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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좋은 기회다. 한미FTA는 타결되지만 체결(대통령이 사인을 하는) 전 까지는 3개월의 시간이 있다. 전 국민의 50%가 이제 반대하고 있다. 반대의 수치가 높아질 때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막판으로 치닫고 있던 지난 3월 28일, 진주를 방문한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는 체결되기 전에 국정조사를 해서 협상 내용을 밝혀야 하고, 모든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미FTA가 한국 경제와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따라야 하며, 6월 이전 국민투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도 높게 말했다.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
ⓒ 진주신문
# '한미FTA 저격수' 진주서 입 열어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가르쳤습니다. 아니 가르치긴 잘 했는데 대통령이 잘 배우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경상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첫 마디였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교사'였다. 정확히 그는 2005년 5월 청와대를 나왔다. 청와대를 나와 1년여 동안 전국 순회 강연 200여 차례, 그에게는 전혀 다른 수식어가 붙었다.

언론은 그를 '한미FTA 저격수'라 불렀고, 국민들은 '한미FTA 전도사'라 불렀으며, 정부와 한미FTA 관계자들은 그를 '공공의 적' 혹은 '한미FTA 괴담 전파자'라 했다. 그를 지칭하는 여러 수식어처럼 정태인 전 비서관은 한미FTA를 둘러싼 논쟁의 최전방에서 협상 테이블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 한미FTA의 목적은 '미국기업 이익'

"사람들은 아직 한미FTA를 모른다. 나도 몰랐었고 모르는 게 당연하다. 정부는 아직 한번도 한미FTA 실체를 얘기하지 않았고, 진행되는 협상 내용을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한미FTA의 위기와 심각성 속에서도 정 전 비서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유쾌했다. 그의 논리는 한미FTA를 반대하면서도 실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 그거였구나'라고 납득할 수 있게 했고, 결사적으로 반대하게끔 했다.

정 전 비서관은 "한미FTA 목적은 미국 의회에서 말하기를 '우리의 목표는 관세 인하보다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방법으로 정부가 수입 상품을 규제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미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까지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나라의 FTA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경제통합이다. 과거엔 국가가 통제했지만 초국적기업이 통제한다. 상대 국가의 법과 이익을 무시하며 국가의 공공성을 파괴한다. 한 마디로 상대 국가의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미국형 FTA'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 정부는 미국식 시장경제를 가장 좋은 체제로 보고 있어, 당장 손해가 나더라도 미국식 시스템이 중·장기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이 쌀 개방까지 강도 높게 밀어붙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미FTA는 '강력하고 포괄적'

정 전 비서관은 한미FTA는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이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강력하다'란 높은 수준 즉, 개방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는 것이고, '포괄적'이란 거의 빠진 것 없는 넓은 범위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시장을 연다는 것은 관세 인하와 비관세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농업이나 서비스 분야뿐만 아니라 제조업에서 과연 이익을 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미국은 이미 시장이 거의 개방된 상태다. 우리가 강세인 반도체 등은 이미 무관세다. 그렇다면 결국 관세부분에서 우리가 이득 볼 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산업전문가나 업계에서 다 아는 것이다."

그는 한미 FTA가 가져올 경제적 효과에 대해 간단한 예로 현대자동차 소나타를 들었다. 미국이 수입 완성자동차에 매기는 관세는 2.5%다. 미국은 10년 내 철폐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주장대로 간다면, 2000만원짜리 소나타의 혜택은 1년에 값이 5만원 떨어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왜냐면 관세는 매년 0.25%씩만 떨어지게 되니까.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보다 시장이 17배 크면 뭐하나. 관세 인하로 차 값이 떨어진다고 한들, 소나타 값이 5만원 떨어졌다고 당신은 타고 다니던 일본차를 소나타로 바꾸겠는가."

그는 이보다도 더 큰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공서비스 민영화 계획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기, 수도, 철도와 같은 네트워크 산업과 의료 부문이 민영화되는 것을 들어, 정부는 경쟁기업들이 많아지니 상품이 많아지고 선택의 폭이 넓어질 거라 말하지만 이같은 '경쟁적 자유화'는 한국 기업이 도저히 대응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실제로 볼리비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수도 등 공공서비스 산업을 미국기업에 팔아넘긴 사례를 들었다.

그는 투자자국가제소권에 대해서도 한미FTA 조항적 가장 독소조항이라고 말했다.

"이 조항 용어중 '과학적'이라는 말은 정말 독성이다. 소고기에 뼛조각이 나온다고 광우병이라고 규명할 수 있겠는가. 국내 미국기업이 있는 곳에 투기지역 설정을 해서 미국기업이 손해를 보면, 보상을 해주든가 아니면 투기지역으로 아예 설정을 못하든가 둘 중 하나이다."

# "아직은 가 조인상태, 반대를 분명히 해라"

그는 미국과 한국, '힘의 비대칭성'을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캐스팅 보드를 지키지 못했다. 한미FTA는 우리가 엄청나게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것이다. 아니 벌건 대낮에 두 눈 뜨고 강도를 맞은 격이다.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정치적으로는 주권을 침탈당하고, 외교안보적으로는 남북관계가 흔들리고 중국으로부터 위협받게 된다. 그렇다면 한미FTA를 반대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 한미FTA라는 개방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아주 완벽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미국은 상대 국가의 국민이 대대적으로 반대하면 명분을 잃고,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못한다."

2시간 20분 동안의 '한미FTA 집중과외'를 마치기 전, 그는 '한미FTA저지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타결되어도 조인(대통령이 협정서에 사인하는 것)된 게 아니다. 체결까지 3개월 시간 있다. 정부는 5월 말까지 협상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국정조사를 실시해 밝히고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 현재 반대는 50%를 넘었다. 30%만 반대해도 사실상 시행되지 않는다."

▲ 강연에 참여한 중고등학생들의 눈은 빛났다. 이들은 강연 도중 청중에게 던져지는 정 전 비서관의 질문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답했고,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는 마지막 시간까지 진지했다.
ⓒ 진주신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진주신문(www.jinju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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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기자, 작가. - 변방의 마을과 사람, 공간 등 지역을 기록하며, 지역자치와 문화주권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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