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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두 건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표결에 붙여졌으나, 모두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해 각각 부결처리됐다. 자신이 주도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부결되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본회의장에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유시민 복지부장관이 국민연금 개혁안의 부결을 책임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조중동은 물론이거니와 대다수 언론에서는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는 '기초노령연금법안'만 통과시키고 손해가 될 '국민연금개혁안'은 부결시켰다"며 정치권의 이기심을 나무란다. 유시민 장관은 "지금 연금 개혁을 못하면 결국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며 장관직을 버려서라도 성사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 땅까지 나와 우리나라 사회복지를 위해 무언가 하겠다며 공부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렇게 권력도 초개같이 버리면서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복지부 장관의 모습이 자랑스러울 법만도 하다. 그러나 유 장관이 정부의 현 국민연금 개혁안이 무슨 구국의 결단이라도 되는 양 비장해질 때마다 민망함만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령화 한국사회, 연금 줄이면 미래세대 부담 사라지나

유시민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지금 연금 개혁을 안 하면 현재 발언권이 없는 미래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미래세대가 현 연금제도를 위해 소득의 30%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금 개혁안을 반대하는 것을 자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파렴치한 행위쯤으로 몰아붙인다.

그럼 지금 미래 연금을 깎는 연금개혁안을 강행하면 그 미래세대 부담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는 것인가. 착각은 그 정도에서 그만하자. 미래세대 부담은 국민연금 때문에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때문에 증가하는 것이다.

즉, 연금을 덜 받는 개혁을 한다면 당장 국민연금에 대한 부담액은 감소할지 모르지만 그 감소분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형태로 바뀌어 개개인에게 전가될 뿐이다.

사회보험은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담해주는 체계다. 사회보험체계인 국민연금에서 그 부담을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결국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부모를 끝까지 부양하려고 하는 착한 자손들이나 자식에게 부담되기 싫어 가출하거나 거리를 전전해야하는 비참한 노인들, 즉 힘없는 서민들이 되는 것이다.

연금 보험을 더 내는 개혁은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까? 연금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호주·뉴질랜드 등의 정책자문을 하고 있는 런던정경대 니콜라스 바(Nicholas Barr) 교수는 이 같은 생각이 착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즉, 현 노동인구가 향후 노후에 소비할 상품과 서비스를 땅속에 파묻는 것이 아닌 이상, 얼마를 적립 하든 간에 어차피 미래 노령인구가 소비해야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야할 미래 노동인구의 사회 전체적인 부담이 감소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민주정부라면 연금개혁의 초점은 고령화로 인해 급증하는 사회적 부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분담할 것인가에 맞추는 것이 지당하다. 적어도 당장 연금 수급액이나 줄여 눈앞에 증가하는 재정 압박요인만 좀 덜어보려는, 전형적인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개혁을 가지고 미래를 위한 구국의 결단인양 선전하는 민망함은 연출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 서울시 신천동에 위치한 국민연금관리공단 본부 입구에 '국민복지의 요람'이라는 머릿돌이 세워져있다.
ⓒ 남소연
한달에 30만원... 연금은 지금도 부족하다

솔직히 말하면, 현 연금제도도 국민의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40년 가입 기준으로 소득의 60%를 연금으로 받게 되어있지만 실제적으로 평균 가입기간이 20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래에 현 세대가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대략 평균적으로 월 30만원대 수준이다. 적지 않은 도움이야 되겠지만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근본 취지에는 여전히 무색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 정도도 많으니 덜 받으라는 것이다. 그럼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소속 국가들의 공공연금 지출 규모는 2000년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7% 수준이다. 정부의 추계로도 우리나라 공공연금 부담규모가 현 OECD 평균 수준에 이르는 시점은 현 제도 아래서도 2050년이나 돼서야 이다.

즉, 이대로 가면 하루에 몇 백억의 잠재부채가 쌓인다는 둥 2047년에 가면 연금재정이 고갈된다는 둥 난리지만, 기실 이는 국민연금 적립 재정의 수지에만 한정해서 봤을 때 얘기일 뿐이다. 전체적인 공공연금 지출 수준은 40년이 더 지난 그때 가서도 현재의 주요 선진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이런 공공 연금 지출 수준을 가지고 유시민 장관과 정부, 언론 등은 무슨 재난 상황이나 발생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나 언론에서는 유럽 등지에서 현재 연금으로 인한 사회문제와 갈등이 대단히 심각한 듯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상 현지에서 느끼는 이들 국가들의 논의의 초점은 고령화로 늘어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가에 대한 것이지 당장 연금이나 줄여서 눈앞의 정부 부담만 줄여보자는 발상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연금에 대한 기본 접근 방식이 다른 것이다.

독재정부는 재정 만들려고, 민주정부는 재정 줄이려고

연금에 대한 정부의 이같은 편협한 사고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처음 논의되었던 73년도에 연금 제도를 처음 논의했던 근본 이유는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이 아니라 중화학 공업으로 전환에 필요한 내자자본을 유치하기 위함이었다.

(일부에서는 이 때문에 연금이 기형적으로 출발했다고 하지만, 현 연금제도가 성립된 것은 이때가 아니라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인구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80년대 말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희생의 결과 탄생한 정부의 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직을 걸고 추진하는 연금 개혁도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일단 큰 재정 부담 요소를 줄여놓고 보자는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 근본에 깔려있다.

개발독재 정부는 개발재정을 만들기 위해서, 민주화됐다는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결국 '정부 재정'의 관점에서만 연금을 바라볼 뿐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근본 취지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연금으로 인한 미래세대 부담이 정말 걱정이라면 연금 지급 규모를 줄여서 그 부담을 개개인에게 떠넘기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개혁을 해서는 안 된다. 대안적인 노후소득보장 재원 마련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

연금 보험료로 집중된 서민의 부담을 분산시키고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다양한 재원 마련은 외면한 채, "무조건 미래세대가 소득의 30%를 내야한다"면서 국민을 협박하는 것이 민주적 정부의 도리가 아닌 것이다.

최소한, '구국의 결단'인 양 치장하지는 말라

▲ 2006년 2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화장실에서 한 할아버지가 종이박스를 깔고 잠들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미 참여연대·YMCA·여성단체연합·민주노총 등의 단체들이 정부의 '저출산 고령화 대책 연석회의' 등을 통해서 ▲조세감면제도 폐지 혹은 축소(2005년 현재 조세감면규모는 연간 18조) ▲간이과세 폐지 ▲상장주식양도차익 과세, 금융소득종합과세 과세기준 하향 조정 등과 같은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등의 다양한 재원 마련 대책을 제안했다. 그러나 정부와 유시민 장관은 철저히 무시해왔다.

또한 국민연금 급여액을 기존 소득의 40%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노인 80%에게 기존 소득 10%에 해당하는 연금을 지급해 재정 부담을 분산시키자는 수정 제안도 제시됐다. 이는 ▲국민연금 재정의 안정화를 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국민의 연금 부담률 증가를 최소화하고 ▲급여 수준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고 ▲현 제도상에서는 노후보장을 받을 수 없는 많은 국민도 구제할 수 있다.

이 기초노령연금안은 이미 노인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상쇄되어 정부의 부담은 그렇게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그래도 정부는 전체 노인 60%에게 기존 소득 5% 수준에 불과한 기초노령연금을 명목상 집어넣은 채 정부 재정 부담만 줄이는 기존 개혁안을 고집하였다.

결국 정부는 복지는 말 뿐이고 기본적으로 노령화 문제를 사회적으로 함께 해결하기 위한 뜻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국민의 안정된 노후생활만 희생시키면서 정부 재정 부담이나 경감시키기 위한 연금법 개정안을 구국의 결단인 양 치장하는 그런 민망한 장면은 이제 그만 봤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김보영 기자는 영국 요크대학에서 사회복지 박사 학위를 밟고 있습니다.


태그:#국민연금, #유시민, #보건복지,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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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지역및복지행정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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