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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작가의 신작 <고맙습니다>(이재동 연출, MBC 수목 미니시리즈)는 전작들인 <미안하다 사랑한다>나 <이 죽일 놈의 사랑>보다 그 이전 작품인 <상두야 학교 가자>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상두와 그의 아픈 딸 보리 그리고 은환이 만들어가던 코믹하면서도 가슴 찡했던 유사가족의 형태는 <고맙습니다>에서 영신(공효진 분)과 딸 봄(서신애 분), 할아버지 병국(신구 분) 그리고 기서(장혁 분)의 사각틀로 변형되었다. 두 드라마는 확실히 따뜻하고 인간미 물씬 풍기는 가족드라마의 외형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나 <이 죽일 놈의 사랑>에 못지않은 죽음이 짙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나 <이 죽일 놈의 사랑>의 주인공들이 처음부터 죽음이 예견된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들이었다면, <고맙습니다>의 주인공들은 다른 누군가의 죽음의 그림자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이들이다.

죽음이 주인공들에게 비껴나 있는 대신,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죽음의 그림자로 인해 우울증적 주체가 되어 있다.

그와 그녀의 우울증, 왜...

ⓒ imbc
기서는 연인 지민(최강희 분)의 죽음 이후,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죽은 자와 합체가 되어 있다. 뛰어난 외과의사인 그는 췌장암 말기인 지민의 수술을 직접 시도해 보지만 결국 그녀를 살려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죽은 애인에게 붙들려 있는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불면증으로, 공격성으로 드러낸다. 그는 한순간도 이불 펴고 다리 뻗고 편히 잠 잘 수가 없으며, 술이 취해서야 방 한 귀퉁이에 쓰러져 쭈그리고 힘든 밤을 겨우 마감할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와 냉소가 커갈수록 타인들에 대한 공격성도 심해진다. 누군가 걸려들기만 하면 시비를 걸고 싸움을 벌인다. 그러한 헛된 폭력은 자신을 망가뜨리려는 우울증자의 자해적 몸부림임에 틀림없다.

반면 영신은 과거의 사랑을 가슴에 끌어안고 있는 또 다른 우울증자이다. 그녀는 과거의 사랑에 붙들려 있다. 그 사랑의 결과이자 그 사랑에 대한 유일한 증거로서의 딸 봄이와 함께. 그녀 역시 떠난 사랑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건 자신의 전부인 딸 봄이가 잘못된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영신은 치매 걸린 할아버지와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 딸,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과 더불어 아무렇지 않은 듯 힘겨운 삶을 버텨내야만 한다.

기서의 우울증이 보란 듯이 타인에 대한 거친 폭력으로, 자해적인 공격성으로 외화되어 나타나는 반면, 영신의 우울증은 결코 외부로 표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바깥 세상의 억측과 편견과 멸시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결코 자신의 불행과 불운을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표면적 무상함에도 불구하고, 영신의 우울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깊숙이 잠복되어 있다. 그녀의 우울증은 내부로 삭혀져야만 하고 자기 안으로 우겨넣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가장된 평온이 지닌 위태로움

ⓒ imbc
그리고 그것은 폐쇄된 가족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버려지고 배제된 가족공동체 안으로. 그곳은 치매와 에이즈감염과 미혼모가 동거하는 곳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가장 비루하고 쓸모없는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영신은 이 가족체계 안에 유폐되어 모성적 신화를 재현하도록 강제된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하고, 치매 할아버지를 정성껏 돌보아야 하며, 어린 딸이 상처가 났을 때 혼자 수습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씩씩하고 밝은 긍정적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봄이 할머니 강여사(강부자 분)의 핍박도 고분고분하고 유순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마을 일이라면 나서서 해결하려는 온정적인 마음도 지녀야 한다.

영신이 지닌 힘은 이 모든 것을 즐거움으로, 놀이로, 희열로 뒤바꿔버리는 놀라운 역설적 의지이다. 마치 '고맙습니다'가 그들을 박해하고 세상 끝으로 내모는 현실에 대한 꿋꿋하고 당찬 대응의 역설적 표현인 것처럼.

실제로 영신이 만들어가는 가족은 어른 아이의 구분도 없고, 성별도 없고, 나이차도 없는 동등하고 평화로운 공동체이다. 그들은 서로서로를 보살피고 서로서로를 지탱시켜준다. 그녀가 처한 억세게 재수 없는 운명과 비루한 현실은 그녀 가족의 비현실적 놀이로, 천사놀이, 소꿉놀이, 역할놀이로 대체된다.

할아버지는 미스터 리였다가 아이가 되기도 하고, 봄이는 메주였다가 천사였다가 어른이 되기도 하며, 영신은 성숙한 엄마였다가 첫사랑의 소녀였다가 자꾸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어간다. 그리고 봄이 아빠 석현(신성록 분)과의 객기어린 하룻밤 풋사랑은 영신에겐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천사와의 영원한 사랑으로 가공된다.

그러는 동안 영신의 상처와 비애와 고통과 슬픔은 한 번도 제대로 표출되지도, 제대로 위로되지도 못했다. 그녀가 만들어낸 이 가장된 평온이 지닌 내재적 슬픔과 그 평온이 어느 한순간 깨져버릴 수 있다는 안타까움이야말로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이 드라마만의 서정성이다.

절망적인 듯 희망적인 사랑의 힘

ⓒ imbc
그러한 서정성 위에 우리의 우울증 주체들의 절망적인 듯 희망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기서가 자신을 버리듯 우연히 푸른도라는 변방의 작은 섬으로 기어들어간 것은 아마도 푸른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죽어가는 지민이 남긴 말, 자신의 실수로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에게 대신 사죄를 해달라는 그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민의 죄책감마저 합체한 기서가 먼저 발견하는 것은 에이즈에 걸린 아이 봄이 이전에 전혀 다른 듯 자신과 닮아 있는 영신의 존재였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서로의 상처와 고통을 알아차린다. 영신은 기서의 무례하고 뻔뻔하며 위악적인 제스처 뒤에 도사린 여리고 순정한 내면을 알아채며, 기서는 영신의 숨겨진 사연과 꿋꿋함 뒤의 처연한 비애를 보아버린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내보이고 싶지 않은 숨겨진 속내와 내밀한 열망까지를 보아버린 상대에게 반발과 동질감이라는 복잡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들이 티격태격 감정싸움을 벌이는 것은 사랑의 결실을 위한 일반적 수순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단단한 껍질처럼 뒤집어쓰고 있는 자신들의 우울증의 희열-과거의 사랑-에서 이들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고통과 외로움을 즐기는 이 우울증 주체들의 사랑에 불을 지르는 것은 아마도 본인들 스스로보다는 외부의 힘들일 것이다. 결혼을 앞둔 석현이 영신과 봄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품고 주변을 서성거리기 시작했고, 봄이의 에이즈감염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신의 가족은 더욱 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영신과 기서를 한 편으로 몰아갈 것이며, 그들의 사랑을 더욱 절실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시련은 봄이의 발병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영신은 다시 한 번 상실의 위기를 맞아야 할지도 모르며, 기서는 다시 한 번 죽음과의 사투를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들이 이 최종적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면, 에이즈에 대한 세상의 공포, 나아가 자신들의 공포와 맞서 싸울 수만 있다면, 이들은 더 이상 우울증자가 아닐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미 새로운 사랑 속에서 더 이상 외롭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태그:#TV, #드라마, #고맙습니다, #삶,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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