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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10월 24일 삼성의 주요 공장, 사업장을 돌며 삼성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자는 차원에서 조직된 삼성공장순례투쟁단이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벌인 '이건희 회장 풍자 퍼포먼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뜬금 없지만 2002년 대선으로 돌아가보자.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가 3월 광주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보좌관의 보고를 들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노 후보가 왜 1등 했는지 아나? <조선일보>와 싸웠기 때문이야."

분명 일제 치하와 군사정권기에 독재권력에 부역하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약화된 정치권력을 대신해 특권수구세력으로 자리매김한 <조선일보>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정치인은 민주국가를 지향하는 시민들의 희망이었다.

<조선>과 각 세운 대통령, 삼성 앞에선 '관대'

취임 이후에도 계속해서 <조선일보>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한 노무현 대통령은 그러나 경제권력의 핵심인 재벌, 특히 그 재벌체제의 꼭대기에 서 있는 삼성과 이건희 회장에게는 유독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대선불법자금 수사의 와중에서도 이 회장을 불구속했으면 하는 바람을 대놓고 피력했다. 탄핵되었다 복귀하면서 "경기부양 아닌 구조개혁"을 역설하였음에도 재벌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급기야 그는 삼성 총수와 그 주변인물들이 1997년 특정 대선후보의 당선을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사실이 국가안전기획부가 도청한 'X파일'에 담겨져 2005년 뒤늦게 세인의 관심을 끌어모았을 때, "정-경-언 유착보다는 안기부 불법도청이 본질"이라며 삼성과 이건희 회장을 두둔했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 캠프, 삼성과 이건희 회장, <중앙일보>와 홍석현씨를 축으로 한 수구특권동맹을 민주정부가 감싸는 절망적인 상황을 깨트린 이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다. 2005년 8월 18일 그는 'X파일'의 녹취록의 일부와 함께 삼성그룹에게 '떡값'을 수수한 의혹이 있는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법제사법위 보도자료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 걸린 삼성 깃발.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소해볼 테면 해보라. 면책특권도 포기할 수 있다"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부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 앞에서도 그는 주눅 들지 않았다.

삼성 문제는 '1987년체제 문제'의 핵심이다. 삼성 역시 <조선일보>처럼 군사독재에 봉사하고 특혜를 입어 발전했으며, 군사독재가 물러간 다음에는 민간정부의 어깨를 짚고 이 사회의 가장 높은 곳으로 치솟았다. 87년 체제를 다뤄온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삼성을 '관료', '386'과 함께 참여정부의 동맹축으로 지목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삼성은 단 한번도 6월항쟁이나 탄핵반대 촛불시위 같은 대규모의 반대에 직면한 적이 없다. 경제실정으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차례로 국민들의 비난을 받는 동안에도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 삼성은 선출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자사의 주식지분조차 넉넉하게 보유하지 못하였음에도 누구도 넘보지 못할 성채를 쌓았다. 삼성 문제는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급소다.

삼성, 한국 민주주의의 '급소'

지금 옥에서는 한 사람이 삼성에 대항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삼성일반노조의 김성환 위원장이다. 그는 <삼성재벌노동자탄압백서>를 만들었다가 삼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고, 2005년 삼성SDI의 핸드폰 위치추적을 폭로하며 삼성 고위 임원들을 고소했다가 거꾸로 법정구속을 당해 3년 5개월의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수감 중인 2005년 4월과 8월 연이어 모친상과 부친상을 당하는 시련을 겪은 그는 지난 2월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양심수로 선정되었으나 석방될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이제 다음 차례는 노회찬인가? 떡값검사의 실명이 폭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강민 변호사 등은 그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형사고소를 제기했다.

그후 독재권력의 하수인에서 이제는 독립과 자율의 시대를 맞이한 검찰과 사법권력은 이를 어떻게 처리하였는가? 법원은 작년 11월 그에게 2000만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07년 5월 21일. 서울중앙지검은 노 의원을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핸드폰은 언제나 삼성 것을 쓴다"던 노 의원의 강연 발언이 기억난다.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한 비중을, 삼성이 가지는 국제적 경쟁력을 부인할 사람은 드물다. 그 회사가 만들어낸 제품 하나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더 드물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 일가를 국민기업으로서의 삼성과 등치시키는 사람은 줄어드는 것 같다.

고용창출은커녕 경영권방어에 기업의 자원을 소진하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삼성 자체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 삼성의 가장 큰 적은 삼성의 우두머리들과 그들을 떠받치는 정·관계와 언론계의 동맹자들이다.

삼성 떠받치는 정·관·언 동맹에 맞선 노회찬

▲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10일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 공동투쟁 집회에 참석해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연대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러한 현실에서 노 의원은 '삼성 민영화'의 기수였다. 본디 민영화란 국영 또는 공영기업을 민간부문에 넘기는 것을 뜻하지만, 그 민영화가 그저 사유화가 아니라 진정 '민'을 위한 것이라면, 총수가 독점한 기업경영권을 종업원, 소액주주 그리고 일반 국민들을 포함하는 이해당사자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민영화의 일종이다.

무노조신화를 깨려는 노동운동, 주주총회에 우뚝 선 시민운동, 노회찬, 심상정, 박영선을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의 재벌개혁행보는 모두 한국역사상 제일 의미있는 '민영화'를 위한 움직임이다.

<조선일보>의 '사상검증사태' 때 최장집 교수가 그저 한명의 학자가 아닌 학문적 자유와 시민사회의 활력을 상징하는 코드였듯 이번 검찰의 기소방침은 새삼 노 의원이 단순히 국회의원 일인이나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일 뿐만 아니라 수구특권동맹에 맞서는 민주민생연대의 한 이름임을 깨닫게 해준다. 지난 세월동안 쟁취했던 자유로이 말할 권리를 지키려는 사람, 앞으로 확보해야 할 잘 먹고 잘 살 권리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이름을 지켜야 할 것이다.

필자의 미니홈피 초기화면에는 X파일 속 떡값 검사 7명의 이름이 적시되어 있다. 노 의원이 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가 성립된다면, 나에게도 마찬가지의 혐의를 씌울 수 있을 것이다. 자, 나도 기소하라.

태그:#노회찬, #검찰, #삼성, #이건희, #떡값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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