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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쯔강과 자링(嘉陵)강이 만나는 충칭의 야경. 직할시 승격 10년 만에 중국 서부지역의 최대 도시로 성장했다.
ⓒ 모종혁

"10년 만에 청두(成都)와 우한(武漢)을 뛰어넘었고, 10년 후에는 상하이만큼 발전할 겁니다."

18일 중국 충칭(重慶)시. 밤 8시 30분부터 도시 전역에서는 직할시 승격 10주년을 기념하는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도심지 9곳을 비롯하여 완저우(萬州), 푸링(涪陵), 용촨(永川) 등 외곽 농촌지역에서도 30분 동안 20만여 발, 1000여종의 폭죽이 어두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핑딩산(平頂山)에서 만난 양쿤밍(44)은 "충칭이 쓰촨(四川)성에서 떨어져 나와 직할시로 승격된 뒤 해마다 도시의 면모가 일신하고 있다"면서 "충칭은 중국 내륙지역에서 고층건물이 가장 많은 도시일 것"이라고 말했다.

천제(38)는 "직할시로 떨어져 나오기 이전 충칭에서 벌어들인 세수입은 대부분 쓰촨성의 수도인 청두로 보내져 그곳에 투자해 그곳을 발전시키기 바빴다"면서 "이제는 중앙정부의 지원에다 탄탄한 중공업 산업 기반에서 얻어지는 발전 동력으로 충칭이 서부지역의 선두 도시로 발돋움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위셩인(33·여)도 "직할시 10년은 도약의 10년이었다"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도 안고 있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칭시 주요 경제지표(2005년)

항목

전국

충칭시

GDP(억 위안) 

182231

3070

1인당 GDP(위안)

13985

9727

전체 고정자산투자(억 위안)

88604

1838

사회소비품판매총액(억 위안)

67177

1215

도시주민평균가처분소득(위안)

10493

10243

농촌주민평균순수입(위안)

3255

2809

수출(억 달러)

7620

25

수입(억 달러)

6601

17

실행 FDI(억 달러)

603

7

ⓒ 2006년 충칭통계연감
1997년 초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서부지역 개발을 위해 '서향개발정책'을 발표했다. 충칭·쓰촨·윈난·산시·간쑤 등 12개 성·시로 이뤄진 중국 서부지역은 전 국토의 56%, 주요 광물자원의 50% 이상이 매장된 미개발 개척지다.

넓고 척박한 대지에 약 2억9000만 명이 사는 서부지역의 빈곤과 낙후는 오랫동안 중국정부의 골칫거리였다. 1978년 개혁개방정책 이래 연해지역은 해마다 10% 이상의 고속 경제성장을 하고 막대한 외국인투자를 빨아들이고 있지만 서부지역은 경제발전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중국은 1997년 6월 18일 충칭시를 중앙정부 관할 직할시로 승격시켰다. 서부지역으로 가는 관문이자 양쯔강 상류에 있는 충칭을 서부지역 개발의 전초기지로 삼은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직할시는 충칭과 더불어 베이징·상하이·톈진 네 곳뿐이다.

도심지와 주변 성시, 농촌을 포괄하여 탄생한 충칭직할시의 인구는 2005년 현재 3200여만 명. 인구수에서 세계 최대 도시이고 면적도 한국보다 약간 작은 8만2400㎢에 달한다.

낙후한 내륙도시에서 중국 서부지역의 중심도시로

▲ 도심에서 2시간 거리인 따주(大足)현에 있는 바오딩산(寶頂山) 석굴. 따주현 내 56곳에 흩어져 있는 석굴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 모종혁

거대한 쓰촨 분지의 동쪽 산맥군 입구에 자리 잡은 충칭은 산간을 배경으로 도시가 들어섰다. 시내에는 구릉과 언덕도 많고 산비탈에 가옥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어 '산의 도시'(山城)로 불린다.

충칭의 역사는 유구하다. 기원전 11세기 한족과 다른 문화를 지닌 파(巴)족은 충칭을 수도로 왕국을 건국했다. 청두에 자리 잡은 촉(蜀)왕국과 서로 겨루며 성장했던 파왕국은 진시황에 의해 멸망당하기 전까지 강력하고 호전적인 사회 기풍을 지닌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충칭은 본래 위저우(渝州)라 불렸다. 남송시대 충칭의 태수였던 조광중이 왕위에 오른 뒤 '경사가 겹친다'(雙重嘉慶)란 뜻에서 충칭이란 지명을 딴 후 지금에 이르렀다.

▲ 즐비한 고층건물에 둘러싸인 충칭 중심가 지에팡베이(解放碑).
ⓒ 모종혁
1938~1945년 기간에는 중일전쟁의 전란을 피해 중국 국민당이 난징에서 충칭으로 수도를 옮겨왔다.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또한 국민당과 함께 기나긴 여정을 거쳐 충칭에 이르렀다. 전시 수도의 여러 흔적과 임정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는 지금도 충칭 곳곳에 남아있다.

1949년 공산중국 건국 후 한동안 직할시였던 충칭은 1950년대 초 쓰촨성 관할로 편입되면서 오랫동안 개발과 발전이 정체되었다.

1960년대 후반 마오쩌둥이 추진한 3선 건설정책(냉전시기 미국·소련의 군사공격에 대비해 1선인 연해지역의 군수산업시설을 2선인 중부지역보다 휠씬 깊숙이 자리한 3선의 내륙지역으로 옮긴 정책)에 따라 연해지역에서 이전해온 국영기업들을 중심으로 군수, 기계, 철강 등 중공업이 발전하기 전까지 경제 성장률은 연 5%에도 못 미쳤다.

3선 정책으로 1970년대 8% 이상의 탄탄한 경제 성장률을 구가하던 충칭은 1978년 이후 중국정부가 연해지역을 위주로 한 개혁개방정책에 매진하면서 또다시 개발의 흐름에서 탈락했다.

1997년 7월 직할시로 갓 승격된 충칭을 처음 찾은 기자는 여타 직할시에 비해 낙후한 도시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변한 고층건물도 없는 도심지, 좁고 질 낮은 도로 변에 산비탈을 배경으로 빽빽이 들어선 낡은 아파트와 가옥, 초라한 옷차림과 행색의 사람들, 무질서하고 지저분한 충칭항의 번잡함….

싼샤(三峽)에 가기 위해 들렀던 충칭은 가난과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날 놀랍도록 발전한 충칭의 면모는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연상케 한다.

▲ 중국 내 최대 오토바이 생산회사인 리판(力帆)그룹은 자력으로 자동차를 개발, 생산하고 있다.
ⓒ 모종혁

경제특구 지정, 도약의 날개를 달다

18일 직할시 승격 10주년 경축석상에서 왕양(汪洋) 충칭시 공산당 서기는 "충칭은 중국 서남부와 양쯔강 상류지역의 경제사회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성장했다"고 선언했다.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출신으로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의 직계인 왕 당서기는 중국 차세대 정치지도자 중 하나다. 왕 당서기는 "직할시 승격 이래 연평균 10.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재정수입도 9배나 증가했다"면서 "가속과 솔선을 앞세워 총생산량 증대, 인민생활 향상, 농촌지역의 균형 발전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축석상에서는 충칭의 '전국통일도농종합개혁실험구' 지정을 공식 선포했다. 지난 9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국무원의 동의를 거쳐 충칭과 쓰촨성 청두를 경제특구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국가급 특구로 지정된 것은 선전(深圳), 상하이 푸둥(浦東), 톈진 빈하이(濱海)에 이은 4번째다.

덩샤오핑은 선부론에 따라 연해지역에 경제특구를 만들어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그 여파로 갈수록 커져가는 동·서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후진타오는 균부론을 바탕으로 서부지역에 도농특구를 건설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충칭과 청두는 도시가 큰 농촌을 아우른 전형적인 도농복합지구"라며 "도시와 농촌 간의 발전 정도 차이가 너무 커서 지역 간의 모순과 충돌이 발생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충칭의 3200여만 명 인구 가운데 농촌 거주자는 80%에 달하고 도시와 농촌의 수입 비율은 4대 1이다. <신화통신>은 "충칭과 청두의 특구 지정은 도농 간의 통합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특구가 성공하면 연안지역에 집중된 발전성과가 내륙과 농촌에 확산되어 균형적인 지역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왕양 당서기는 "충칭은 중국의 축소판"이라며 "충칭의 실험은 도시와 농촌의 균형 발전에서 새로운 길"이라고 말했다. 런양칭(任楊慶) 충칭시 발전개발위원회 주임은 "특구 지정을 계기로 충칭은 202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6500달러, 도시화 비율 70%를 초과하며 도농 수입 차이는 2.5대 1로 줄어들 것"이라면서 "특구계획에 따라 도시와 농촌의 구분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양쯔강 해운을 중심지로 성장하는 충칭 춘탄(寸灘) 컨테이너 터미널. 충칭은 중국 내륙지역의 물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 모종혁

중국의 시카고인가, 낙후한 직할시의 대명사인가

충칭시는 직할시 승격 경축석상에서 '전국통일도농종합개혁실험구'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재정체제, 호적제도, 토지관리 및 사용제도, 사회보장제도 등 6개 방면으로 추진될 특구 계획은 앞으로 중국 도시와 농촌의 균형 발전에서 잣대가 될 전망이다.

계획에 따르면, 특구는 농촌과 도시로 분리된 호적을 하나로 묶는다.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은 호적이 사라져 앞으로 농민들도 원하면 도시 주민이 될 수 있다. 농민들은 사회보장제도와 복지서비스에서도 도시 주민들과 똑같은 혜택을 받게 된다. 농민들에게 부과되던 각종 잡세와 토지세 부담도 없어질 전망이다.

김태영 한진해운 충칭영업소 대표는 "충칭과 청두 경제권역은 인구가 1억2천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소비시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사회간접시설 구축, 건설산업의 호황, 물류 및 유통산업의 확장 등으로 주민들의 구매력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쯔강 해운을 중심으로 한 물류산업을 이끄는 한진해운은 2004년 영업을 시작한 이래 초고속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충칭에 투자 진출한 한국 기업이 거의 없기에 주요 고객이 100% 모두 중국 현지기업이거나 외국 합자기업"이라며 "쓰촨성, 꾸이저우(貴州)성을 잇는 인프라가 완성되면서 물류 거점으로서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인라이트 홍콩대학 교수는 "충칭은 국제도시로서 자질은 떨어지나 내륙지역 물류와 제조 분야의 중심지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기계, 자동차, 오토바이, 석유화학 등 중공업 산업과 연관된 투자 진출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클 인라이트 교수는 "충칭은 미국 서부로 가는 관문 자리를 두고 다른 도시와 경합한 시카고와 비슷하다"면서 "시카고를 뉴욕에 견줄 수 없듯이 충칭도 상하이와 비교 대상이 못되지만 특별한 도시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충칭의 발목을 잡는 요소 또한 적잖이 존재한다. 부족한 전기와 물 사정으로 단전, 단수가 수시로 발생하는 등 기본 인프라가 취약하다. 최근 들어서야 8시간 내에 충칭 어느 지역이든 도달할 수 있는 '8시간 충칭', '1시간 도시' 도로망 계획을 달성할 정도로 물류 사정도 열악하다. 여기에 주민 이주사업과 신도시 건설, 환경기후문제 등을 포괄하는 싼샤댐 문제는 충칭에 큰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기반이 탄탄한 중공업을 바탕으로 중국의 시카고가 될지, 낙후한 내륙 직할시의 굴레에서 못 벗어날지 충칭의 미래가 주목된다.

▲ 차오톈먼(朝天門) 항구에서 내리는 농촌 주민들. 싼샤 수몰지 주민들은 일거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리고 있다.
ⓒ 모종혁

태그:#충칭, #중국 서부 개발, #직할시, #경제특구, #균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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