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 데 페스티발 광장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는 김기덕 감독과 영화 <숨>의 배우 장첸, 박지아, 강인형(오른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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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수호 투쟁은 한국영화인들의 힘겨운 싸움이었다. 최선을 다해 싸웠다고 생각하나 결국 축소돼 불만스럽긴 하다. 물론 상황이 나빠질 것은 뻔하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제는 정책이 아닌 영화인 스스로가 경쟁을 통해 싸워야 할 때다."

지난 19일 칸 국제영화제 경쟁작품 <숨>의 기자 시사 직후 열린 공식기자회견 자리에서 김기덕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한국영화의 이단아다운 발언이었다. 1996년 영화 <악어>를 시작으로 부단히 영화를 만들어왔으나 정작 우리 팬과 교류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김 감독은 실제 스크린쿼터의 혜택에서 소외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때문이다.

지난 여름 영화 <괴물(2006, 봉준호)>을 가리켜 '그 영화에 그 관객'이라거나 블록버스터 한국 영화가 수 백 개의 상영관을 동시에 차지하는 현상을 일러 '멀티플렉스를 없애고 관객석 만 석 규모의 영화관 하나를 만드는 것이 낫다'고 일갈한 바 있는 김 감독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렇다.

김 감독의 대답에 이어 사회자는 지난해 제59회 칸 영화제 기간 동안 팔레 데 페스티발 광장에서 배우 최민식을 비롯한 스크린쿼터 사수 원정단의 투쟁을 부연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국, 프랑스에 이어 한국, 경쟁부문에 다작 출품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이 김기덕 감독과 배우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지난 16일 왕가위 감독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개막작으로 화려한 막을 올린 제60회 칸 국제영화제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23일 현재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된 총 22편의 영화 중 16편이 이미 관객과 만났다.

지난해 단 한 편도 경쟁에 올리지 못 한 쓰라린 추억을 갖고 있는 우리 영화는 올해 김 감독의 <숨>과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동시에 초청돼 5편의 미국과 3편의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영화를 출품하면서 지난해의 부진을 만회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확보한 한국영화는 관객 30만이 찾은 김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이다. 프랑스에서 한국영화를 말할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이름이 바로 김기덕이기도 하다. 베니스와 베를린을 거쳐 이제는 칸의 붉은 양탄자를 밟을 자격이 김 감독에게는 충분하다. 아니 다소 늦은 듯한 인상마저 든다. <숨>의 시사가 기다려진 각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기덕 감독의 차례는 영화제 나흘 째인 19일이었다. 국제영화제에 우리 영화가 초대되는 일이 이제는 일상처럼 느껴지기는 하나 경쟁 작품이 상영되는 팔레 데 페스티발 내 뤼미에르 극장에 들어가 보면 결코 이것이 예사로운 일상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구름처럼 몰려든 팬들을 가르고 배우들과 함께 감독이 붉은 양탄자에 오르면 칸뿐만 아니라 세계의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된다. 극장에 자리를 잡은 관객들은 감독의 등장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내는 것은 물론이요 감독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서서 기다린다. '뛰어난' 영화인에 대한 예우인 것이다.

영화가 끝나면 경쟁작에 초대된 영화를 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동한 관객들이 작가에게 최대의 인사를 보내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임권택, 홍상수, 박찬욱 감독이 이같은 영광을 누린 바 있다.

혹평 받은 <숨>에 이어 오늘 상영되는 <밀양>

 <밀양>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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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의 경우도 여기서 멀지 않다.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감독과 배우를 향해 관객들은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보냈다. 감독은 배우들의 손을 높이 들고 머리를 깊이 숙여 화답했다. 칸 영화제의 정수다. 감독과 관객이 현장에서 영화로 교감하는 이 순간만으로도 칸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나 영화 <숨>의 평가는 기대에 못 미쳤다. 지금까지 상영된 경쟁 작품을 자체 평가하는 현지 일일소식지 <스크린>에 따르면 크리스티안 문기우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선전하는 가운데 <숨>은 4점 만점에 1.9점을 기록해 평균점을 넘지 못 했다. <르 필므 프랑세> 또한 4점 만점에 1점이 안 되는 인색한 점수를 줬다. 물론 영화 소식지들의 평가는 심사위원의 선택과 무관하지만 영화에 따른 일반적인 반응을 읽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그러나 속단은 금물. 60년을 이어온 칸 영화제는 상상을 불허하는 선택으로 반전을 일으킨 전력이 허다하다. 이를테면 지난 1987년 영화 <사탄의 태양 아래>로 모리스 삐알라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이를 예측하지 못한 시상식장의 관객들은 야유를 보낸 바 있다. 영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황금종려상을 손에 든 삐알라는 그러나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러분이 나를 증오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나도 여러분을 증오하긴 마찬가지랍니다."

통쾌하기까지 한 삐알라의 응수는 칸 영화제 역사에 선명하게 기록됐다. 올해에도 삐알라의 반전이 재연되기를 바라는 것은 그러나 억지일까.

한편 '최근에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영화 <밀양>의 이창동 감독 일행은 오늘(24일) 오후 3시 30분 관객을 만난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 전작들이 프랑스에서 주목받았다는 사실 이외에도 문화부장관을 지낸 경력으로 세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한 이 감독은 칸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작가이기도 하다. 물론 추측에 불과하지만 <밀양>의 수상을 의심하는 반응은 드물다. <숨>의 상영에 이은 <밀양>의 선전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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