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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몬스터>.
ⓒ 투니버스
일본 만화 가운데 <몬스터>라는 작품이 있다. <마스터 키튼> 등으로 우리나라에도 상당수의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우라사와 나오키(浦澤直樹)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일본에서만 2000만부 이상 팔렸으며,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을 뒤지면 몬스터 마니아 클럽을 꽤 찾아볼 수 있다.

<몬스터>는 만화 제목 그대로 '절대 악'의 화신과 같은 '요한'이라는 몬스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스릴러물이다.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양부와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준 의료진들을 살해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의 심리와 약점을 꿰뚫어 보고 이를 이용해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 특별한 능력을 유감없이 활용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이 만화는 그러나 몬스터의 '연쇄 살인'이나 '대량 학살'이 주된 줄거리가 아니다.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고 줄곧 쫓고 있는 것은 냉혈한 살인마 요한, 즉 몬스터의 뿌리와 그 본성에 관한 탐사다. 그 추적을 통해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 둘 드러난다.

몬스터의 살인 권능은 '상처'에서 싹튼다

구동독 시절 특별한 능력이 있어 보이는 고아들을 모아놓고 실시한 '인간병기' 프로젝트에서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본인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몬스터가 돼 버린 요한. 쌍둥이 자매 가운데 한 명의 아이만 남기도록 강요당한 어머니한테서 결국 버림받은 요한.

자신의 쌍둥이 남매인 '안나'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는 절대 고독한 존재로서의 요한. 결국 안나에게 자신을 쏘도록 해 죽음을 선택한 요한, 그러나 만화 '몬스터'의 또 다른 주인공인 '닥터 덴마'에 의해 기적적으로 살아나 청년 몬스터가 된 요한….

유럽 전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짜임새 있는 긴박한 이야기 전개와 독특하고 다양한 캐릭터 이외에도 만화 <몬스터>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내 안의 몬스터'에 대한 깊이있는 천착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이 살려놓은 몬스터를 없애기 위해 요한을 쫓는 닥터 덴마,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쌍둥이 오빠 요한을 죽이기 위해 역시 그를 쫓는 안나를 통해서 작가는 몬스터가 이 세상과는 물론 바로 이들 추적자들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요한이라는 몬스터의 탄생도 그렇지만 그가 초인적인 '살인권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 내면의 '깊은 상처'나 '공포' 혹은 '끝없는 욕망'의 뇌관을 적시에 조작할 수 있었기 때문임을 장면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선과 악이 교차하고,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말한다.

"몬스터는 바로 당신, 그리고 우리 안에 있다."

만화 <몬스터>의 가장 큰 미덕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연쇄 살인마 요한을 쫓아가면서 닥터 덴마나 그의 쌍둥이 누이 안나는 몬스터 요한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못한다.

몬스터의 뿌리와 그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이 두 사람의 연민은 더욱 커진다. 끝내는 치명상을 입은 몬스터를 닥터 덴마가 살리기 위해 다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몬스터에 대한 공포와 증오, 적대는 연민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용서까지는 아닐지언정, 어느 정도는 화해하는 것으로 이 만화는 대미를 장식한다.

버지니아 몬스터는 결말이 달랐다

▲ <몬스터>에 나오는 만화 속 동화 '이름없는 괴물'. 몬스터 요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조승희씨에도 적용된다.
어디까지나 만화 이야기다. 버지니아 공대의 '몬스터'는 결코 그런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없었다.

피의 살육이라는 끔찍한 최후를 선택한 버지니아 몬스터는 숨가쁜 언어와 공격적인 포즈, 혹은 절망적인 제스처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려 했지만 그것은 제정신이 아닌 외톨이의 '광기어린 독백'이 되고 말았다.

결코 화해할 수 없었던 미국 사회에 있어서 그는 진즉 격리됐어야 했을 '미친 놈(mad man)'에 불과할 뿐이다.

그를 미치도록 외롭게 하거나 혹은 좌절케 했을지 모를 '한국인'이라는 핏줄과 국적마저 몬스터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무늬만 '한국인'일 뿐이다. 미국에서 자라 '사실상 미국인'인 그는 '미국판 몬스터'일 수는 있어도, 한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게들 믿고 싶어한다. 그가 한국 핏줄이어서, 한국인이어서, 동양인이어서, 백인이 아니어서 미국 사회에서 겪었을 갈등과 좌절, 혹은 분노를 이해할 수 없으므로. 아니, 그런 몬스터가 '내 안'에, 혹은 '우리 안'에 똬리 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니까.

태그:#백병규, #미디어워치,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몬스터, #멀티미디어 메니페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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