는 주로 아파트에 살고 자동차로 이동하며 대형마트에 가서 식량과 물품을 구해온다. 그들의 중요한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쇼핑카트'이다. 지난주(6월 24일 방영) '체험 삶의 현장'은 바로 이 쇼핑카트를 만드는 ㈜삼보를 찾았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한국 기업이 삽니다'

24일 방영한 KBS TV '체험 삶의 현장' 679회는 개그맨 박준형씨와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허범도씨의 구호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이 일한 ㈜삼보는 국내 쇼핑카트 제조의 선두주자이며 수출까지 하는 '유망 중소업체'라고 했다. 유망 중소업체의 면모를 볼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방송에 몰입했다.

㈜삼보는 과연 '무빙워크와 쇼핑카트' 안전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형마트가 좋아할 만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어린이가 카트에 다치지 않도록 절단면을 부드럽게 마무리하는 기술과 은나노 기술을 적용한 항균 손잡이 등은 타의 추정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또 최근에는 아연도금이 필요 없는 무독성의 친환경재료를 사용한 카트를 개발하여 대형마트로부터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익에 비해 사회적 기여가 박하다는 여론에 몰리고 있는 대형마트의 이미지 전환 전략에도 맞는 제품인 탓이다.

다음은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아기 발이 들어가는 자리이기 때문에 깨끗하게 잘려야 하거든요. 날카로우면 안됩니다."

나레이터의 멘트도 이어진다.

"작은 부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세심하고 꼼꼼하게 소비자들의 편안함과 안전을 생각하며 튼튼한 등받이 만들고,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등받이의 불량체크는 필수"

이랬던 그 사업장이 정작 쇼핑카트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안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깔끔하게 처리해주는 그 프레스에는 노동자의 손을 보호할 수 있는 방호장치는 없었다. 작업여건을 보건대 광전자식 방호장치를 적용할 수 있는 곳이다. 광전자식 방호장치란 프레스나 전단기 운전 중에 작업자의 부주의에 의해 손 또는 다루는 공구 등이 위험 범위 내에 들어갔을 경우, 기계를 급정지시키는 장치이다.

▲ 쇼핑카트을 가공하는 프레스, 양 측면에 광전자식 방호장치가 없다.
ⓒ KBS
해당 작업은 작업물이 커서 두 손으로 카트 부품을 들고 하기 때문에 작업자의 손이 들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부품이나 기타 조력자의 손이 들어갈 수 있고 이때 기계를 정지시킬 수 있는 장치는 필요하다. 작년 한 해 동안 현장에서는 4574건의 절단사고가 있었다. 대부분 프레스 등에 의한 손가락 절단 사고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로봇으로 용접을 하고 나서 보강용접을 하는 작업장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용접작업이 있는 작업대에는 용접흄을 빨아내는 국소배기장치는 없거나 또는 있어도 그 형식이 맞지 않았다. 차라리 우리 동네 고기구이 집의 그것이 더 쓸 만할 것 같았다. 형식과 성능이 부실한 만큼 방진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데 역시 생략되었다.

▲ 박준형씨에게 용접흄 작업시 반드시 필요한 방진마스크(1급 이상)를 지급하지 않았다
ⓒ KBS
나레이터는 '완전무장'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보안경 그리고 보안면과 불꽃방지포만이 용접작업시 개인보호구의 전부는 아니다. 용접흄은 미세한 먼지이다. 용접시 뜨거운 열에 기화된 금속은 공기 중에서 급속히 식으면서 응결되는데 이때 극도로 작은 입자가 된다. 미세하다는 표현으론 좀 부족하고 거의 나노입자가 된다. 용접흄의 평균 입자크기의 범위가 0.01~ 2.0㎛인데 이 정도 크기면 폐포까지 도달할 수 있고 용접공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직업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이제 하이라이트인 출하작업을 소개할 차례다. 작업은 지게차 포크로 쇼핑카트를 컨테이너 트럭으로 올리는 작업이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카트를 잡고 올리는 모습이 너무도 위태롭게 보인다. 특히 포크 바깥쪽에 서있는 사람은 불과 한 발자국만 뒤로 밀리면 추락할 판이다. 해마다 지게차 포크나 파레트를 작업대로 이용하다가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는 듯 모두들 태연하다.

지게차는 화물을 운반하는 기계로 포크에 화물 외에 사람을 올려서는 안 된다. 부득이 지게차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전용 작업대를 사용해야 한다. 전용 작업대란 추락재해를 막을 수 있는 안전난간과 흔들림을 방지할 수 있는 전용 포크 삽입구를 갖춘 작업대를 말한다.

▲ 안전조치 없이 지게차 포크를 이용해 카트를 트럭에 싣고 있다
ⓒ KBS
불과 15분간 방영된 ㈜삼보에서의 현장 체험, 그 짧은 순간에도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많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회사가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던 '소비자 안전'은 결국 물건만을 팔기 위한 방편이었단 말인가? '소비자 안전' 그리고 '친환경'은 결국 '생명존중'과 다름 아닐 것이다. 노동자의 생명이 빠진 그것이라면 얄팍한 장삿속에 지나지 않는다.

직원들의 작업환경에 늘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그 회사가 과연 소비자 안전과 친환경을 도외시할까?

덧붙이는 글 | 강태선 기자는 노동부 산업안전근로감독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 기사는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일과 건강>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산업안전, #산업재해, #프레스, #중소기업, #용접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