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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 구시가지 공원입구의 조형물
ⓒ 이승철
황포강 뱃놀이로 중국 도착 첫날 상하이 관광을 시작한 우리일행은 구 시가지와 공원을 둘러보고 진주보석상에 들렀다. 외국관광객들에게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하여 중국정부가 정책적으로 현지 가이드들에게 꼭 들러 가도록 했다는 코스 중의 한 곳이었다.

보석상 입장객들에게 모두 한 장씩 나눠주는 번호표는 인솔가이드를 식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판매금액의 일정률을 현지가이드에게 지불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관광객들이 물건을 많이 구입해야 가이드의 수입이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다.

진주보석상에는 다양한 크기와 빛깔, 모양의 진주들이 현란한 모습으로 일행들을 유혹했지만 구입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판매원들은 절대 가짜가 아니라고 품질보증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곳의 진주들이 가짜는 아니지만 값이 싼 만큼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진주는 대부분 민물양식 진주라고 한다. 바다가 아닌 민물에서 양식하는 양식진주는 조개 한 마리당 무려 30여개씩의 진주가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물에서 자랐기 때문에 품질이 나빠 목걸이나 팔찌를 했을 경우 땀에 젖으면 껍질이 벗겨지는 등 일반 진주에 비해 품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일행들은 대부분 남성들이어서 보석에는 별로 관심들이 없어 보였다. 여성들이 많은 다른 한국인 관광 팀들은 상당히 많은 진주를 구입하여 손에 들고 있거나 흥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일행들은 구경하는 것조차 심드렁하여 여기저기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 목조건물이 있는 상하이 시가지 풍경
ⓒ 이승철
▲ 진주보석상의 진열대
ⓒ 이승철
"값이 싸면 뭘 해요? 품질이 형편없다는데. 공연히 돈쓰고 구박이나 받기 십상인 걸."

진주 값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싼데 부인이나 며느리에게 여행 선물용으로 몇 개 사다주지 않고 왜 앉아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자 일행 중 한 명이 허허 웃으면서 하는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 밖으로 나올 때 살펴보니 우리 일행들은 거의 모두 빈손이었다. 보석상과 현지가이드는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들의 진주 판매 작전은 우리들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은 것이다.

진주보석상을 나서자 어느 새 하루해가 기울고 있었다. 서둘러 저녁을 먹은 일행들은 현지가이드가 세계최고의 수준이라고 자랑하는 상하이 서커스를 구경하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어르신들 중에 북경서커스를 구경하신분 계시죠? 잠시 후에 상하이 서커스를 구경하시면서 비교해 보세요? 북경서커스가 좋은지, 이곳 상하이 서커스가 좋은지."

가이드는 이곳 상하이 서커스가 최고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을 한다. 그는 또 상하이에는 상설 서커스공연장이 3개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좌석 수만도 거의 1천석이 넘는 3개의 공연장은 거의 모두 자리가 매진된다는 것이 아닌가.

"오늘 밤 어르신들을 모시는 공연장이 그 중에서도 시설이 제일 좋고 잘하는 곳입니다. 절대 실망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됩니다."

조선족 3세인 현지가이드는 상하이 서커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 퇴근 시간이어서 저녁을 먹은 곳에서 서커스공연장까지는 40여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 보석상의 내부 풍경
ⓒ 이승철
▲ 비내리는 상하이 구시가지 풍경
ⓒ 이승철
"어르신들 서커스를 중국말로 무어라고 하는지 아세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지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제가 중국어 한마디 가르쳐 드리지요, 한문자는 어르신들이 잘 아시잖아요? 서커스를 한문자로 쓰면 잡기(雜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잡기를 중국어로 발음하면 "짜지"라고 발음하지요. 발음을 잘하셔야 합니다. 잘못 발음하시면 이상한 말이 되니까요. 하하하."

서커스공연장으로 가는 길이 교통체증으로 막히는지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그럼 한 번 따라서 해보세요. '북경서커스보다 상해서커스가 더 좋다'를 서커스를 중국어발음으로 한 번 해보시는 겁니다."

무슨 말인가 싶어 모두들 가이드를 바라본다.

"북경 짜지 보다 상해 짜지가 더 좋다. 어떻습니까? 하하하."
듣고 보니 발음을 조금 잘 못하면 이상한 말이 되고 말 것 같았다.

"한 달 전에 제가 서울에서 오신 할머니들을 모셨을 때 이 중국말을 가르쳐 드렸더니 어느 할머니 한 분이 '북경 자지보다 상해 자지가 더 좋고 상해 자지보다도 서울자지가 더 좋다' 고 하셔서 한 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어떠세요? 하하하 발음을 잘 하셔야 합니다. 재미있지요?"

"그거, 딱 맞는 말이네. 그럼 무엇이든지 우리 서울 게 최고지, 그거라고 다르겠어? 그 할머니 말이 딱이네, 딱! 우하하하하."
순식간에 우리일행들도 한 바탕 뒤집어졌다.

▲ 상하이 박물관 앞의 동물석상들
ⓒ 이승철
▲ 상하이 거리풍경
ⓒ 이승철
키가 작달막한 현지 가이드는 상당히 능수능란하게 우리일행들을 웃기고 있었다. 상주인구만도 1700만 명에 유입인구까지 합하면 2천만 명이 넘는다는 세계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상하이는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에도 불구하고 교통이 상당히 혼잡한 편이었다.

그런 답답한 교통체증 속에서도 그의 우스갯소리에 웃고 떠들다보니 지루한 줄 모르고 서커스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보니 2년 전에 왔을 때 보았던 서커스공연장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때는 전면의 무대 위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이 공연장은 체육관 같은 모습이었다.

뒷면의 배경을 중심으로 중앙의 아래쪽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3면에 객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무대도 크고 넓었지만 객석도 천여석이 넘을 것 같았다. 우리들에게 배정된 자리에 앉고 보니 바로 뒷자리에는 유럽에서 온 남녀 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앉아 있었다.

객석을 둘러보니 대부분 외국인들이다. 상하이에서만 해도 매일 이렇게 3개의 공연장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니 얼마나 대단한 수입인가.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서커스 공연은 뒷면의 영상과 중국의 전통음악까지 어우러져 멋진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가이드가 자랑했던 것처럼 상하이의 서커스의 수준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과 묘기의 연속이었다. 서커스공연이 진행되기 전에는 내 뒷자리에서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던 유럽의 젊은이들도 숨소리까지 죽이고 있었다. 그만큼 서커스공연이 대단했던 것이다.

▲ 상하이 서커스의 한 장면
ⓒ 이승철
▲ 상하이 서커스 항아리와 화분 묘기
ⓒ 이승철
공연 중간에 잠깐 쉬었다가 다시 공연을 계속했지만 서커스는 시종일관 관중들의 시선을 붙잡아 놓고 있었다. 시선을 돌릴 겨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공연 순서인 오토바이 묘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둥그런 철제 기구 안에 무려 8대의 오토바이가 들어가 고속으로 달리는 모습은 정말 아슬아슬하여 때로는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다.

그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작은 실수를 하면 엄청난 사고가 날 수 있는 묘기를 완벽하게 끝낸 단원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인사 할 때는 모두 일어나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사실 중국인들은 이 서커스를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이 아마 훨씬 더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이런 서커스를 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 서커스는 꼭 이 공연장에 와서 보게 하기 위해서 TV에서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서커스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가 한 말이다. TV에 공개되어 버리면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모두 보게 되어 공연장의 관중 수가 줄어들게 될까봐 정책적으로 못하게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것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북경에도 있지만 상하이에만도 저런 상설공연장이 3개나 있다니 얼마나 부러운 일이야. 돈벌이 관광산업은 중국이 우리보다 한 수 위라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도 우리전통을 살려 저 정도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 상설공연장에 올릴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외국 관광객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볼거리가 있어야 하는 데 말이야."

▲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오토바이 묘기팀의 인사
ⓒ 이승철
일행들 중의 몇 사람이 나눈 말이다. 중국의 넓은 국토로 얻어진 자연관광자원과 역사적인 유적이나 유물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만들고 연습하여 내놓는 공연예술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한 발 앞서가는 중국 관광산업의 현장에서 그들의 그 한 단면을 보며 아쉬웠던 점이었다.

덧붙이는 글 | 6월초에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상하이, #서커스, #진주보석상, #상하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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