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생뚱맞은 질문 두 가지.

1. 걸출한 야구 스타 선동열은 축구도 잘 했을까?
2. 대한민국 축구의 자존심인 박지성은 야구 선수로 뛰어본 적이 있을까?


야구선수였던 선동열이나 축구선수인 박지성이 자신들의 주 종목인 야구나 축구만 잘 하면 되지, 엉뚱하게 무슨 축구·야구 타령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과연 이들이 다른 종목에서도 명성을 얻은 적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궁금해진다는 말은 빈말이고 한국에 오래 살았던 기자의 경험으로는 100% 확신할 수 있는 정답을 안다.

정답: 다른 종목에서 학교 대표선수로 뛰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한 우물을 파는 게 정석이라고, 최선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우물만 파는 것이 능사일까.

지난 2월에 끝난 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힌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팀의 페이튼 매닝. 그 역시 풋볼로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는 야구와 농구를 했다.

#1. 단거리 주자야? 풋볼선수야?

▲ '가장 빠른 소년'이자 '풋볼의 지존'인 알렉스 오와.
ⓒ 한나영
쉐난도밸리 지역에서 가장 빠른 소년은? 알렉스 오와

스팟츠우드 고교의 스프린터인 리키 서그스 선수는 해리슨버그 고교의 알렉스 오와에 이어 100m 달리기에서 11.2초로 2위를 차지했다. (<데일리뉴스 레코드> 3월 22일자)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10학년 단거리 선수인 알렉스 오와. 그에 관한 신문 기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총알처럼 빠른 그의 발에 대한 최근 기사들은 분명 알렉스가 뛰어난 육상 선수임을 말해 주고 있다. 하지만 알렉스는 달리기만 잘하는 단거리 주자인가.

"터치다운. 알렉스 오와, 오와, 오와."

작년 풋볼 시즌 중 이 지역 고등학교 풋볼 경기장에서 이름이 가장 많이 불려진 선수는 바로 알렉스 오와다.

장내 아나운서는 상대 수비를 가뿐하게 제치고 터치다운에 성공한 오와 선수의 이름을 크게 외친다. 관중들 역시 "오와, 오와"를 연호하면서 그의 등번호(5번)가 새겨진 티셔츠를 많이 입고 있다.

오와 선수는 이런 명성에 걸맞게 지역 일간지가 뽑은 '2006 고교 베스트 풋볼 선수' 가운데 으뜸상인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the Best)' 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아름답다. (웨인스보로 고교 풋볼 감독, 데니 도튼)

#2. 풋볼선수로 뛸까? 농구선수로 뛸까?

▲ 자유투를 가장 많이 쏜 농구스타이면서도 대학풋볼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토니 오와.
ⓒ 한나영
우리 지역 유명 풋볼 선수들의 대학 진학이 모두 결정되었다. 아직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톱플레이어로는 해리슨버그 고교의 토니 오와와 락브리지 고교의 마커스 마요가 있다. (<데일리뉴스 레코드> 2월 15일자)

올해 고등학교 졸업반(12학년)인 토니 오와. 앞서 소개한 동생 알렉스와 함께 해리슨버그 고교 풋볼팀을 4년 연속 쉐난도밸리 지역 챔피언십에 오르게 한 수훈갑이다. 졸업을 앞둔 토니는 그래서 현재 각 대학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토니는 이제 최후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학에 가서 풋볼을 할 것인지, 아니면 농구를 할 것인지를. 에엥, 이게 무슨 소리야?

토니 오와, 해리슨버그 고교(HHS)의 승리를 이끌다

전반전에 15점 차이로 뒤졌던 HHS가 후반 4쿼터에서만 14점을 넣은 오와 선수의 수훈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HHS는 포트디파이언스 고교를 77:63으로 따돌렸다. (<데일리뉴스 레코드> 2월 3일자)


기자가 직접 관전한 농구 경기에서도 토니 오와는 이름에 걸맞게 현란한 드리블과 정확한 슛을 선보이면서 상대팀 수비수들의 파울을 많이 얻어냈다. 자유투를 가장 많이 쏜 수퍼스타가 바로 토니였다.

#3. 야구와 풋볼 중에서 하나만 고르라고? 너무 어려워

▲ '2006 베스트 풋볼 선수'의 유일한 쿼터백이자 야구 1번 타자인 벤 사버.
ⓒ 한나영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야구팀의 벤 사버. 그는 빠른 발에 정확한 선구안, 정교한 방망이를 자랑하는 타고난 1번 타자다.

몇 주 전에 있었던 웨인스보로 고교와의 경기에서도 벤은 선두 타자로 나와 정확한 선구안으로 볼넷을 고르고 2루 도루에 성공했다. 그리고 3루마저 훔치다가 상대 투수의 견제구가 빠지는 바람에 홈까지 파고들었다. 결국 혼자서 1점을 따낸 셈이었다.

이렇게 야구팀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벤은 풋볼도 잘 하는 스타플레이어다. 작년 12월 26일자 <데일리뉴스 레코드>에 실린 '2006 고교 베스트 풋볼 선수'에 쿼터백으로 유일하게 이름이 오른 선수가 바로 벤이다.

#4. 바순도 불고 색소폰·클라리넷도 불고

▲ 재즈밴드에서 색소폰을 부는 말리 시크. 오케스트라와 바순 협연을 끝낸 뒤 외할머니와 함께.
ⓒ 한나영
해리슨버그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바순 주자가 있다. 바로 말리 쉬크다. 그녀는 12학년으로 이 지역 뿐 아니라 버지니아 전 지역에 이름을 알린 젊은 뮤지션이다.

유스오케스트라와도 협연을 했던 말리는 버지니아 각 지역에서 오디션을 거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올스테이트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할 예정이다.

그녀는 이미 여러 대학으로부터 합격증을 받았는데 4년 전액 장학금을 보장한 루이지애나 대학으로 진학할 예정이다.

이렇게 바순을 잘 부는 말리는 바순 외에도 색소폰을 잘 분다.(학교 마칭밴드에서는 클라리넷을 불기도 한다.) 말리는 지난 가을에 있었던 재즈 밴드 공연에서는 테너 색소폰을 멋있게 부는 재즈뮤지션으로 변신했다.

#5. 뮤지컬 배우인 축구 선수?

▲ 축구선수가 소원인 뮤지컬 스타 드루 시스. '수지컬'과 '올리버'에서 맹활약을 했다.
ⓒ 한나영
드루 시스는 타고난 뮤지컬 배우다. 그의 노래와 연기, 탭댄스 등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브로드웨이 객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지난해, 닥터 수스의 뮤지컬 <수지컬(Seussical)>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11학년생 드루 시스는 올해, 캐롤 리드의 뮤지컬 <올리버 (Oliver)>에서 주인공만큼이나 비중 있는 파긴역을 맡았다.

그의 연기는 이 지역 일간지에서도 극찬할 만큼 탁월했다. 당연히 연극배우가 될 줄 알았는데 학교 모임에서 만난 드루 시스 엄마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들의 꿈은 축구선수예요. 연극배우가 아니고요. 그래서 틈만 나면 열심히 축구 연습을 하지요."

다양한 활동을 장려하는 미국 고등학교

미국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은 우리와 달리 학업성적이 입학전형의 전부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미국 고등학생들은 다양한 과외활동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스포츠·예능 분야의 스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의 멀티플레이는 단순히 대학 진학을 위한 점수따기식 활동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선보이는 멀티플레이는 전혀 관련이 없는 활동들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활동들을 통하여 이들은 순발력도 키우고 창의력과 적응력도 키워나가는 것 같다. 학교 역시 학생들의 이런 다양한 활동을 장려하고 있고.

작년에 해리슨버그 고교 풋볼 경기장에서는 풋볼 경기가 끝난 뒤 이 학교 졸업생인 한 유명한 선수의 은퇴식이 있었다. 그는 미국 프로 풋볼 리그인 NFL의 탐파 베이 버카니어스 팀에서 활약했던 존 웨이드였다.

존 웨이드는 후배들의 경기가 끝난 뒤 많은 관중들 앞에서 인사를 했다. 재학생을 비롯한 많은 해리슨버그 주민들은 기립 박수를 보내며 웨이드 선수의 은퇴를 축복해 주었다.

그런데 그가 활약했던 탐파 베이 버카니어스 팀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그 역시 고교 시절에는 풋볼 뿐 아니라 야구를 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 NFL에서 활동했던 존 웨이드(오른쪽)의 은퇴식. 고교 시절엔 야구선수로도 활약했다. 은퇴식이 끝난 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점퍼를 입은 팬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한나영
하나를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멀티플레이

만약 우리나라에서 시즌을 끝낸 농구선수가 시즌 중인 야구나 축구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까.

"하나만 잘 해."
"하나라도 제대로 해."


그런데 바로 그 하나를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멀티플레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어린 학생들은 다른 분야를 경험해 봄으로써 본인이 정말 원하고 재능이 있는 쪽을 발견하여 전력투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에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 기자는 우리나라 고교 운동선수들이 수업에 자주 빠지고, 예능계 학생들이 오직 기교만을 위해서 테크닉 훈련에 올인하는 상황을 많이 봐왔다.

물론 떡잎부터 다른 '될 성 부른 나무'들은 그 재능을 일찍부터 키워주기 위해 올인 전략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런 전략은 그 밖의 다른 분야는 전혀 알지 못하는 절름발이식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혜선 역시 피아노의 테크닉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녀는 독서와 전시회 등의 공연 관람도 강조하면서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런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멀티플레이어'란 말을 퍼뜨린 거스 히딩크

▲ 2002 한일월드컵에서 멀티플레이어 전략을 구사해 크게 성공한 히딩크 감독.
ⓒ 연합뉴스
멀티플레이어라는 말이 언제부터 우리 귀에 익숙해졌을까. 아마도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일 것이다.

월드컵 4강이라는 전무한 아니, 후무할 지도 모를 신화적인 기록을 남겼던 거스 히딩크가 도입했던 게 바로 토탈사커였고, 여기에서 나온 말이 멀티플레이였다.

히딩크는 우리 선수들에게 멀티플레이어가 되라고 요구했다. 즉, 붙박이 공격수, 붙박이 수비수 대신 상황에 따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다양한 능력의 멀티플레이어를 주문한 것이었다.

그런 멀티플레이어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가 강조했던 것은 기본 체력을 중시하는 파워프로그램이었다. 그는 20m 왕복달리기인 셔틀런을 실시하면서 선수들에게 인터벌 트레이닝을 시켰다. 결국 히딩크의 전략은 성공했고 그는 명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멀티플레이어를 요구하는 21세기

때는 바야흐로 21세기. 다양한 사고와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지금은 한 우물만 파는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한 시대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를 골고루 잘 하는 멀티플레이어나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43개의 자격증을 취득하여 자격증 박사로 불리는 전도근 역시 <성공하기 위한 멀티플레이어 전략>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21세기는 한 우물형 인재에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능력을 갖춘 멀티플레이형 인재로 바뀌는 시대다."

우리 자녀들이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줘야 할 지 고민이 되는 때이다.

#스포츠#교육#박지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