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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장애인과 그 가족(이하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어떤 존재인가? 몇 해 전부터 이 질문이 늘 나를 따라다닌다. 누구도 답을 내주지 못하는 이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

대통령에게 물어도, 장관들에게 물어도, 공무원들에게 물어봐도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장애인도 이 나라의 국민이고,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모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너무도 쉽게, 너무도 뻔뻔하게 말을 한다.

▲ 지난 4월2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장애극복상 수상자를 시상하고 있는 유장관
ⓒ 위드뉴스
그리고 돌아서는 순간 다 잊어버리고서 무슨 날만 되면 '장애체험을 하니, 정책을 만들라느니, 복지혜택을 더 주겠다느니'하며 정신없는 말의 잔치를 벌인다.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 배움을 이어갈 수 없는 아이들,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마음먹은 곳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장애를 가진 이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은 말을 한다.

"국민이고, 권리고 이야기하기 전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과 공부할 수 있고,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

손가락질에 익숙하고, 투쟁이 일상인 사람들

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농성을 하고, 어떻게 하면 장애의 현실을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을 몰이해하는 특정 일반인(이하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개선을 해 나갈 것인지 고민을 하면서 지내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손가락질에는 익숙해져 있고, 투쟁은 일상으로 변했다. 편안한 집을 두고서 아스팔트 바닥에서 지내는 날이 더 많아지고, 비닐 천막을 치고, 서로에게 힘을 전하며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나서는 사람들. 사람답게 살다 죽고 싶다는 사람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어두운 뒤 켠으로 밀려나 세상을 등지고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와 자신도 장애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그러한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답을 만들어 내라고 온 힘을 다 짜내 함성을 내지른다.

한마디 하기가 버겁기만 한 사람들이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누구도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 나라는 저들의 목소리에 답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저들의 소리에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병신들 또 지랄하네." 이것이 공무원들, 경찰들, 일반인들의 반응이다. 차별은 어디서고 아무렇지 않게 저질러지고, 소외는 그림자처럼 달고 다닌다.

이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관공서에 출입을 하려 해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의 출입문에, 화장실 역시 마음 놓고 이용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을 정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몇 날 며칠을 마음 다잡고 나서야 하고, 그마저도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없으면 불가능한 현실.

▲ 지난 4월14일 국회앞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에 참여한 장애아 소녀
ⓒ 위드뉴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고, 입학을 하고서는 현장학습이나 여행에 참여할 경우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요구받으며, 전학 권유를 받기도 하는 현실.

참정권은 기본적인 권리라 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어떤 편의시설도 없이 일반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투표소는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들과 상반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한숨은 하늘로 오르고, 그들의 삶과 인권이 철저히 유린당하며 감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인권의 잣대는 그들을 외면하고 있으며 온갖 악행이 벌어져도 어느 누구도 외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현실.

선로에 떨어져 죽고, 장애인 전용리프트에서 떨어져 죽고, 생활고에 시달려 스스로 죽고, 시설에서 매 맞아 죽고, 겨울 찬 바닥에서 얼어 죽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장애인은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인가?

'장애(障碍)-가로막고 거치적거리는 것.' 장애를 단순하게 사전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그것으로 다 이해하려는 것인가? '장애인의 날'이 오면 방송과 신문은 장애인의 성공담을 담아내기 분주하고, 장애인을 위한다고, 위로한다고 공연을 해주고, 장애인을 위한 국가의 몫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는 너스레를 떨면서 호들갑스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몇몇의 성공담(?)으로 모든 장애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공연을 보여준다고, 말 잔치를 벌인다고 당장 일상이 변할 수 있을까? 복지부장관은 장애극복상을 수여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했을까? 정작 장애인의 삶이나, 그들이 처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단지 몇몇 사람에게 상을 주면서 모든 것을 무마하려는 것은 아닐까?

일 년 내내 모른 척 외면하고 있다가 겨우 하루 생색내기에 바쁜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 과연 장애인을 위한 무엇인가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원론적인 이론만 만지작거려, 예산부족 핑계

대통령은 법안 하나 서명하면서 '장애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하지만, 제도와 시설, 환경을 어떻게 하겠다는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여러 행사 중 하나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무엇을 바꾸고, 어디를 손질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아이를 학교보내기 위해 단식에 삭발에 농성을 하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시위를 하고, 제도를 고치고, 법을 만들기 위해서 불편한 몸으로 거리에 나서는 이 사람들을 위해 국가는 정녕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러면서 원론적인 이론만 만지작거리면서, 예산부족을 이유로 들면서 형평성을 이야기하고는 선거철이 오기만 기다리는 것인가. 장애를 나와 다른, 그러나 나와 같은 동등한 사람으로 보고, 대할 수는 없다는 것인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법조문을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의 범주에 들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그런 날은 멀기만 한 것인가.

몸부림치는 사람을 위해 해야 할 일

'장애인이 편한 세상, 모두가 편한 세상'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그 말뜻을 알고는 있는지….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정치인이든, 누구라도 나서서 가슴 시원한 답변을 해 줄 수는 없는 일인가.

▲ 지난 4월20일 서울역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결의대회에 참석한 장애인
ⓒ 위드뉴스
지금의 현실에 갇혀 아우성치고,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는 이 사람들에게 손 내밀어 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

교육받을 권리, 선거에 참여할 권리, 이동을 할 권리, 인격체로 대우받을 권리, 직업을 가질 권리 등 모든 잠자는 권리를 깨워 이제 저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 수장으로서 할 일이고, 관계 장관이 할 일이며, 국회의원들이 할 일이고, 모든 국가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위드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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