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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의 달... 나그네의 맘이란 다 같은 것일까?

간밤 야영지의 괴기스러운 보름달이 잊히질 않는다. 오줌 누러 나왔다가 화들짝 놀라다. 구름 낀 사이로 괴기스럽게 밝은 달이 지평선에 걸쳐있다. 함박 보다 큰, 아니 마당의 멍석보다도 큰 달이다.

타향에 나와 있는 나그네의 맘이란 다 같은 것일까? 그래서 천축국을 순례하던 혜초도 같은 심회를 읊었나 보다.

月夜瞻鄕路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淨雲颯颯歸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緘書忝去便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風急不聽廻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구는구나.

我國天岸北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他邦地角西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日南無有鴈 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誰爲向林飛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정수일 교수의 말처럼 혜초가 달 밝은 밤에 바라본(月夜瞻鄕路) 하늘가 북쪽의 내 나라 (我國天岸北)는 정녕 남과 북이 따로 없는 한 나라였을까.

▲ 간밤의 달빛과 추위가 선명한 여운으로 남은 망야 야영의 아침.
ⓒ 오창학
밤사이 추위에 몸이 얼었다. 사막의 열기에 숨 막혀 하던 때가 바로 엊그젠데 아얼진을 넘은 이후 고도 3000m 구간으로 다니게 되면서 상황이 역전이다.

야영할 무렵 해가 지고 나니 낯 사이 서늘함은 지독한 한기로 변했고 바람까지 거세니 체감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엄습하는 추위를 막느라 정신없이 삽질을 해 텐트 가장자리에 모래를 덮었지만 바람을 막고, 막지 못하고의 차원을 떠나 공기가 얼어가는 것 자체는 막을 수가 없다.

산악지대의 추위에 관한 글을 읽고 거위털 충진재 1500g짜리 동계용 침낭을 싣고 왔다. 사막구간에선 별 소용이 없어 공연한 마음이 들더니 이제는 그 진가를 발휘할 터이다. 그걸 교수님께 드렸다. 낮 사이 반소매 하나로 버텨 한기에 노출된 교수님이 무척 힘들어 보이신다. 그리고 교수님의 여름침낭을 내가 챙겨 루프텐트에서 잤던 것인데 옷을 껴입고 잤어도 한기가 무척 심하게 느껴졌다.

'낭'... 또 '꿀물'

▲ 추위를 이기기 위한 아침식단, 또 꿀물 한 잔과 낭 한 조각. 우리의 입은 낭을 씹으면서도 다른 음식만을 이야기한다.
ⓒ 오창학
이 추위를 이기기 위한 아침식단. 또 '꿀물' 한 잔과 '낭' 한 조각이다. 점심은 컵라면으로 준비되어 있으니 아침에 이걸 뜯기도 질리는 일이다.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은 아침텐트에 올망졸망 모여앉아 낭을 베어 물면서도 각자의 입은 다른 음식들을 읊어댄다.

"신성동에 뚝배기 잘하는 집이 있는데 말이지…."
"한국에 돌아가면요…."


각자 먹고 싶은 음식과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한 무더기 뱉어놓고 나니 헛배만 가득하다.

아…,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다. 고교시절 야간자습 할 때마다 한 잔씩 마셨던 자판기 커피는 졸업 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으로 남았다. 대학시절에도 시험 때나 되어야 잠을 쫓기 위해 마시는 각성제로만 함께 했던 뿐이다. 그러다 교편을 잡은 이후 오후 짬의 나른함을 이기는 도구로 삼았다.

게다가 어디선가 읽은 '암 예방을 위한 30가지 생활습관'에 하루 2잔의 커피를 마시라는 구절이 있어 본격적으로 가까이했던 것인데, 누가 알았으랴 그 '커피'라는 것이 원두커피를 칭하는 것이며 내가 즐겨 하는 프림·설탕 그득한 자판기 커피가 아니었음을. 그간 얼마나 많은 지방이 내 혈관을 틀어막았을까. 그런데…, 지금 그 녀석이 보고 싶다.

정착하지 못하는 나그네

▲ 야영을 위해 끊임 없이 텐트를 치지만 어디서도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우린 여행자니까. 급유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출발 준비로 바쁘다.
ⓒ 오창학
"낙타에 짐을 싣고 텐트를 걷었다 펴고 요리를 하는 손놀림이 능숙해진 것은 벌써 오래되었다. 야영을 위해 끊임없이 텐트를 치지만 어디서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것이 바로 탐험대이다." - 부루노 바우만 <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

1989년 유럽인으로서는 처음 타클라마칸을 횡단한 그의 운을 빌자면 "자동차에 짐을 실었다 내리고 물을 끓이는 손놀림이 능숙해진 것은 벌써 오래되었다. 야영을 위해 끊임없이 텐트를 치지만 어디서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여행자들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야영을 하든 숙소를 잡든 매일 백구의 짐칸을 다 헤집고 모든 짐을 다시 쌓아야 한다. 이젠 그 손길이 놀라울 만치 빨라졌지만 정착하지 못하는 내 처지를 뼈저리게 확인한다.

짐 정리를 마치고 예비연료통을 헐어 급유를 하는데 머리가 띵하다. 하긴 텐트를 걷는데도 숨이 가쁘고 머리가 무거운 느낌이 들긴 했다. 바람에 날린 텐트 팩 수납봉지를 잡으려 모래 위로 한 20여 미터를 달린 교수님의 증세는 더 심하다. 모두가 약간의 미식거림과 깔아짐을 느꼈다는데 아마도 고산증세가 아닐까 싶다.

이런 일이 염려스러워 후아토구를 나설 때 식당 주인에게 의료시설을 물으니, "있긴 있되 이 높이(2800∼3000m)에선 고산병이 안 생긴다"며 웃음을 지어 적이 안심하였다. 그런데 약간의 증상이 느껴진다. 고산병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지와의 산소 차이를 여실히 느낀다. 어쩜 사람에 따라 여기 3000m 고도에서도 증상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늘길, 칭하이의 모든 길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 거얼무 가는 비포장길. 칭하이성의 길은 모두 하늘에 맞닿아 있다.
ⓒ 오창학
사막지대를 벗어나 비포장길로 올라선다. 칭하이의 모든 길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하늘로 난 길 같기도 하고, 하늘에 난 길 같기도 하다. 앞길의 끝도 하늘이요, 좌우 벌판의 끝도 하늘이다. 고도 3000이라는 선입견이 아니어도 이곳 하늘의 색감은 무언가 다른 질감을 준다. 분명 쪽빛은 아닌, 과하게 푸르지 않은 완연한 하늘빛. 눈이 아프도록 시신경에 하늘을 담는다.

과거 실크로드의 '하늘길'이란 이름이 허명이 아니다. 고도 3000이면 실제로도 하늘길이요 눈에 보이는 곳도 모두 하늘 사이에 난 길이다. 티베트 아랫자락의 물산은 이곳을 지나 타클라마칸으로 움직이고 다시 파미르를 넘어 서역에 닿았다.

▲ 외부공기차단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하루종일 비포장길의 먼지를 견뎌야 했다.
ⓒ 오창학
백구의 외부공기차단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비포장에서 쏟아지는 먼지가 차 내로 유입되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내와 교수님은 손수건으로 나는 마스크로 무장했지만 차 안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미세먼지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기관지가 안 좋으신 교수님은 밭은기침이 잦다. 먼지, 먼지, 먼지…. 종일 차내로 들어오는 먼지에선 사막냄새가 난다. 칭하이성으로 위치만 바뀌었을 뿐 아직은 황량한 사막지대다.

정말 말끔한 비포장길이긴 하나 길에 홈이 많아 바퀴가 떤다. 우린 일명 '빨래판' 도로라 불렀다. 이런 도로는 차라리 속력을 높여 이동하는 게 차체에 전달되는 진동을 줄일 수 있다. 시속 80㎞를 유지했다. 만약 급정거를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작은 돌과 모래 알갱이들로 인해 빙판길을 방불케 할 만큼 미끄러지겠지만, 진동도 줄이고 이동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흙길에서의 고속주행은 지평선이 보일 만큼 시야가 확보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후아토구와 거얼무를 잇는 이 비포장길은 거의 전 구간이 공사 중이어서 곳곳에 막히고 끊긴 곳이 있다. 어떤 땐 내려서는 길도 없이 흙을 모아 황무지에 세운 길이 막힌다. 온 길을 한참이나 되돌아가야 하는 황망한 상황에서 백구가 능력을 발휘한다. 2∼3m의 둔덕을 치고 내려가 사막 길을 달리다가 다시 길이 나오면 언덕을 치고 오른다. 사륜 구동이 아니면, 그것도 하체와 바퀴가 보강된 사륜이 아니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 진정한 난관을 만나다. 어디선가 내린 비로 사막이 범람하고 길을 쓸었다.
ⓒ 오창학
그러나 언덕을 치고 내리거나 푹푹 빠지는 모래 위를 달리는 일은 얼마나 사소한 위기였던가. 그 한적하던 벌판의 길이 막히고 차량들이 정체되어 내려봤더니…. 세상에, 앞의 벌판은 온통 황토물이 넘실거리고 그나마 길 아닌 길마저도 유실되어 끊겼다. 어디선가 비가 내린 모양인데 별도의 하천이 존재하지 않은 사막지대는 온통 물바다가 된 것이다. 이제껏 야영지를 선정할 때 물이 흐른 자국은 피해서 텐트를 친 것도 이런 일에 대비한 것이었는데 이런 풍경이 눈앞에 벌어지니 아찔하다. 사막은 홍수 아니면 가뭄이다.

이젠 어째야 하나? 1안, 물이 빠질 때까지 하루 이틀 여기서 기다려본다. 2안, 하루 동안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더링하 들어가는 길로 우회한다. 3안, 도강하여 관통한다. 이제 겨우 차량 한 대만 남은 '탐험대'이지만, 이젠 달랑 4명뿐인 팀원의 팀장이지만 모든 결정은 내가 내려야 한다. 도강이 결정되면 운전할 이도 나뿐이다.

"대장님이라면 갈 수 있을 겁니다."

철봉씨가 나를 종용한다. 그는 꼬박꼬박 나를 '대장'이라 부른다. 이 시점에서의 '대장'은 모든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는 말 같아 어깨가 더 무겁다. 1안은 출국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불가능한 안이다. 그리고 내일이나 모레에도 변화가 없으면? 2안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 덜컹거리며 먼지 나는 길을 하루 동안 다시 가라니.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 없이 3안이다. 철봉씨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건너겠습니다."

직접 운전석에 앉아 4륜 저단(4L)에 넣고 허물어진 길을 내려섰다. 터진 둑에 차를 세워둔 모든 이들이 우릴 보고 있다. 만약 물살에 밀려 떠내려가거나 하천 안에서 고립되면 저들은 우릴 구해줄까? 물론 구해 주려 할 것이다. 그러나 구해줄 수 있을까? 짐칸에 윈치와 충분한 길이의 예비 와이어가 있지만 조난 시 백구에 장착할 겨를이 있을까? 장착한다 해도 저들에게 견인 고리를 넘길 수 있는 상황이 될까? 같이 있지 못한 2호차가 너무도 간절히 그립다. 그들이 있었다면 덜 무섭고 덜 외로웠을 텐데….

"그냥 침대에서 죽기를 바랐다면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침대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래서 절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중에서

올리비에, 그의 글이 이처럼 생생하게 뇌리에 맴돌다니…. 상념은 조난 이후 생각하기로 한다. 차는 이미 하천 속으로 진입했다. 애초 방향을 잡았던 곳이 생각보다 깊어 약간 튀어나온 사면 지점까지 온 후 다시 숨을 고른다.

흐르는 물살 저편에 있는 바퀴자국은 분명 오늘 중 누가 건넌 흔적이다. 그 차가 무엇이었든 백구보다 우수한 녀석은 아닐 것이다(적어도 오프로드 관통능력에서는). 그리고 범람했다고는 하나 바닥은 사막, 습관적으로 범람했던 땅이라면 바닥은 굳어있을 것이다. 고로 절대로 바퀴가 묻히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자신감이 생겼다. 가속 페달을 밟아 RPM을 높인 후 물살을 가른다. 물의 저항이 제법 묵끈하다. 절대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 붉은 황토물이 튀고 물 가르는 소리가 요란해졌지만 하천 끝점의 바퀴자국만을 응시한 채 내달린다. 물 가르는 소리가 그치고 바퀴엔 질퍽한 진흙 뭉개는 느낌이 가득하더니 어느새 목표에 도달해 있다. 둑방 길에서 환하게 웃는 구경꾼들이 눈에 들어온다. 범람한 하천을 넘어선 것이다. 성공했다.

▲ 도강을 마친 후 숨을 몰아 쉬는 백구.
ⓒ 오창학
도강을 마친 백구가 거친 숨을 몰아쉰다. 잘했다. 참 잘했다. 내 어찌 너를 잊을 수 있으랴. 백구는 숨 쉬는 유기체다. 이제는 엔진과 철판으로 이루어진 무생물이 아니다. 아내는 수억짜리 외제차와도 바꾸지 않겠다 한다. 의외다. 아내는 셈 속이 빠른데 이런 수지맞는 거래를 마다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진담일 수도 있다.

백구도 정해진 수명이 있으니 영원히 함께하진 못 할 테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중도에 다른 주인을 만날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셈 속에 팔아넘기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 또 끊어진 길. 좁은 곳으로 몰려드는 물살이 더 급하다.
ⓒ 오창학
그러나 산 넘어 산, 물 넘어 물이다. 길이 유실된 곳은 지금 지나온 곳만이 아니다. 얼마 가지 않아 제대로 터진 구역이 나타난다. 터진 구간이 20여m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좁은 탓에 물살이 무척 급하다는 것과 둑방 밑으로 경사가 져서 차가 밀리면 그대로 전복될 것이라는 게 부담이다.

그러나 한 번 넘은 길 두 번이라고 못 넘나. 도 아니면 모다. 이번엔 큰 머뭇거림 없이 거칠게 밀어붙인다. 첨버덩, 바퀴를 담그며 힘차게 나가는데 빠른 물살 탓에 차가 밀리는 느낌이다. 다급하게 더 가속하는 마지막 구간의 수심이 깊어 차가 실속 하는 느낌이 왔다.

"읍!"

나도 모르게 나온 신음, 아내는 이 소릴 들었을까. 반의 절망과 반의 비명이 섞였을 때 앞바퀴가 텅 땅에 닿더니 이내 뭍으로 타고 오른다. 그나마 빠른 속도로 건넜기에 바퀴의 접지력이 상실되는 순간에 관성에 의해 땅 위로 앞바퀴를 밀어올린 것이다.

"와아∼"

차 안에 안도의 탄성이 터졌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아까의 위기를 눈치 채지 못한 채 무사한 도강에 환호하는 것 같다. 허 참, 오늘 가슴 많이 오그라든다.

또다시 유실된 길. 이번에 아예 복구작업하는 중장비들이 막아서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곧 길이 열리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것. 마음 같아선 어디든 훌쩍훌쩍 넘어 달릴 것 같은데 내심으로는 다행이다 싶다. 어쩌면 잠깐의 실수가 이곳을 이번 여정의 마지막 장소가 되게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설마하니 이깟 하천의 범람에 사람 목숨이 어쩌겠느냐 싶지만 적어도 차는 한 번의 침수로 운행이 불가능해 질 수 있으니.

복구 작업이 끝나고 이번 구간은 순조롭게 통과했다. 크고 작은 허물어짐이야 있었지만 이후의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지난다. 이런 단조로움이 반갑다. 다시 끝없이 이어지는 길. 여전히 푸른 하늘, 여전히 차 안에 가득 찬 먼지. 이 풍경들이 한없이 평화롭다.

밥 때를 한참 넘겼고 속은 굶주림으로 쓰리지만 어디 한 곳 그늘을 찾을 수 없어 마냥 질주했다. 그러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황무지 속에 차를 넣는다. 혹여 지나는 차가 있어도 먼지 날아오지 않을 곳에 차를 세우고 물을 끓였다. 오늘 점심도 '강사부' 컵라면.

공기는 서늘한데 태양은 타버릴 듯 따가워 50㎝도 되지 않는 백구의 그늘로 모여든다. 쪼그리고 앉아 네 사람이서 손바닥만 한 차 그늘에 앉아 라면을 먹는 모습이라니. 모두가 서로 보고 웃는다. 이 풍경이 너무도 안쓰럽고 정겨워 사진을 찍어두고 싶은데 저 햇살 속으로 몇 걸음 내딛는 게 끔직스러워 마음을 접었다.

거얼무에 닿다

▲ 거얼무에 도착해 목욕하는 백구. 문을 열 때마다 먼지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 오창학
이제 간간이 푸른 나무가 보이고 오아시스 몇 곳을 지난다. 해가 질 무렵 해발 2700m, 인구 24만의 도시 거얼무(格爾木)에 도착했다. 티베트로 가기 위해 꼭 경유 하는 곳이어서인지 비포장길을 달려온 오지치고 꽤 번성한 도시다. 오늘 움직인 거리 434㎞. 그러나 거리계의 수치를 떠나 지금까지의 길 중 가장 고되고 험난한 것처럼 느껴다. 육신의 피로도 피로지만 가슴 졸인 하루였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숙소를 잡고 여장을 푸는데 백구의 안에서 먼지 냄새가 역하다. 잠깐 내렸다 올라타면 다시 훅 끼쳐오는 모래와 먼지 내음. 몸보다 먼저 차를 씻고 싶다. 실내 사방 천지에 모래가 가득하다. 짐칸은 흡사 모래밭이다.

세차장으로 이동했다. 백구가 세차하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 한편이 뭉클하다. 이걸 동지애라 해야 하나 가족애라 해야 하나. 교대로 운전한 사람의 고생이야 그렇다손 쳐도 저 녀석은 그 많은 짐과 사람을 태우고 길 같잖은 길을 열 몇 시간씩 연일 달렸다.

백구의 엔진소리가 심상찮다. 고장의 징후라기보다는 과로로 인한 노후 증상 같은 거친 음. 공회전 시 녀석의 시동음은 '투루루루… 글글글'이었다. 헌데 엊그제 아얼진 이후로 공회전이나 저 RPM 때에 '떼르르 딸딸딸딸'이나 '땅땅땅땅…' 소리가 난다. 대개 6년 된 차의 엔진에서 내는 소리를 이제 갓 돌 지난 녀석이 내고 있다.

휠 균형도 틀어졌다. 운전대와 앞바퀴의 방향이 맞지 않는다. 이것이 어디 백구의 탓이겠는가. 처박혔다 솟구친 것이 몇만 번이며 길 아닌 길에서 흔들린 거리가 또 얼마인가. 이 백구는 우리 부부에게 무슨 의미일까? 그냥 차? 꿈? 단정하기 어렵지만 단순한 기계 이상의 그 무엇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 거얼무에서의 저녁 만찬. 타클라마칸 끝자락 이후 제대로 된 식탁에서 삶은 이렇게 살만한 것이라 생각했다.
ⓒ 오창학
저녁 만찬. 아내가 좋아하는 화꿔 집을 물색해 자리를 잡았다. 제대로 된 식단을 앞에 두고 지난 2박 3일의 낭과 컵라면을 떠올렸다. 이러다 눈물이라도 흐를라. 모두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삶이란 이렇게 살만한 것인 것을.

망야에서 거얼무까지의 비포장 하늘길

▲ 이동경로

▲ 망야 인근 야영지에서 거얼무까지 434Km. 거얼무 인접지역 전까지 전부 비포장 구간이며 도로공사로 인해 중간 중간 끊기고 사정이 열악하다. 약간의 비에도 범람하는 곳이 많아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 고산병(高山病, 고소병(高所病) altitude sickness). 기압인 해수면(海水面)이나 고도가 낮은 곳에서 2500∼3000m 이상의 높은 곳으로 옮겨갔을 때 나타나는 급성 반응.

대부분의 사람은 높은 곳의 낮은 대기압에 적응하면서 점차 회복되지만, 어떤 사람은 심각한 반응을 나타내 낮은 곳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게 되기도 한다. 높은 고도에서 유용한 산소가 줄어들면 숨이 차다든지, 심장이 빨리 뛰게 되는 등의 생리적 적응이 과다하게 나타난다.

고산병의 다른 증상은 현기증, 두통, 다리와 발의 종창(腫脹:신체 일부분의 일시적인 비정상적 증대 또는 체적의 증가), 구토, 쇠약 등이다. 이러한 증상은 보통 고소에 도착한 지 6시간에서 4일 안에 일어나고 2∼5일 동안 지속하기도 한다.

고산병의 보다 심각한 형태인 폐수종(肺水腫 pulmonary edema)은 고소에 처음 접한 사람에게도 가끔 나타나지만, 고도에 이미 적응했던 사람이 해수면 높이의 환경에서 며칠간을 보낸 뒤 고소로 되돌아온 경우에 훨씬 자주 나타난다. 폐수종에 걸리면, 폐에 액체가 고여 환자가 산소를 충분히 흡수할 수 없게 되는데, 산소를 공급해주거나 낮은 곳으로 옮겨주면 증상이 곧 사라진다.

1937년까지는 고산병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이전에는 오르기 힘들었던 안데스·히말라야·로키산맥의 높은 산에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시선을 끌게 되었다. 고산병의 원인은 저기압과 산소부족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호르몬 분비의 변화가 몇 가지 증상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있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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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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