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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에 억류됐던 영국 병사들 중 홍일점인 페이 터니가 귀환을 앞두고 히잡을 쓴채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을 만나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란과의 인질협상에서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영국 정부가 또 다시 세계에 창피를 당하고 있다. 이란에서 돌아온 영국 군인들이 자신들의 경험담을 언론에 팔고 돈을 받는 등 돈벌이에 혈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질사건의 유일한 홍일점인 페이 터니(26)는 10만 파운드를 받는 등 15명의 영국 군인들이 무려 25만 파운드(약 4억6천만원)를 받아 갑자기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페르시아만에서 체포된 영국군

이번 인질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달 23일이다. 이라크와 이란의 국경지대인 페르시아만의 샤트 알 아랍 수로에서 영국 해군 호위함 콘월호 소속 해병대원이 인도 상선에 올라 검문을 벌이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이란 해안경비대는 임무를 수행 중이던 영국 해군이 자국의 영토를 침범했다고 규정, 함정들로 에워싸 바로 영국군을 체포했다.

이때부터 영국과 이란은 서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며 외교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란 모타키 외무장관은 "영국 해군들이 이란 영해를 불법적으로 침범했다"며 체포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당시 영국군의 위치는 이란과 이라크의 경계에서 이라크 쪽으로 1.7해리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다"고 맞섰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이란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 되었다"며 심각한 상황을 묵과하지 않겠다며 경고했다.

부글부글 영국 VS 느긋한 이란

양측의 공방은 계속되었지만 느긋한 이란 정부는 좀처럼 이들을 풀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유엔의 제재 등 핵 문제로 불편한 이란과 영국,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갈등은 고조되어 갔다. 서방국가들은 이란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핵 문제에 대한 '딜'을 하려고 한다며 강력한 제재 정책으로 쓴 맛을 봐야 한다고 강변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지난 28일 이란과의 무역관계를 금지할 수도 있다며 제재안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부글부글 끓는 영국과 미국 정부를 비웃듯이 슬슬 심리전을 펴나갔다. 이란 국영 TV는 사건 당사자인 영국 해병대들과 한 인터뷰를 방영하기 시작한 것. 영국 해병대 가운데 유일한 홍일점인 페이 터너(26)가 이란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분명히 이란의 영해를 침범했었다"고 실수를 인정한 장면을 계속 보도했다.

그녀는 한 걸음 더나아가 이 곳에서 음식을 충분히 잘 먹고 있다며 이란 정부의 친절함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란 TV는 이와 함께 영국 병사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편안히 즐기는 모습을 계속 세계에 보도했다.

▲ 풀려나기 전 이란 정부가 준 선물 꾸러미를 챙기고 있는 영국 군인들.
ⓒ BBC 홈페이지

치닫는 갈등... 선심 쓰는 이란 대통령

이란과의 외교 단절도 불사하겠다며 미국과의 공조 속에 유엔을 통한 대 이란 제재를 강변하던 영국 정부로서는 심리전이 곤혹스러웠다. 강경 대책으로 일변하던 영국 정부는 양측 정부간 물밑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로 점차 가닥을 잡아갔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빠지는 영국 국내 여론이 부담스러운 토니 블레어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빠른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던 것.

물밑접촉의 결실이었을까. 영국군이 체포된 지 13일이 지나 이란 정부는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이들을 석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이 순간에도 영국 정부를 다시 한번 비웃게 만들었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지난 4일 영국군의 석방발표에 직전에 앞서 이들을 나포한 이란 사령관의 가슴에 직접 무공훈장을 달아주고 그를 껴앉으면서 노고를 치하했다. 그리고는 바로 기자회견을 갖고, "영국 해군을 사법처리할 수도 있지만 모두 용서한다"며 "다가오는 부활절(Easter)을 위해 영국 국민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석방을 전격 발표했다. 그는 "영국정부가 나쁘게 행동을 해서 시간이 좀 걸렸다"며 준엄하게 꾸짖기도 했다.

훈장 수여를 통해 영국군 나포의 정당성을 다시 한번 대내외에 밝히는 동시에 이란 대통령으로서 관용을 베풀어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란 정부는 영국 군인들에게 선물꾸러미를 한 가득 주었다. 이란 대통령은 또 영국군인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너무 기쁜 영국군인들은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습니다"라며 이란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란 대통령은 또 한번 너그러운 사람의 이미지로 세계 언론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이란 정부의 완벽한 승리... 자존심 상한 영국 정부

이를 긴급 타전한 영국 언론들은 석방소식에 기뻐하면서도 이란 정부의 완벽한 외교적 승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별 목소리도 내지 못한 영국 정부에게는 날카로운 질타가 날라갔다. 특히 영국 정부가 이란 정부에 '앞으로 영해를 다시 침범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지면서 영국 정부의 자존심은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영국은 어떤 양보도 어떤 협상도 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과연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뤄졌을까. 이라크에서 납치된 이란의 한 외교관이 갑자기 지난 2일 석방돼 이란으로 돌아갔다. 미국은 이번 사건과의 관련을 부인하고 있지만 많은 언론들은 이 사건을 뭔가 물밑거래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영국으로 돌아온 군인들이 다시 한번 영국 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이란에서 한 말과 달리,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있었다며 영해 침범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자신들의 행위가 사실이 아니었다며 다소 강압적인 상황이었음을 역설한 것.

▲ 페이 터니가 <더 선>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조사관들의 거친 행동을 고발하고 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조사관들이 자신의 관을 만들기 위해 신체치수를 쟀다고 말했다.
ⓒ <더 선> 홈페이지

돈 버는 데 혈안된 영국 군인... 또 무너진 자존심

그러나, 영국 사회를 더욱 들끓게 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돌아온 해군들이 신문과 방송 등 언론사들에 자신들의 경험담을 인터뷰 하는 대가로 약 25만 파운드(약 4억6천만원)을 챙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군인 페이 터니는 10만파운드를 받는 등 가장 큰 돈을 벌게 되었다.

영국 국방부 장관이 이를 승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고조되었다. 데스 브라운 국방부 장관은 해군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인터뷰가 쇄도하는 등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이를 승인한 배경을 설명했지만 반발은 오히려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일간 <더 선>과의 인터뷰를 하고 "나는 작은 방에 보내져서 그곳에서 옷을 벗도록 당했다, 그들은 나의 속옷 내의만 빼고 다 벗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행위에 대해 이라크전에서 자식이나 남편 등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자식의 전사를 가지고 단돈 한 푼도 벌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전사한 자식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론과 정치권도 들끓었다. 보수당의 라이엄 폭스 의원은 "우리 군인의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그들의 위엄"이라며 "해군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파는 것은 위엄없고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갈팡질팡 국방부 장관... 영국, 세계적 창피

극에 달하는 반발에 당황한 영국 국방부는 결국 인터뷰 허용 방침을 급히 철회했다. 데스 브라운 국방부 장관은 지금까지 인터뷰 한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더 이상 군인들이 언론과 인터뷰 한 대가로 돈을 받는 일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부랴부랴 발표했다.

이란과의 협상에서 '굴욕 외교'라는 모욕을 들어야 했던 영국정부. 자신의 경험담을 가지고 돈 벌이에 정신없던 영국 군인. 이를 승인했다가 뒤늦게 허둥지둥 이를 철회한 영국 국방부 장관. 이번 이란과의 인질 사건에서 영국은 번번히 세계적으로 창피를 당했다.

태그:#영국, #포로, #인질,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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