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월 '4년 연임제` 개헌안 관련 긴급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개정은 지금 대통령인 저에게는 해당되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며 세간에 떠돌고 있는 정략적 제안이라는 의구심을 일축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7대 국회가 개원한지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민생법안과 개혁법안 등 입법의 처리과정에서 국민들에게 보여준 실망감은 정치불신을 넘어 정치에 대한 혐오감까지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여당은 여당대로 큰 덩치를 버거워하면서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였고, 야당은 선거를 통하여 소수당으로 전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다수당인양 행동함으로써 국회를 파행으로 내몰아 갔다.

선거를 통하여 의회권력이 바뀌었으면 그에 걸맞는 행동이 요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이나 야당 모두가 그러한 정치행태를 보이지 못한 것이다. 선거를 통해서 나타난 국민들의 민심을 한쪽에서는 무능함으로 인해서, 또 다른 쪽에서는 오만함으로 인하여 도외시한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개헌과 관련해서 논의한 내용을 보면 이들이 정말로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갖춘 국회의원들인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18대에도 국회의원 될 줄 아시는가

지난 11일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 등 5개 정당과 통합신당모임 원내대표 6인이 개헌문제를 18대 국회 초반에 처리한다고 합의하여 국회차원의 입장을 발표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기 중 개헌 발의를 유보해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14일 당의 합의를 수용해 개헌안을 발의하지 않기로 했다.

이러한 17대 국회의 생각이 무지와 오만함의 극치에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쉽게 헤아릴 수 있다. 도대체 개헌 문제를 18대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결정을 17대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한 의견표명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우선적으로 18대 국회에서의 의사결정은 그 때의 국회의원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17대 국회에서 미리 행동방향이나 의사결정의 방향을 설정할 수 없음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대 국회에서 18대 국회의 정치방향까지를 설정하는 것은 무지를 넘어 오만함의 극치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7대 국회의원들과 18대 국회의원들이 동일한 사람들로 구성될까? 원내대표들의 논의는 최소한 17대 국회의원 모두가 18대 총선에서도 원내에 진입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선거제도라는 것이 일정한 기간을 임기로 정하여 반복되는 것이며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는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였을 경우 언제든지 국민들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은 다음 퇴출될 수도 있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그러한 전제는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자신의 정치활동에 따라서 국민들로부터 선택 여부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셈이다.

당론은 절대구속력이 없다

▲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12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각 당이 참여하는 개헌 추진위 내지 개헌문제연구위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렇다면 각 정당의 당론으로 정하여 추진하는 것은 어떠한가? 이는 다음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18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해산당하는 정당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당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정당법 제44조에서는 당해 선거관리위원회가 그 등록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①최근 4년간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 또는 임기만료에 의한 지방자치단체의 장선거나 시·도의회의원선거에 참여하지 아니한 때(같은조 제1항 제1호), ②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여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때(같은조 제1항 제2호)가 그 중의 하나이다. 결국 17대 국회의원 선거결과에 따라서 현재의 다수정당들이 모두 소멸할 가능성도 언제든지 상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당이 영구불변하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예의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당론으로 정하면 모든 국회의원들이 거기에 따라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굳이 정당에 대한 투표 이외에 지역구 국회의원을 따로 뽑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당선거를 통해서 득표율에 따라 의원수를 배정한 다음 정당 내에서 국회의원을 지명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당론이라는 것은 각 정당의 의견을 표명할 뿐이고 거기에 구속력이 주어지지는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개별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주민, 또는 대다수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지를 의사결정을 통해서 담아내야 한다.

결국 원내대표들의 발언은 각 정당의 의사를 반영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불문하더라도 17대 국회의원들이 모두 18대에도 원내에 진출하든지, 지금의 정당이 18대에도 그대로 영속하든지, 당론은 절대구속력을 갖든지 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므로 이를 전제로 한 위 발언은 국민들에 대하여는 매우 오만불손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 '개헌 발의 유보' 발상은 진정성 없다

청와대(대통령)도 "한나라당이 청와대의 요구에 부응해 당론추인절차를 밟아줬고, 그속에 4년 연임제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며 개헌안 발의를 유보하기로 했다.

이 또한 얼마나 무지하고 무책임한 발언인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통령의 개헌발의가 차기 국회의 개헌에 대한 당론이나 각 정당들의 대국민 약속에 따라 달라질 문제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개헌 발의는 개헌의 필요성이 있는가에 달려 있고, 개헌 필요성은 그 나라의 정치제도적인 상황이나 국민들의 헌법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개헌발의권을 갖는 대통령이나 국회(국회재적의원 과반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다음 이를 발의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 이후 국회의 의결(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를 거쳐서 개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개헌발의권을 다른 정치세력들의 의견과 결부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대통령이 어떠한 정치적 의도에서 개헌 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또한 지금까지 대통령의 개헌 발의 문제가 자신이 지난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것에 대하여 정치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단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국민 다수의 의사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공감하되 다만 그 시기에 대하여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그 의지에 따라서 개헌발의권을 행사하고, 국회는 이에 대하여 본회의를 통하여 의사결정을 하면 된다.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은 각자가 나누어서 분담하여야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경우에는 다음에 실시되는 선거에서 정치적인 책임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정략적으로 개헌 발의 여부가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책임 떠넘기는 개헌 논의, 국민은 없다

▲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각 당이 당론으로 임기단축 등을 포함해 개헌을 '대국민 공약'한다면 개헌안 발의를 차기 정부로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현재의 개헌논의를 살펴보면 대통령과 국회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가 한창인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대통령의 개헌 발의 이후 이를 부결했을 때 자신들이 입게 될 정치적인 상처를 생각하면서 개헌 발의를 미리서 막으려는 것이고, 대통령은 개헌 발의 공약을 했으되 현재의 국회 상태로는 그 통과가 쉽지 않으리라 전망되므로 자신이 입게 될 정치적인 타격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 국민들을 슬프게 하는 것은 개헌 발의와 관련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의 행동이 자신들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의제기관이라는 점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국민전체의 대표로써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고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대의제 기관이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의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국민들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만을 고려하여 의사를 결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으로는 항상 국민들을 앞에 내세우면서 정치게임에 몰입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철퇴를 가하여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태그:#국회의원, #개헌, #노무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