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에 관한 영화, <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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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교육 3불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미FTA를 불식시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대선용 편 가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즘 보수 신문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교육 3불 정책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펴고 있으며, 정부 역시 이를 이용하여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고만 하고 있다.

양측 모두 학생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 충언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마냥 수업내용 따라잡기에 급급할 뿐, 그들의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올해 중학교 선생님이 된 후배의 말에 따르면, 선생님이 무슨 말 한 마디만 해도 먼저 그것이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 되는가 묻는 것이 이 시대 학생들의 현주소다.

과연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은 위정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결국 공교육이란 그 사회가 꿈꾸는 이상과 유지하고자 하는 현실과의 대립이 벌어지는 가장 작은 단위일 터, 그 어느 때보다 신자유주의에 근거하여 극한 경쟁을 장려하는 이 정부가 자랑스럽게 지키겠다는 공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 그보다 그들은 공교육을 통해 확립하고자 하는 사회상을 세우고 있기나 할까?

최근 개봉된 영화 중 일그러진 우리의 공교육에 대해 한 번 쯤 성찰케 하는 작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화 <우리학교>이다.

영화 속 거세된 정치성

 정체성을 찾는 과정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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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이 영화와 관련하여 공교육만을 거론하는 나의 설명에 의문을 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영화 <우리학교>는 일본 내 거주하는 자이니치(在日)에 관한 영화로서 그 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조총련계 동포들에 관해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냥 북한 추종자로 알았던 그들의 역사와 일상들.

실제로 나 역시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일본에서 온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소위 민단계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일본학교를 다니다가, 민족교육을 중시하신 아버지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조총련계 학교를 다닌 분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후 기자가 되기 전까지 민족학교에서 몇 년 동안 교원으로도 생활을 했었으니, 그녀가 권한 <우리학교>는 내게 역시 민족학교에 관한 영화로서 권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화는 생각 외였다. 우리의 국민윤리 대신 북한의 주체사상을 배우고, 우리가 배우는 왕조 중심의 국사 대신 사회주의 사상에 근거한 민중 중심의 조선사를 배우는 그들의 모습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는 무엇보다 조총련 학교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색체를 최소화하고 있었다. 조총련 사회에서 학교가 가지는 위상은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조총련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는 지적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역사에 무관심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일본 사회 내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그들이기에 학교 교육이 갖는 정치성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영화를 통해 조총련계 동포들을 처음 접한 이들은 '고향은 남한, 조국은 북조선'이라는 그들의 언사에, 혹은 북한 인공기를 가리키며 '우리나라 국기'라는 그들의 당연한 반문에 놀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일 뿐, 영화에는 실제 조총련 학교와 북한과의 고리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학교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가 결국 교육을 통한 공동체의 유지라고 한다면, 결국 조총련의 교육이 우리의 학교 교육과 가장 다른 것은 역시 남북의 정치와 사회에 관련된 것일 텐데 영화에서는 정작 그 부분이 생략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내용의 대부분이 수업 시간 외 활동에 집중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조국' 북한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은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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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영화 말미 북한을 방문하고 온 학생들의 감정은 스크린을 통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들의 북한방문을 보며 우리들의 졸업여행이나 수학여행을 떠올릴 수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차별을 받으며 조선어와 조선사를 배웠던 그들에게 북한 방문은 우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단순한 여행을 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뿌리 찾기의 실로 감격스러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분단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영화가 받을 오해를 피하기 위해 영화의 정치성을 거세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조총련계 동포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누락시킨 꼴이 되었다.

자이니치(在日)로서의 그들

 그들에 대한 또 하나의 키워드 '자이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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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밋밋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하나같은 정체성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학교 교육을 통해 자신이 조선인임을 절절히 깨닫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이들이다. 일본 학교에 있었으면 지금쯤 소년원이나 전전했을 테지만 민족학교에 와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어느 학생의 말처럼, 영화 속 학생들의 대부분은 일본 사회의 차별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는 현재 일본 자이니치 사회에서 다수를 점하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영화 < GO >에서 볼 수 있었듯이 실제 많은 자이니치들은 일본 사회의 차별과 국가체제가 갖는 폭력성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일본인도 아닌, 그렇다고 한국인도, 조선인도 아닌 자이니치로서 그들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새롭게 형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에 대한 배신도, 반역도 아니다. 그것은 일본사회를 살아내는 소수자로서의 자이니치가 갖는 현실적인 문제이며 남과 북이 '민족'이란 당위성만으로 왈가왈부 할 수 없는 지점이다.

영화는 바로 이와 같은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을 누락시켰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받는 부당한 차별은 간혹 언급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자이니치들이 고민하고 있는지 영화는 결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영화 속 대부분 등장인물이 기숙사에 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통학하는 이들보다 일본사회의 현실적인 부침이 덜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이니치 사회가 갖는 정치성의 거세와 정체성 문제의 누락. 영화는 대신 그 공간을 '민족'으로 채우려 한다. 한민족으로서 갖는 자부심과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감독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말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학생에서부터 선생님까지 말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는 사람들.(이와 더불어 역사의 이해 역시 중요한 요소이나, 앞서 말했듯이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대범하게 누락시키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민족의 강조는 오히려 자이니치 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결국 소수자로서의 자이니치는 20세기 '국가'와 '민족'이 만들어낸 문제이며, 이는 기존의 관념을 강조한다고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같이 한중일 삼국의 민족주의가 극단적으로 재생산 된다면 그것은 결국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어리석은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자이니치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오히려 그들과 같은 체제 내 이방인을 통해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을 인지해야 한다. 근대가 만들어 놓은 굳건한 경계들이 얼마나 많은 개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가 깨달아야 하며,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공동체, 동반자를 만드는 것이 21세기 우리의 몫임을 되새겨야 한다.

그래도 볼만한 영화 <우리학교>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회로 나가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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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밋밋하고 단조로웠던 영화 <우리학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볼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영화는 처음으로 조총련 사회를 비교적 가감 없이 다뤘다. 영화는 남한 정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면서 단순히 친북단체로만 알려진 그들의 모습을 화면에 진솔하게 담아냄으로써 관객들에게 그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이들이라는 걸, 지금까지 그들에 대한 편견이 결국 우리의 반공이데올로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비록 그 키워드로 '민족'이 강요된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많은 이들이 근대의 역사 속에 자이니치의 존재를 아는 것만 해도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처음에 언급했듯이 영화는 우리의 공교육을 성찰케 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서 입시만을 위주로 돌아가는 우리의 교육과는 달리, 각 개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또한 그 개인들이 상호 연대하며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전인적 교육이 행해지고 있는 조총련 학교.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꿈꾸고 있는 공교육의 전형인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에서는 북한의 교육체제에서 일반화 되어있는 사상교육이 누락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차피 그 체제가 요구하는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근대교육은 존재하지 않을 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공교육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공공재로 이용되고 있느냐는 것일 것이다.

영화 <우리학교>. 다른 이는 몰라도 청운의 꿈을 품고 학교로 간 젊은 교사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그들의 교육은 우리가 꿈꾸는 공교육의 전형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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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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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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