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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학교 학생식당에는 유난히 노인들이 많다. 점심시간이 되면 식사를 하거나 매점에서 차를 마시는 노인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식당에는 2~3명 정도의 노인들이 어울려 식사를 하고 있고 매점 한편에는 8~9명의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차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학생들만 바글댈 것 같은 대학 학생식당에 이렇게 노인들이 많은 이유는? 이 분들은 '세공회'의 회원들이었다.

'세공회'? 선뜻 알아차리기 힘들다. '세공회'는 바로 세종대의 '세'자와 어린이대공원의 '공'자를 따서 만든 모임의 약자다. 쉽게 말하면 '세종대에서 식사하고 근처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쉬는' 모임이다. 총 인원 11명인데 취재한 날은 8명이 나오셨다.

세공회='세'종대 식사, 어린이대'공'원 산책

▲ 식권을 사기 위해 줄 서고 계신 '세공회' 할아버님들
ⓒ 이병기
"다들 각자 집 근처 공원에서 운동 다니고 했던 사람들이야. 그러다 입소문을 통해 어린이대공원이 쉬기 좋고, 또 바로 앞 세종대 식당이 식사값도 싸고 깨끗하다고 해서 모이게 된 거야. 처음에는 자주 만나는 12명으로 시작했는데, 1명은 하늘나라로 갔어."

'세공회'를 만들게 된 이유를 묻자 한 할어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막내 할아버지가 82세, 가장 나이가 많으신 큰형 할아버지는 87세다. '세공회' 활동 기간은 적게는 4년에서 길게는 5~6년까지 짧지 않았다. 거주하는 곳들도 관악구 보라매공원 근처에서 노원구 상계동까지 다양했다.

"어린이대공원 놀러왔다가 밥 먹으러 오지. 거기(어린이대공원)는 비싸거든. 여긴 우리가 감당할 능력도 되고"라고 한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다른 분은 "종류가 많고 저렴해, 무엇보다도 깨끗해서 좋지"라고 하셨다.

이 분들은 주말을 제외한 5일을 모두 학교에 나와 식사를 하고 함께 차를 마신다. 잠시 후 소화가 되면 길 건너에 위치한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꽃구경도 하고 동물들도 본다.

노인들에게 슬슬 걸으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 만한 운동이 없다.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80세 이상 노인들이 '세공회'를 만들어 세종대를 찾는 이유다.

이 모임은 사실 '대공원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공원에서 식사와 산책, 휴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식사 장소를 세종대로 택한 것은, 물론 식사 가격때문이다.

어린이대공원에는 팔각당 식당과 교양관 식당에서 주로 식사를 판매하고 있다. 육개장 5500원이 가장 저렴하고 돈가스·비빔밥 등 대부분의 식사가 6000원 정도다. 노인들에게는 비싼 가격이다.

"대공원 밥값은 우리한테 너무 비싸"

▲ 20년째 세종대 학생식당을 찾으시는 안후직 할아버지
ⓒ 이병기
세종대 학생식당(우정당)의 경우는 백반·찌개·볶음밥·양식 등 총 5개의 메뉴가 1800~2500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96세인 안후직 할아버지(응암동 거주)는 세종대학교 '학생식당과 87학번'이다.

"이 학교 식당 처음 생기면서부터 왔을 거야. 한 20년 정도 됐나?" 무려 20년 동안 일요일을 제외하고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학생식당에서 식사를 하신 안후직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는 '옵저버' 자격으로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최고령자다.

이가 한 개밖에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는 쌀과 오곡(백반) 메뉴를 드시고 계셨다. 학생들이 즐겨먹는 식단은 아니지만 오물오물 열심히 드시는 모습을 보니 새삼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세종대까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나오신다.

"저 양반은 여기(학교 측)에 말해서 무료로 드실 수 있게 해야 해. 저 나이에도 20년이 넘게 매일 와서 점심을 드셨는데 그 정도는 해 줘야지"라고 옆에 계시던 조영수(84) 할아버지가 말했다.

올해로 86세가 되시는 황학 할아버지. 황 할아버지는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용인에서 오신다. 15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들 집에서 살고 계신 할아버지는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매일 캠퍼스를 찾는다고 했다.

이곳에 오면 동향 사람인 평안남도 출신의 두 분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친구들 만나서 고향 얘기하면 재밌다"고 말하시는 황 할아버지는 소시지 반찬도 잘 드신다고 한다.

세검정 근처에 사시는 안대식(80) 할아버지 역시 평안도가 고향이시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를 매일같이 나오신다.

"우리 같은 노인들이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누구 하나 싫은 소리하는 사람이 없어. 사람들(생활협동조합)도 친절하게 잘 대해주고."

학생식당 하루에 100명 이상 노인들 식사

▲ 학생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 '세공회'멤버들
ⓒ 이병기
세종대 학생식당을 찾는 노인들의 수는 100명을 넘는다. 식권을 판매하는 직원은 "(노인들이) 하루에 약 100명이상 온다. 주로 양식 종류 많이 드시고 찌개도 잘 나가는 편"이라며 " 몇 년째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인 12시에서 1시 사이에는 노인분들이 알아서 피해주셔요. 물론 바쁜 시간에 오래 앉아계실 때는 가끔 싫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노인분들인데. 이해하고 친절하게 대해드려야지."

세종대 학생인 민보규(27 국문과 4학년)씨는 "학교가 지역 주민을 위해 개방하는 것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병기 시민기자는 세종대에 재학중이며 <오마이뉴스>대학생 시민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대학, #식당,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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