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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양파를 선물로 받다. 실한 것으로 골라 주셨다.
ⓒ 전갑남
'칠 년 대한 단비 온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것이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정말 기다리던 비가 왔다. 단비임에 틀림없다. 장마가 시작되어 와락 쏟아질까 걱정을 했는데 점잖은 비가 왔다. 근 보름 만에 비다운 비 구경을 한 셈이다.

새벽 다섯 시, 날이 밝아오고 있다. 가뭄 끝에 비가 온지라 생기를 되찾았을 텃밭이 궁금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22일)은 여느 때보다 30분 빠른 시간이다. 장화를 신었다. 질커덕거리는 진흙 밭에서 일하려면 장화는 필수품이다.

흠뻑 비를 맞은 작물들이 싱싱하다.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하루 사이에 작물들이 몰라보게 자란 것 같다. 이제는 물기를 머금었으니 강렬한 햇빛에 자라는데 가속도가 붙으리라.

아침마다 나누는 반가운 인사

▲ 옆집 할머니는 아침 일찍 밭에 나오신다. 사진에 보이는 양파를 캐 우리에게도 주셨다.
ⓒ 전갑남
이른 아침, 밭에서 일하면서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옆집 할머니이시다. 요즘은 매일 마주치다시피 한다. 오늘도 나보다 먼저 나와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계시다. 무슨 일을 하시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할머니, 벌써 콩 옮기시네!"
"지금 비가 와서 콩모를 심으면 좋지. 흰콩은 좀 일찍 심어. 선생님네는 흰콩은 안 심나?"
"올핸 서리태만 심으려고요. 작년에 심은 걸로 메주를 쒀 장을 담가놓았거든요."
"서리태 씨는 있어?"
"아뇨. 할머니네 있으세요?"
"우리야 있지! 씨 할 거 한 주먹만 줄까?"
"그러지 말고, 한 되만 파시지."

할머니 한 되나 심을 거냐며 의아해 한다. 씨하고 남으면 밥에 놓아먹을 거라고 하자 "그러면 내 금세 가져올 게"라며 까만 봉지에 콩을 가져왔다. 콩이 굵고 아주 실하다.

"할머니, 만원 드리면 될까요?"
"그러구려. 그냥 줘도 되는데, 돈 받자니 미안하네!"

할머니는 생각지도 않은 돈이 생겼다며 밝은 웃음을 지으신다. 환한 얼굴이 보기에 참 좋다.

할머니는 마음이 참 너그럽다. 그리고 부지런하시다. 바쁜 아들 내외를 도와 밭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른 새벽과 오후에 일하다 할머니와 마주치면 푸짐한 이야기를 나눈다.

"애들 가르치는 데는 선생이지만, 농사는 우리가 선생이야!"

우리는 오년 전 산 설고 물 설은 지금 사는 마을로 이사를 왔다. 마음 붙이는데 살갑게 대해주는 이웃들이 있어 고향마을에서 사는 것처럼 외롭지 않다.

▲ 할머니는 밭에서 호미를 들고 사신다. 마음이 넉넉하시다.
ⓒ 전갑남
요즘 농촌마을이 그렇듯이 시골은 젊은 사람들보다 어르신들이 많다. 오며가며 만나는 사람은 노인들이다.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들은 밭에서 살다시피 호미를 잡고 계신다.

할머니들은 우리더러 인사성 하나는 밝다고 칭찬을 하신다. 밭일을 할 때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면 반가워들 하신다. 또 음료수라도 대접하는 경우 "이런 게 꿀맛이야 꿀맛! 시원하구먼!" 하면서 달게 드신다. 명절이 다가오면 가까이 사는 이웃들에게 소소한 선물이라도 마련한다. 그러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마음의 정을 베푸신다.

엊그제는 누가 갖다 놓았는지, 우리 집 평상 위에 완두콩을 담은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수소문 끝에 우리 고샅 들머리에 사는 할머니가 갖다 놓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도 완두콩을 심었는데 그걸 몰랐던 모양이다.

우리는 아직도 밭일을 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특히 씨 넣을 시기를 잘 모른다. 여럿이 모여 있는 할머니들에게 여쭈면 서로 나서서 가르쳐주신다. 어쩔 때는 핀잔인지 칭찬인지 모르는 말씀들도 하신다.

"애들 가르치는 선생이 그걸 몰라?"
"선생이라고 다 아나? 농사일은 우리가 선생이지!"
"그래도 선생님 농사짓는 데, 이제 선수가 다 되었어."
"그럼, 부지런한 것은 우리보다 낫지."

할머니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웃음보를 터트린다. 결국 수십 년을 해온 농사일은 자기들이 선생이니 모르면 물어서 하라고 알려주신다. 나는 부지런을 떨며 열심히 따라하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농사일도 이력이 붙은 셈이다.

할머니 마음은 몇 십만 원이 넘다

어제 아침, 옆집 할머니가 나를 감동시켰다. 고구마 밭을 매는 내게 다가와 다짜고짜 물으셨다.

"선생님, 어젯밤 몇 시에 들어왔지?"
"좀 늦었어요. 무슨 일 있으셔요?"
"아니, 양파를 캤거든. 늦게까지 기다려도 불이 켜지지 않아서. 이거 갔다 드셔!"
"이렇게 많이요? 애써 농사지어 우리한테 다 주시는 거 아녀요?"

굵직굵직한 양파 한 묶음을 엮어놓으셨다. 할머니는 무거워서 들지도 못할 양이다. 수월찮은 양을 우리까지 챙겨주시다니! 너무나 고맙다.

"할머니, 돈으로 몇 만원은 되겠어요?"
"무슨 몇 만원! 양파 값이 그렇게 비싸? 그럼 양파 심어 돈 벌게!"
"할머니 마음은 몇 십만 원이 넘어요."
"그렇게 생각해? 귀하게 여겨주니 내가 다 고맙네. 맛나게 먹으라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이웃의 정이다. 애써 가꿔 인정을 베푼 할머니의 마음이 읽어진다. 양파를 심지 않은 것을 알고 이웃을 생각하는 훈훈한 정이 느껴진다.

▲ 할머니 네로부터 고구마순을 10단을 사다 심었다. 지금 실하게 잘 자라고 있다.
ⓒ 전갑남
할머니 네는 밭농사를 짓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올해도 때맞춰 고구마순 10단을 대주었다. 가게에서 사다 심는 것보다 가격도 싸고, 순도 실했다. 미리 뿌리가 나오도록 길러서 그런지 거의 죽지 않고 살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주었다.

"고구마 잘 살았지? 그래도 아무래도 죽은 게 있을 거야. 이거 반 단인데 죽은 데 다시 심으라고. 고추도 1단 가져 왔어, 밭 넓으니까 더 심고. 그리고 가지는 말장을 박아 묶어줘야 돼. 말장이 없나? 우리가 대여섯 개 가져다줄까?"

밭에서 만나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는 즐겁다. 마음 써주시는 게 다정다감하다. 이웃의 살가운 정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바쁜 아침, 아내가 양파 하나를 손질했다. 양파를 고추장에 찍어 먹어본다. 약간 맵지만 아삭아삭한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할머니의 마음까지 담으니 단맛이 난다.

태그:#양파, #할머니, #고구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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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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