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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4년 5월 8일 미국과 호주의 협상 대표들이 미국-호주 FTA협정 조인식이 끝난뒤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한미FTA 협상 타결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한국의 모습이 지난 2004년 호주-미국 FTA(AUSFTA) 협상타결 직전 호주의 모습과 여러 부분에서 아주 흡사하다.

FTA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전문가들이 신문 방송에 출연해서 열변을 토하는 모습, FTA를 반대하는 그룹이 정치심장부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일 반대시위를 벌이는 모습, 협상대표단들이 마치 범죄를 공모하는(?) 사람들처럼 일반인과 격리된 공간에서 협상을 벌이고 간간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등등.

양국 정상이 전화로 대화하는 모습까지

그렇게 어수선하던 모습이 어느 날, 두 나라 정상의 전화 몇 통화로 잠잠해지는 모습까지 닮아가는 형국이다. 어디 그뿐인가, 하워드 총리의 적극 지지그룹인 호주농민협회가 미국에까지 날아가서 거칠게 시위를 벌였던 모습과 노무현 대통령 지지그룹인 진보세력이 촛불시위를 벌이는 모습도 내용면에서 아주 흡사하다.

마치 미국과의 FTA 타결을 위해서 모든 나라가 통과의례처럼 치러야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특히 전화기를 들고 대화하는 양국 정상의 보도사진은 인물만 바뀌었을 뿐 시공을 초월한 복사판으로 보일 정도다.

2004년 초, 존 하워드 총리는 호주 국민들을 향해서 "세계화의 물결이 높게 일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호주가 선택할 수 있는 티켓은 많지 않다. 특히 미국처럼 경제규모가 큰 나라를 상대로 협상하는 과정에서 다 얻을 수는 없었다. 다만 미래지향적인 협상이라는 점을 밝혀둔다"고 말했다.

반면에 그 당시 미국의 협상 대표였던 졸릭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성명을 통해서 "미국이 그간 FTA를 통해 얻은 실적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관세인하"라면서 "미국의 제조업계가 가장 큰 실익을 거두게 됐다"고 협상결과를 만족스럽게 평가한 바 있다.

과연 그랬을까? 호주-미국 FTA가 타결된 2004년 훨씬 이전부터 호주 상하양원의 FTA특별위원회 자문을 맡았던 로스 가노 호주국립대(ANU) 교수의 회고담과 현재 협상의 막바지에 이른 한-미 FTA를 비켜서서 바라본 견해를 직접화법의 형식으로 정리했다.

가노 교수가 말하는 한-미, 호-미 관계의 공통점

▲ 로스 가노 호주국립대 교수
ⓒ 윤여문
"한국 안에서는 한-미관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동북아 정세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내가 볼 때에 두 나라는 서로에게 아주 긴밀한 관계의 우방국가(an allied nation)다.

호주와 미국의 관계도 비슷하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과 상대하는 한국과 호주의 처지도 상당 부분 흡사하다. 미국이 아주 중요한 교역상대국이고,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나라다. 호주는 2005년 1월 1일부터 발효된 상태이지만….

그런데 최근 또 하나의 공통점이 생겨났다. 두 나라 간의 FTA협상이 정상들의 전화통화로 대미를 장식한다는 것이다. 호주와 미국이 FTA를 타결할 때 존 하워드 호주 총리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통화했는데, 한국과 미국의 FTA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전화통화로 마무리 될 것이라는 서울발 보도를 읽었다.

어디 그뿐인가. 존 하워드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모두 자신의 지지그룹으로부터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국의 노동계 등 진보그룹이 반대한 것과 호주의 농민연합 등 보수그룹이 반대했다는 반대주체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다만, 호주는 대미 무역 역조국가인 반면에 한국은 무역 흑자국가라는 큰 차이점이 있다. 또 하나 차이점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호주에는 수많은 로비그룹이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 쪽에서 특정한 그룹이 로비활동을 벌였다는 뉴스는 거의 접해보지 못했다."


"한국은 호주-미국 FTA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국과 미국의 본격적인 FTA협상 기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잘 모르겠지만, 호주와 미국은 형식상으로 12년(1992-2004)이 걸렸다. 그러나 2000년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특히 2002년부터 본격적인 협상이 전개됐으니 2년 남짓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10년 가까이 방치상태였던 호주-미국 FTA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은 존 하워드 총리의 최측근 인사가 미국주재 호주대사로 부임한 후부터였다. 추정하건대, 하워드 총리와 부시 대통령의 사전합의와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2년 동안의 본격적인 협상 끝에 2004년 중반 두 나라 정상의 몇 차례 전화담판으로 호주-미국 FTA(AUSFTA)가 타결됐다. 그런데 그 전화담판이 한 달 간격으로 맞물려 있었던 미국 대선과 호주 총선에서 두 정상에게 유리하게 이용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끝으로 다음 사항마저 똑같지 않기를 바라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속성과 경제구조의 특성을 감안할 때 한국도 안심할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호주는 다 주었지만 얻은 게 없고 미국만 몽땅 챙겼다(Australia took nothing, USA took everything)'는 엄정한 사실을 직시하라는 얘기다.


호주-미국 FTA는 정치적 타결이었다

지난 2004년 2월, 호주와 미국 두 나라 협상대표는 2주일에 걸친 최종협상에서 쟁점을 좁히지 못하고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존 하워드 호주 총리가 전화통화를 통해 타결했다.

호주측은 미국의 설탕시장에 대한 보호조치를 인정, 쿼터와 관세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대신 제약부문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인정받았다. 두 나라는 또 쇠고기와 낙농제품 및 농산품에 대해서는 18년간 단계적으로 무관세를 도입해나가기로 했다.

제조업 부문의 관세 인하를 통해 미국은 호주로 수출하는 물품의 99%에 대한 관세가 없어지며 호주산 상품의 97%가 무관세로 미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2002년 두 나라의 교역규모는 280억 달러였다.

잠시 호주-미국 FTA 타결 시점을 되돌아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 있다. 2004년 10월에 실시된 호주총선과 11월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가 한 달 사이로 맞물려 있었던 것.

그런데 오비이락 격으로, 바로 그 시점에서 완만한 속도로 진행되던 호주-미국 FTA협상이 갑자기 졸속으로 바뀌었다. 하워드 총리와 부시 대통령이 선거를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기 위해서 호주-미국 FTA를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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