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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운교 본부 입구
ⓒ 김유자

유.불.선 합일을 지향하는 민족종교인 수운교

혹시 수운교에 대해 아세요? 일반인에게 생소한 종교인 수운교는 불교도 아니고 유교도 아니고 선교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운교는 동학을 일으킨 수운 최제우를 교조(敎祖)로 하며 하느님을 숭배하는 종교랍니다.

@BRI@1923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도를 깨닫고 각지를 순례하던 이상룡이란 스님이 불교를 토대로 하되, 수운 최제우를 부처의 후신이라고 하여 그를 교조로 받드는 수운교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때는 증산도나 원불교 등 신흥 종교들이 한창 발흥하던 시기였지요. 일제 침탈이 한창이던 때였으니 무언가 삶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민중들의 갈망에 부응하려는 움직임이겠지요.

수운교는 처음에 본부를 서울에 두었지만 교조 문제로 천도교와 틀어져서 대전으로 옮겼습니다. 수운교 본부는 계룡산에서 동북쪽으로 30리가량 떨어진 금병산 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13일에는 오랜만에 수운교에 가보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수운교로 들어가는 들머리 길에는 수 백여 그루의 소나무가 늠름하게 서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를 걸어가니 솔잎 향기가 솔솔 풍겨 옵니다. 500m가량 이어지는 울창한 솔밭을 지나면 수운교 표지석이 나오고, 마침내 병풍을 두른 듯한 금병산 자락 아래 그림 같은 수운교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 수운교 전경
ⓒ 김유자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이지만 하마 트면 이곳에서 쫓겨날 뻔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육군대학교, 공군대학교 등 군 교육시설이 있는 자운대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탓에 5공 시절이었던 1983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철거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는군요.

그러나 법정소송 등 적극적인 대처를 통해 기어이 이 자리를 지켜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풍치 좋은 곳에서 떠나라고 한다면 이 세상 누구라도 젖 먹던 힘을 다해서 지켜내려고 항거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수운교 종각
ⓒ 김유자
▲ 종가각안에 있는 범종. 타종소리가 은은하고 오래 지속되도록 명동(鳴洞)을 깊게 팠습니다.
ⓒ 김유자
도솔천으로 들어가는 문인 광덕문에 들어서기 전 먼저 왼쪽에 자리한 종각에 들릅니다. 높은 화강암 기단 위에 육각모양의 다포계 건물로 지어진 종각 안에는 커다란 범종이 들어 있습니다.

종구의 밑바닥에는 타종소리가 은은하고 오래 지속되도록 명동(鳴洞)을 깊게 팠습니다. 이 범종이 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해 저물녘 금병산 아래 퍼지는 종소리는 얼마나 은은하고 고울까를 상상해 봅니다.

▲ 천단 정면에 있는 광덕문
ⓒ 김유자
▲ 광덕문 지붕위에 있는 잡상
ⓒ 김유자
절로 치면 대웅전 격인 도솔천에 들어가려고 광덕문으로 향합니다. 지붕에는 복궁 건물들처럼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형상화한 잡상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잡상은 귀신을 쫓고 궁궐의 위엄을 표시하기 위해 궁궐 지붕에 올리는 작은 흙 인형입니다. 잡상은 기와지붕에 변화를 주고 추녀마루의 멋을 주며 바라보는 이에게 시각적 즐거움도 안겨줍니다. 궁궐이 아닌 이곳에 잡상이 설치된 것은 아무래도 이곳을 지었다는 분이 궁궐 짓던 편수였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도편수 최원식이 지었다는 도솔천

▲ 수운교 도솔천. 광덕문 지붕처럼 도솔천 지붕에도 잡상이 있습니다.
ⓒ 김유자
▲ 도솔천 천단과 위패
ⓒ 김유자
잔디가 깔린 정원 안의 한 가운데 박석이 깔린 길을 따라서 높은 단위에 위치해 있는 도솔천을 향해 갑니다. 광덕문으로 들어서면 눈앞에 천궁 또는 천단이라고도 부르는 도솔천이 마치 지평선에서 달이 둥실 떠오르듯이 웅자를 드러냅니다.

경복궁을 중건한 도편수 최원식이 지었다는 도솔천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이긴 하지만 조선후기의 건축 못지않게 균제미가 있는 아름다운 건축입니다.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 호인 도솔천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특이한 것은 음양의 원리에 따라 60갑자의 천간 10수를 반영해 기둥이 10개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문살에 조각된 도깨비 문양과 처마 밑에 오색단청을 칠한 것은 사찰건물과 많이 닮았지만 지붕은 궁궐 건축처럼 12지 신상을 배치해 위엄을 강조하고 있는 독특한 건물입니다.

도솔천의 우협간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서면 온갖 장식으로 가득 찬 내부가 펼쳐집니다. 저는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낯선 풍경에서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중앙에 금단색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된 '하날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천단이 있는데 그 좌우에는 적색과 분홍색의 원반형이 있습니다. 해와 달의 형상을 닮은 원반은 창시자인 이상룡과 교조인 최제우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단 앞에는 단군, 석가, 노자, 공자 등 4성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건립초기에는 일제시대여서 단군 위패를 모실 수 없어 해방이 되고 난 후 모셨다고 합니다.

천단 왼쪽과 오른쪽에는 금빛 나는 금강탑과 무량수탑이 서 있습니다. 중앙에도 미타탑이라는 탑이 있었는데 일제에 빼앗겨 아직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불선이 합쳐진 공간인 천단은 수운교의 성격을 집약해 놓은 곳이라 할만합니다.

▲ 수운교 석종
ⓒ 김유자
도솔천 왼쪽에는 개구리 모양으로 된 석고라고 하는 바위가 있습니다. 현재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돼 있는 이 석종은 수운교 한 신도가 현몽을 통해서 얻은 돌북이라는데 돌로 치면 쟁쟁 쇳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두드리는 부위에 따라 약간씩 다른 쇳소리가 난다고 하며 세계 평화와 종교 통일의 날을 다가올 때 크게 울릴 것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지만 도솔천 오른 쪽에도 이와 비슷한 형상의 돌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른쪽 석종 옆 계단을 내려와 샘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우측 용호문을 나서 2300m가량 떨어진 법회당 영역으로 다가갑니다.

법회당은 법회를 여는 강당으로 단의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그리고 약사여래불을 모셨습니다. 1934년 8월 조성된 이 삼불상은 처음에는 천단에 봉안했으나 1936년 법회당 준공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법회당 뒤에 있는 용호당은 이상룡이 정양하던 집으로서 1926년 지어진 수운교본부에 있는 건물 중에선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상룡이 별채와 같이 사용하면서 거처했던 봉령각은 가장 높은 곳에 외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1929년 도솔천궁과 동시에 건축된 건물로 금병산 기슭에 목조건물로 지어졌는데 안타깝게도 1939년 화재로 말미암아 본래의 건물은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수운교 석종이 크게 울릴 그날을 기다리며

수운교는 천도교와 같은 동학계열이지만 신앙내용에서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천도교가 의식을 간소화하고 현대화한 반면 수운교는 아직도 의례나 신앙대상에 있어서 불교적 습속을 고수합니다. 수운교는 불교인으로 알려진 나옹화상을 받들고 있고 육식을 피할 뿐 아니라 부처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가히 종교백화점이라 할만 하지요. 그러나 국민 화합과 사회 통합에 기여해야할 종교가 배타적이고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크게 조장하지는 않나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불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으면서 국조 단군은 물론 노자, 공자까지도 모시는 유불선 합일을 주장하는 수운교의 존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은 듯 합니다. 비록 수운교 신자는 아니지만 세계 평화와 종교 통일의 날을 다가올 때 크게 울린다는 석종의 전설이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기원하며 금병산 자락을 나섰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대덕I.C →원자력연구소 삼거리에서 좌회전→자운대→자운대 쇼핑타운→수운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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