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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한미FTA저지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농민, 노동자, 학생 등이 경찰 봉쇄를 뚫고 세종로 미 대사관 앞 도로를 점거한 채 촛불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2일 방영된 MBC <100분 토론>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자유화 광신도들의 사고방식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흔히들 협상의 손익을 따질 때 상대방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얻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분을 보호했는가를 기준으로 합니다. 그러나 이날 한미FTA 찬성 측으로 출연한 통상관료 출신 인사는 우리 것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여는 것이 협상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시장을 열어줄 경우 ▲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소비자 이익 증진 ▲ 효율적인 구조조정 촉진 ▲ 국내 산업 경쟁력 향상 ▲ 싼 수입품으로 소비자가 이익을 얻고 소비지출을 절감하면 그것이 투자로 전환될 것이라는 등의 생각입니다.

자동차산업을 포기하자고 했던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 논리의 판박이입니다. 그때 장차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게 될 중화학 공업을 포기하자던 논리가 지금 한미FTA를 추진하는 논리와 정확히 겹칩니다(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남긴 책에 따르면 당시 국보위는 소비자 혜택, 자유경쟁 등 논리로 기간산업 보호를 그만두려 했으나, 결국 그 방침은 취소됩니다).

소비자 선택권 확대라는 것은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직선제'로 좋은 상품, 좋은 기업을 가리자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경쟁력 없는 기업은 다 죽습니다. 1980년 당시 한국 소비자들의 희생으로 보호받았던 중화학공업의 씨를 말리게 됩니다. 그렇게 미래 성장 동력이 고갈되는 과정이 바로 '효율적 구조조정'입니다.

시장에서 선출되지 않을 부문, 선출되지 못할 상품들에서 자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당장 이익이 발생해) 선출될 영역으로 옮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과거 자동차 산업이 유치산업이었을 때라면, 자동차 개발에 투여될 자본이 자동차 수입유통 쪽으로 옮겨진다는 말입니다.

"소비자가 가장 좋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바로 시장이다. 소비자가 식료품점에서 상한 고기를 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소비자는 그 상점에 가지 말고 다른 상점으로 옮겨 가면 된다." (밀턴 프리드먼, <자유시장과 작은 정부>, 1994)

1980년 국보위 논리 연상시키는 한미FTA 추진론

한미FTA 찬성 측 통상관료 출신 인사는 22일 <100분 토론>에서 소비자 이익 증진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2006년 5월에 나온 우리 측 협상 초안에도 소비자 혜택 확대가 투자 자유화의 목표로 나옵니다. 종교적 광신처럼 하나의 교의에 빠진 겁니다. 1980년대 운동권이 마르크스를 교조적으로 신봉했다면, 1990년대 이후 자유화 광신도들은 앞에서 언급한 밀턴 프리드먼 같은 논리에 경배를 올립니다.

이렇게 시장선택이 냉혹하게 이뤄질 경우 국내유치산업, 중소기업, 중견기업은 자연도태되고 우리가 키워줘야 할 산업도 싹이 잘려나갑니다. 현재 기준으로 얘기하면 당장 수출경쟁력이 있는 재벌에게만 모든 자원이 쏠리게 됩니다. 경제가 절단날 겁니다.

자유화 광신도들은 우리 산업이 괴멸되고 수입품이 넘쳐나는 광경을 일컬어 '소비자 이익 증진'이라고 표현합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자유화 광신도, 소비자 주권론자들 논리대로라면 아프리카 소비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익을 누리고 있었군요.

그들 나름으론 수입품이 넘쳐날 때 국내기업이 죽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면 경쟁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기업을 보호하면 부패가 발생하고 시장비효율이 발생하고 나태해져서 경쟁력이 안 올라가는 반면, 벌판에 내팽개치면 알아서 강인하게 클 거라는 생각이지요.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이 논리대로라면 지금 우리나라에 재벌이라든가 중화학 공업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호받았으니까요. 대신에 수입품이 넘쳐났던 고가사치품 분야에선 고도의 경쟁력을 확보한 세계적 기업이 탄생했어야 합니다. 가장 보호받지 못하고 수입품만 쓰는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세계적 기업이 나왔어야 합니다.

▲ 지난 2월 12일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 20여명은 서울 명동 입구에서 한미FTA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직접 기른 무 등 농산물을 길거리에 펼쳐놓고 기습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수입품 넘치면 경쟁력 향상? 아프리카 소비자가 가장 큰 이익 누린다는 건가

자유화 광신도들의 강변과 달리, 실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유경쟁촉진론 -> 취약분야 보호 철폐 -> 구조조정 촉발 -> 취약분야 자연도태, 국내 유치산업 괴멸-> 미래성장잠재력 고갈, 재벌집중 -> 양극화 심화.

▲ 소비자 이익 증진 -> 선택권 확대 -> 시장개방, 규제 철폐 -> 중소기업 괴멸(전체 노동자의 약 77%가 중소기업 근무) -> 내수파탄, 민생파탄.


또 자유화 광신도들은 우리에게 지식역량이 부족하므로 한미FTA를 통해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면 영세한 우리 제약업체들이 복제약을 만드는 대신 신약개발에 나서 경쟁력이 향상될 거라고 합니다.

지적재산권이란 이미 지식을 소유한 지식자산가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지식무산자에 속합니다.

자산가, 즉 부자들의 권익을 강화하고 약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더욱 분발해 모두 부자가 될 것이라는 사고방식입니다. 이제 이 세상엔 복지재분배 정책도, 공공서비스도, 산업정책도 필요가 없어지는군요. 보호 없이 그냥 놔두는 게 최선이니까요. 공공서비스가 필요 없기 때문에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국립대도 법인화하려 하는 것입니다.

싼 수입품이 밀려들면 국내 산업이 위축되고 결국 임금하락으로 이어져 모두 가난해지는 건 생각하지 않고, 투자가 늘어난다고 하는군요. 내수가 위축되면 투자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듭니다.

이미 우리는 자유화에 따른 투자부진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광신도들은 여전히 자유화로 투자가 늘어날 거라고 주장합니다. 온다던 시점에 종말이 오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더욱 신심이 깊어지는 종말교 신도들을 보는 듯합니다. 이런 걸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라고 하지요.

자유화 광신도 논리의 귀결, 성장잠재력 고갈·양극화 심화·민생파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1993년부터 국가운영기조가 이런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관료들이 이른바 '개혁'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도에 정보통신부가 중소기업 보호 업종인 연하장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중소기업들은 곧 부도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에 항의하는 목소리에 대해 정보통신부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 국가이며, 이는 시장에서 자유경쟁을 기본으로 한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세계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이고, 국경 없는 무한경쟁시대가 됐다. 중소기업이라고 무조건 보호해주던 시대는 지났다. 우편연하장 발행을 중단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서 시장을 확보하라." (최원룡, <중소기업 죽이기>, 1995)

▲ 한덕수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참으로 무서운 국보위의 논리이자 한미FTA의 논리입니다. 한덕수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은 26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가 어느 분야를 막아주고 규제하고 보조금을 퍼붓고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자유경쟁을 통해서만 우리가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자유화 광신도들은 자신들의 개혁으로 한국사회가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지, 파탄이 났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면 앞으로도 더 좋아질 거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1993년 이후 지금까지 삶이 과연 더 나아지는 흐름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광신도 관료들은 별나라를 노닐고 있습니다.

1995년에도 그랬습니다. 1993년 자유화 개혁 이후 1994년부터 곧바로 사상최대의 중소기업 부도사태가 터집니다. 전문기업 인켈도 이 당시 쓰러졌습니다. 이 상황을 자유화 광신도들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부도를 내는 중소기업보다는 창업하는 신설 중소기업이 더 많아 전체 중소기업 숫자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이 쓰러지는 것은 구조조정 과정의 일환일 뿐이다."

"한계기업들은 가차 없는 부도를 내고 있지만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어요." (박재윤 당시 통상산업부 장관) (최원룡, <중소기업 죽이기>, 1995)

중소기업 부도사태, 구조조정 아니라 몰락이었을 뿐

이런 게 한미FTA 추진 측이 말하는 시장질서에 의한 구조조정 논리입니다. '경쟁력 없는 부문을 생존시키려 억지로 재원을 쏟아 붓는 것은 낭비다, 시장 직선을 통해 한계부문은 퇴출시키고 경쟁력 있는 쪽으로 자원을 몰아주면 국가경제는 윤택해질 것이다'라는 논리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발전해 강박증이 됐고, 그것이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마저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부도사태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몰락'이었을 뿐입니다. 자유화 광신도들이 주장하는 자원의 효율적인 이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기업 집중 심화, IMF 파탄으로 가는 쪽으로만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났을 뿐이지요.

망하는 기업보다 신설기업이 더 많다는 것은 기존 중견기업이 망하면서 종사자들이 저마다 영세창업을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경제지표로만 보면 활발히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망했습니다.

자유화 개혁 추진자들이 항상 모범으로 생각하는 미국은 약자에게 냉혹한 사회입니다. 1998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 4400만 명입니다. 그들은 약자에게 냉혹해야 자신들이 더욱 분발해서 경쟁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결국 나라를 말아먹을 사고방식입니다. 우리의 경제발전사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유치부문을 보호해 경쟁력을 키웠습니다. 개방하고 경쟁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는 통상경제 관료들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과거에 그렇게 보호해 경쟁력이 생긴 대기업들은 이제 한미FTA를 해도 됩니다. 대기업을 키울 동안 보호받지 못한 부문들은 여전히 허약합니다. 자유화 광신도들은 그 허약한 부문을 규제철폐, 자유경쟁으로 발전시키자고 합니다.

그래서 1990년대에 자유화를 했더니 1차적으로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한국의 중소기업, 부품공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육성해야 할 시점에 정부가 손을 놓은 결과입니다. 금융위기 후 우리 금융산업을 선진화한다며 더 개방했습니다. 그러자 시중은행 지분의 60%가 외국으로 넘어가는 사태가 터졌습니다. 은행경영이 단기화하고 그에 따라 경제체질도 변했습니다(저성장 저투자 양극화).

자유화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은 지적재산권에서 극에 달합니다. 한국의 문제는 선진국과 지식격차를 아직 좁히지 못하고 있는데 중국이 뒤에서 쫓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광신도들은 지적재산권 강화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의 지식격차는 지금보다 더 커집니다(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지적재산권 강화로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게다가 자유시장 논리에 따라 쌍용자동차를 중국에 넘겨버렸습니다. 강력한 후발 경쟁자에게 핵심 산업 기술을 넘긴 것입니다. 선진국과의 지식격차는 더 넓어지는데 후발경쟁자에겐 기술을 그냥 줬습니다. 자살입니다.

쌍용자동차가 넘어가면서 중국의 부품공업이 한국 수준의 부품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중국이 완제품 분야에서 크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린 부품 공업을 고도화해 중국이 우리 부품을 사서 쓰게 해야 하는데 거꾸로 얼마 안 있으면 우리가 중국의 부품을 사서 쓰게 생겼습니다. 자유화 광신의 결과입니다.

한미FTA, '개방 강박증'의 산물

▲ 김종훈 한미FTA 협상단 한국 측 수석대표.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미 시중은행 지분의 60%가 외국인 손에 넘어가고 배당, 자사주 매입 등으로 국부가 탈취당하는 상황인데도, 자유화 광신도들은 우리나라가 지금 '쇄국' 상황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은행을 이렇게 넘길 정도로 개방한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멕시코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이 '쇄국' 상황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말라도 자신이 뚱뚱하다며 죽을 때까지 굶는 강박증 환자들을 보는 듯합니다.

"중소기업 지원책은 마약과 같은 부작용을 낳았다. 중소 부품업체들의 기술수준이 낮아 자동차 등 완성품의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운서 전 YS정부 통상산업부 차관) (최원룡, <중소기업 죽이기>, 1995)

기술수준이 낮을 경우, '보호해서 키우자'고 하는 게 상식입니다. '내버려두면 알아서 크겠지' 하는 식으로 무조건 문부터 열고 보자는 자유화 광신도들의 논리는 한마디로 몰상식한 주장입니다.

상식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한미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식으로 재현됐습니다. "그 말씀은 (중략) 미국 소비자들이 한국 영화를 안 본다는 말씀이시죠? 그럼 한국 영화계가 미국 소비자들이 볼 만한 영화를 만들면 될 것 아닙니까." (김종훈 한미FTA 협상 우리 측 수석대표)

이런 사고방식이 만연하면 점점 약자에게 냉혹한 사회로 변해갑니다. 사회적 약자에게만 냉혹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약자, 즉 보호를 통해 장래 성장할 수 있는 부문에까지 냉혹하게 됩니다.

예전에 현대자동차를 만들 때 국가는 현대자동차에 중소기업의 기술력 향상을 위해 기술 지도를 '명령'했습니다. 중소기업 제품도 사서 쓰라고 했습니다. 자유화 개혁은 그 명령을 취소하고 재벌에게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지금의 파탄 상황이 왔습니다. 재벌과 경제지표만 저 혼자서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한미FTA는 1990년대 이래 자유화 기조를 계승합니다. 1990년대 이래 우리가 당한 건 중소기업 괴멸, 민중생존권 파탄, 경제 활력 저하, 내수 실종, 양극화, 지방공동화, 사회적 혼란과 고통에 따른 정치적 우경화입니다. 그 대신 우리가 얻은 건 사상최대의 수익을 얻는 재벌과 은행, 그리고 그들을 점령한 외국자본, 공허한 경제지표입니다.

개방으로 경쟁력이 강화됐다는 유통업에선 자영업자들, 기존 유통업자들, 그 안에서 물건을 팔아 생존하던 중소기업들이 모두 괴멸한 대신 재벌 대형 유통매장과 그곳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얻었을 뿐입니다.

1990년대 이래 지금까지 상황을 좋다고 인식하게 하는 모종의 사고방식, 한국이 지금 쇄국상황이라 더 개방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한미FTA를 추진하는 힘입니다. 광신이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태그:#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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