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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전국공무원노조 서울본부 조합원들이 '강제할당, 구조조정 저지'의 목소리가 담긴 투쟁구호를 외치고 있다.
ⓒ 공무원노조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무능력한 공무원을 퇴출시킬 목적으로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길들이고 줄을 세우려는 검은 의도가 숨어있다"며 반발하고 있어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추천 못받으니 쓰레기 수거... 여기서도 점수 나쁘면 퇴출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무원 퇴출 태풍을 몰고 온 것은 울산시와 울산 남구청. 울산시는 5·6급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국장들이 각 부서에 적합한 사람을 추천토록 했다. 여기서 추천받지 못한 4명의 공무원을 올해 1월 '현장시정지원단'에 배치했다.

이들에게는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오던 시내버스 교통량 조사, 쓰레기 수거 작업 등의 업무가 주어졌다. 사무관 A씨에게는 재활용품 분리작업을 하는 등 환경미화원의 업무보조 역할이 맡겨졌다. 1년간 평가를 통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공직사회에서 밀려나게 된다.

강원도 김진선 지사와 행정·정무부지사는 2일 국장급 간부 21명과 '직무성과계약'을 맺었다. 업무성과가 좋을 경우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못하면 책임을 묻겠다는 것. 울산시의 현장시정지원단과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틀은 일맥상통 한다.

서울시는 8일 실·국장 직권으로 불량 공무원을 선발해 다음달까지 '현장시정추진단'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울산시와 비슷한 형태지만 파장은 더욱 크다. 온정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퇴출 후보군을 직원의 3% 내로 제출토록 강제 할당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6일 능력과 성과 위주의 인사제도를 구축한다며 인사운영계획을 마련해 발표했다. 특히 '공무원 삼진아웃제'를 도입해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단순 업무, 전출, 재교육 등을 시키고 3차례 연속 기피공무원으로 선정되면 면직 등 퇴출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인천, 대전시, 충남도, 경남 마산시, 전남 곡성군, 전북 전주시, 경기도 성남시 등 20여 곳이 넘는 지자체에서 무능 공무원 퇴출제도를 시행을 발표하거나 도입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찬성] "'배째라' 인원 걸러 국민에 봉사하려는 것"

▲ 12일 오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피켓.
ⓒ 공무원노조
'현장시정지원단' 운영에 대해 최병권 울산시 자치행정국장은 12일 전화통화에서 "조직에서 필요한 사람을 걸러내고 불필요한 인원은 털어내 국민에게 진정으로 봉사하려는 것"이라며 "서울시의 선발 방식(3% 할당)은 구조조정이며,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걸러내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긍정론자들은 공직사회에 적합하지 못한 공무원을 퇴출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또한 경각심을 심어줘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행정 서비스의 질도 개선하고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공무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능력과 실적, 직무중심으로 공직사회를 변화시켜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며 "공무원들을 차별화해 경각심을 심어주고 능력에 따라 평가를 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행정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최영출 충북대교수(행정학과)는 12일 전화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취지에 맞고 필요한 제도"라고 전제하고 "지자체 공무원 중 80% 이상이 6급으로 퇴직한다"며 "임기를 3~4년 남기고 사무관 승진을 포기하거나 못한 BJR(배째라) 공무원들은 단체장이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한 "평가시스템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가 제도정착의 관건"이라며 "단체장이 선거에 의해 결정되다 보니 자칫 줄세우기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평가에 외부 전문가나 시민단체 등을 참여시켜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의 경우 섣부른 공무원 퇴출 조치가 오히려 안정된 조직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판단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석은 경기개발연구원과 대학교수들로부터 자문과 의견을 수렴하고 내부 논의를 거쳐 내린 결과라는 것.

[반대] "주관적 평가로 줄세우기, 깡패같다"

▲ 새로운 인사제도에 반발한 서울시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9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서울시공무원노조
그러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아래 공무원노조)은 새로운 인사제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경기본부 시흥시지부는 9일 논평을 통해 "공직 부적격자 퇴출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제도로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허구"라며 깎아내렸다.

시흥시지부는 논평에서 "(실·국장들의)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공무원들을 길들이기 위한 제도로 전락되고 있다"며 "깡패들처럼 말 안 듣는 조직원을 전체가 보는 앞에서 무지막지하게 폭행해 조직에 충성을 강요하는 행태와 같다"고 평했다.

시흥시지부는 또한 "현 법·제도에서는 징계 등 불이익을 받으면 소청이나 행정소송을 할 수 있다"며 "그러나 새 제도는 인사권에 의한 인력배치에 해당해 당사자들은 자기방어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빼앗긴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인사제도는) 군사독재 정권시절의 삼청교육대나 보호감호처분과 같은 것"이라고 전제하고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인권유린과 공포정치가 가능한 제도다, 마녀사냥식 퇴출로 이어져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히는 반인권적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다음날인 12일, 안병순 공무원노조 서울본부장은 서울시 '현장시정추진단' 구성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조직 내 불안감을 조성해 행정능률을 떨어뜨리고 공직사회를 파괴하는 정책"이라며 "고위공무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대상자가 선정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비난했다.

이어 "3% 할당은 구조조정을 강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국민을 위한 공무원이 아닌 지자체장과 고위공무원들의 사병으로 전락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고 분석했다.

안 본부장은 "새로운 인사제도와 유사한 인사풀제가 98년 시행됐다가 문제점만 남긴 채 결국 폐기처분됐다"며 "공공행정서비스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강력하게 싸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어 13일 오전 임승룡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고위공무원과 인맥이 없는 공무원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며 "하위직 공무원만 겨냥한 구조조정계획을 즉시 중단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사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요구했다.

임 위원장은 이어 "최초 발표에선 '모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5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에게만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며 "1급 이하 모든 직급으로 확대시키고 세금만 축내는 4급 이상 무보직 공무원의 구조조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제도에 의한 무능공무원 퇴출은?

▲ 9일 오전 시울시공무원노조 소속 조합원이 시청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서울시공무원노조
충북도 한 지자체 인사부서 공무원 A씨는 "현재 있는 법과 제도로도 무능공무원에 대한 퇴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새로운 인사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지자체마다 퇴출 대상자로 무능하고 비위가 있는 공무원을 꼽고 있다. 이들은 해마다 실시되고 있는 감사기능으로 걸러낼 수 있다는 것.

A씨는 "감사결과에 따라 공직사회에서 퇴출시키는 파면에서부터 견책까지 불이익을 줄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무능 공무원을 가려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각 행정기관은 매년 종합·부분·기강·복무감사 등 상급기관이나 자체적인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감사팀은 능력을 인정받은 베타랑 공무원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감사기능을 보완해 제대로 가려낸다면 무능공무원을 걸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공무원법 제65조 규정에 직무수행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성적이 극히 불량한 자 는 인사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3개월 이내의 기간으로 대기발령할 수 있다. 또한 같은법 제62조 규정에는 대기명령 기간 중 능력 또는 근무성적의 향상이 기대하기 어렵다고 인정된 때는 직권면직시킬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A씨는 "법에서 외부전문가와 공무원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의 의견을 듣도록 한 것은 고위공무원의 주관적인 평가를 경계하기 위한 장치"라며 "고위공무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정추진단'은 실패한 정책이고 더욱이 3%를 강제 할당한 것은 해바라기 공무원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불던 무능공무원 퇴출바람이 태풍으로 돌변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제도 정착을 위해 풀어야할 숙제들이 많다. 독립적인 인사위원회 운영과 보다 많은 외부전문가들의 참여, 밀실에서 진행되는 인사운영 상황에 대한 공개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사기준의 투명성·객관성 확보가 새로운 인사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방향타가 되고 있다. 새로운 인사제도에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하위직 공무원들의 숨통을 쥐고 있는 자치단체장과 고위공무원들이 이를 악용해 수족으로 삼으려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화영 기자는 공무원노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노조#공무원#퇴출#시전지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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