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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전남 여수 월호도와 가두리 사이에 배가 한 적 지나갑니다. 뭘 잡았을가?
ⓒ 임현철

'타타타타~'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배 한 척 들어옵니다. 파도가 배를 따르고 있습니다. 배가 선창에 정박합니다. 부부가 잡아 온 고기를 보고 있습니다. 얼굴에 뻘이 묻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부(漁夫)'는 그물을 내립니다. '어부(漁婦)'는 앉아 그물에 붙은 불가사리며 째진 곳을 수선을 합니다. 부부가 고기를 함께 잡으니 신종 직업인 '어부(漁婦)'가 생겼습니다.

"얼마나 잡으셨어요?"
"얼매나 잡낀. 쪼깨 바께 못 자버. 어데 고기가 이써야지."

어느 새 자리 잡고 그물 수선에 열중인 어부(漁婦), "예, 한 마리 써시오 잉!" 합니다. 잡아 온 고기를 배에서 먹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맛을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그러나 고생고생해서 잡은 고기도 쥐꼬리만 한데 맛있다고 덥석 먹겠습니까?

▲ 부부는 배를 정박하고 잠시 숨을 가다듬습니다.
ⓒ 임현철

"아니 됐어요. 고기도 못 잡았는데 한 마리 썰다뇨. 판장에서 값이나 잘 받으세요"
"이거 비싼(?) 고긴디, 우리 월호도 좀 잘 써주라고 주는 것이니 만나게 무그시오."

몇 마리 되지 않은 오징어 중 하나를 올려 배를 땁니다. 베푸는 호의가 감사하지만 곧 죽어도, '저걸 팔면 뭘 할 수 있을 텐데…' 속이 편치가 않습니다.

"쐬주도 업꼬, 딸랑 고기 뿐인께, 그냥 그리 알고 무그시오. 얼매나 만난지 아요."
"녜~, 녜."

"아이, 그라지 말고 좀 무거 보란께. 묵는 거시 남는 거시여!"
"예. 알았습니다."

주저주저 하는데 뒤늦게 합류한 윤선흔(47)씨, "바로 요기, 요 앞에서 잡았다"며 해삼과 소라를 내놓습니다. 해삼 배가 통통한 게 알이 꽉 찬 것 같습니다.

▲ 고생고생 잡아 온 오징어 한 마리를 건져 배를 땁니다.
ⓒ 임현철
▲ 해삼과 소라.
ⓒ 임현철

배에 칼을 대니 장마철 소나기처럼 해삼 알이 마구 쏟아집니다. '저렇게 알이 많다니…. 야 참 좋겠구나. 보약이 따로 없군' 하는 마음과 '저걸 먹을 게 아니라 산란하게 둬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뒤죽박죽 뒤엉킵니다.

먹을 땐 주는 대로 넙죽 받아먹어야 하는데 그게 되질 않습니다. 고기 잡은 양을 보았는데 어찌 쉽게 먹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윤선흔씨, 마저 소라 껍데기를 깹니다. '야, 그 놈 맛나겠다' 싶습니다. 처음에 속으로 '한 마리 안 써나' 하면서도, 그게 아닌 척 위장(?)했던,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감춰졌던 소라 속살이 깬 껍질 사이로 드러납니다.

번듯한 접시도 아닌, 도마 위에 차려진 상. 반듯한 의자도 없이 쪼그리고 앉은 자리. 그래서 더욱 맛이 납니다. 아니, 황제의 밥상입니다. 이렇게 안 먹어본 사람은 말 못합니다. 이게 어디 낚시꾼이 낚아 올린 고기, 즉석에서 회 떠먹는 맛에 비하겠습니까?

▲ 해삼알이 톡~ 터져 나옵니다.
ⓒ 임현철
▲ 워매~, 알도 많네~.
ⓒ 임현철
▲ 장마철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린 해삼 알을 주체 못해 할 수 없이 도마에 붓습니다.
ⓒ 임현철

"먼저 한 점 드세요. 그래야 먹죠?"
"아니, 드세요. 우리야 묵꼬 자프믄 언제고 무근께, 신경 쓰지 말고 마싰게 드세요."

"자주 대한다 해도, 다른 사람 먹을 때, 먹는 것 쳐다보면 얼마나 먹고 싶은데 그러실까, 어서 먼저 드세요. 그래야 한 점 하죠?"
"그럼, 어디 한 점 해볼까~아."

이럴 땐 소주가 있어야 하는데 형편이 어렵다 보니 배에도 소주가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배에 항상 소주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고기잡이에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드러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 몇 병 사올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가 듭니다.

초장에 오징어, 해삼, 소라를 번갈아 찍어 맛을 봅니다. 캬~. '저 해삼 알, 한 번 먹긴 먹어야 할 텐데, 타이밍을 언제 잡지' 생각하며 신나게 머리를 굴리고, 해삼 알만 보고 있는데 마침,

"아니, 다른 거는 이따 묵꼬, 요 해삼 알 좀 무거 보시오. 이거 기가 차요~ 잉!"
"아니, 드세요…."

▲ 워~매~. 보기만 봐도 침이 꼴딱 넘어갑니다.
ⓒ 임현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저절로 손이 갑니다. 나무젓가락으로 덥석 집었는데 한 무더기가 딸려 옵니다. 미안한 마음에 다시 젓가락질을 하여 입을 벌리고 안으로 냅다 집어넣었습니다.

'워~매, 워매'

음식 맛에 대해 피해야 할 단어 중 하나가 '살살 녹는다'는 표현입니다. 살살 녹긴 녹는데 씹히다가 녹는지,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는지 등의 표현을 가미한 '살살 녹는지'를 강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거, 정말이지 간단하게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제일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맛깔 나는 이유는 정성과 마음이 들어 있어 그럴 것입니다. 한편으론 고기도 안 잡힌다는데 이거 완전히 갈취(?)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래도 맛은 맛입니다.

'꼴~깍~'

▲ 해삼 알이 젓가락질에 한줌 딸려옵니다.
ⓒ 임현철

▲ 무엇이 부러울 쏘냐? 황제의 밥상입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와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월호도, #여수, #오징어, #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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