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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연

저희 동네에는 매일 아침 8시 20분이면 트럭에 채소를 가득 실은 채소장수가 옵니다. 도매시장에서 갓 떼어온 싱싱한 채소, 과일을 식당에 납품하기도 하고 나머지는 동네 주민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하는 분이지요.

대형마트에서 3개에 1740원 하는 오이를 4개에 1000원에 판매하고 '펄펄 살아있는' 대파 한 단도 1000원, 장바구니만큼 커다란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감자를 2천원에 판매합니다. 게다가 덤은 또 얼마나 인심좋게 많이 챙겨주는지, 오전 8시 40분경 딸아이 유치원 버스를 태워주고 돌아서면 어느새 몇몇 품목이 동날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이 아저씨 덕분에(?) 매일 아침 주머니에 천원짜리 몇 장을 챙겨나가는 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모처럼 만난 싱싱한 제철 채소를 헐값에 살 기회를 놓치면 억울하니까요.

그래서 5일 아침 건져온 것이 쑥 한 봉지와 마였습니다. 쑥은 비닐봉지 가득 눌러담아 500원, 소화에 좋고 체력보강에도 좋은 대표적 알칼리식품인 마는 어른 팔뚝만 한 것 두 개가 3천원이었으니 이것도 참 저렴한 가격이죠?

나른하고 입맛없는 봄날 저녁, 향긋한 쑥향으로 미각을 돋우고 비타민을 보충하면서 단백질이 풍부한 쇠고기로 영양보충을 한다면 마침 좋을 것 같아 애탕국을 끓이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끓여주신 그 맛은 왜 안 날까

애탕국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봄이면 늘 즐겨 잡수셨던 국이기도 합니다. 쑥과 쇠고기로 완자를 만들어 맑은 국물에 띄워 낸 봄맞이 대표격 국물요리라 할 수 있죠. 어머니의 애탕국은 쇠고기로 맑은장국을 내어 끓인 것이라 고소한 국물맛이 더했고, 제 것은 멸치다시마 육수를 내어 끓인 것이라 고소한 맛보다는 개운하고 시원한 쪽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어째 음식 맛이 옛날 같지 않다"란 것입니다. "참외도 그 옛날 우물에 담가먹었던 개구리참외가 더 달고 맛있었고, 동치미 국수도 전쟁 통에 말아먹었던 그것이 더 찡하고 시원했다", "요즘 과일이며 채소는 어쩐지 맛이 없다" 등의 말씀 말입니다.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배고프고 음식이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그 때의 그 맛을 못 잊어 기분상 그냥 그러신 거다"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날 끓인 애탕국을 먹으면서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도 어머니가 하셨던 똑같은 말씀이 나오더라고요.

"어렸을 때 엄마가 끓여주셨던 그 맛이 아니네, 요즘 쑥은 향이 진하지 않아서 그런지…."

쑥도 쇠고기도 다른 양념도, 다 엄마가 쓰신 것과 다름없이 똑같이 사용했는데 도무지 어려서 먹었던 그 향긋한 애탕국 향과 맛이 안 나니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식재료들이 예전과 달리 정말 맛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워낙 자극적인 양념과 조미료 등에 익숙해진 제 입맛이 '참맛'을 못 알아보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답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쑥 500원어치, 국 끓이고도 남았네... 버무릴까? 부칠까?

어찌 되었든 어려서 맛보았던 그 감동적인 맛과 향은 아니었지만 엷게나마 쑥 향기가 나는 봄국을 차려 놓으니 식탁에도 어느샌가 봄바람이 깃든 것 같았고, 딸아이가 "파란 만두(?)"라고 하며 열심히 먹는 모습에 보람도 느낄 수 있었어요.

오늘은 어제 만들고 남은 나머지 쑥을 가지고 또 다른 쑥 요리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쑥버무리를 만들까? 아니면 쑥부침개? 혹은 쑥 오징어무침을 해볼까?' 고민 중입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엇을 만들든, 오늘도 요리접시에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리며 한참을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찾아내려 애쓰는 것이 과연 '쑥향'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추억의 향기'인지는 잘 모르지만 말입니다.

ⓒ 이효연
[재료(4인 기준)]- (약간 싱겁게 간을 본 기준입니다)

쑥 : 꼭꼭 눌러 2 국대접
고기 양념 : 다진 쇠고기 반 근, 다진 마늘 1/2큰술, 다진 파 1/2큰술, 참기름 1큰술, 전분 1큰술, 달걀 1개, 후추 약간, 맛술이나 청주 (혹은 소주) 1/2큰술, 진간장 2큰술
완자 밀가루옷 : 밀가루 적당량, 달걀 1개
멸치장국 : 국멸치 7∼8마리, 다시마(5×5㎝ 2장) ,물 6∼7컵, 다진 마늘 1/2큰술, 국간장 2큰술, 액젓이나 참치액 약간, 소금, 후추 약간


ⓒ 이효연
1. 커다란 볼에 깨끗하게 손질한 후 잘게 다진 쑥과 쇠고기, 고기 양념 재료를 한 데 넣고 반죽합니다.

ⓒ 이효연
2. 끈기가 생겨 고기반죽이 한 덩어리가 되도록 치대며 반죽합니다.

ⓒ 이효연
3. 고기 반죽을 하기 전 커다란 냄비에 멸치장국 재료를 넣고 팔팔 끓여 육수를 만들어두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 이효연
4. 한 덩어리로 만든 고기 반죽을 숟가락으로 조금씩 덜어 완자를 빚은 후 가볍게 밀가루 옷을 입힙니다. 완자는 직경 1.5∼2cm 정도면 알맞습니다.

ⓒ 이효연
5. 그릇에 달걀을 매끈하게 풀고 밀가루 옷을 입힌 고기완자를 하나씩 넣어 달걀 물을 입혀줍니다.

ⓒ 이효연
6. 팔팔 끓는 멸치 장국에 달걀 물 입힌 고기완자를 넣어 익힙니다. 바닥에 가라앉았던 고기 완자가 하나씩 떠오르면 다 익은 것입니다.

완자가 다 익은 후 다진 마늘과 소금, 간장, 후추 등으로 간을 맞추고 쑥잎 등으로 고명을 얹어 상에 냅니다.

ⓒ 이효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효연의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 http://blog.empas.com/happym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효연, #서울, #별미, #쑥, #애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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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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