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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인 원희룡 의원, 고진화 의원,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박근혜 의원이 9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대선필승대회 및 정책세미나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균형이 무너진 게임은 재미가 없다. 지금의 정치판이 꼭 그 모양새다. 범여권(지금은 범여권이라는 이름 붙이기도 민망하다)은 그럴만한 대선 주자를 내놓기는커녕 아예 진용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한나라당 후보를 뽑는 것이 대선 보도의 주요 관심사가 돼 버렸다.

한나라당 경선준비위원회가 이번 주말(17일)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는 알 수 없으나,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그 이후가 더 걱정인 모양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원희룡 의원은 벌써부터 경선준비위 불참을 선언했다. 이대로 간다면 그들의 경선 불출마 선언도 예정된 수순이다. 박근혜·이명박 두 유력 주자들이 과연 당이 마련한 경선 규칙에 동의할지도 지금으로서는 미지수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이 꼭 후보를 한 명만 내란 법이 어디 있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무너진 지 오래인 언론과 대선주자들 간 균형

균형이 무너진 것은 정치판만이 아니다. 언론과 대선주자들 간의 균형도 무너진 지 오래다. 한창 후보 검증에 바빠야 할 언론이지만 검증에 바쁜 언론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나라당 안에서 검증 논란에 불을 지펴도 도대체 지펴지지가 않는다. 대다수 언론들의 외면 때문이다.

어떤 신문들은 "한나라당, 지금 제 무덤을 파려 하느냐"고 오히려 한나라당의 검증 논란에 쐐기를 박는다. 한마디로 '소방수 언론'이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입장에서도 참 난감한 일이다. 언론이 대신 해주었으면 하는데, 언론들이 꿈쩍도 하지 않으니 말이다.

어디 검증뿐이랴. 경선 출마를 선언한 고진화 의원 같은 이는 언론들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하소연이다. 언론의 관심이 박근혜·이명박 두 대선 주자들에게만 쏠려 있다는 불만이다. 기자들이 아무리 기사를 써도 자신과 관련된 기사는 도대체 지면과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종의 '담합의혹'까지 제기하는 형국이다.

유력 후보군에 끼지 못한 열세 후보들이 매번 겪는 '차별'이자 '서러움'이지만 그 정도가 그 여느 선거 때 보다 심해 보인다. 어쨌든 한나라당의 다수 대선 주자들에게, 그리고 한나라당에게도 누구 말을 빌리자면 "참, 나쁜 언론"이다.

대선 보도 대신, 대선 마케팅 보도로?

@BRI@그런 점에서 대선 주자에게 한 면을 할애한 <한겨레>의 '열린 지면'(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기고-'3무3강' 교육혁명 주창하며-사회적 교육대협약 맺어 개천서 용나는 세상으로)은 환영받을 만하다. 특히 언론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주자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한겨레>가 대선 주자들에게 한 면의 지면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손학규 전 경기지사(대장정을 통해 본 2006년 민심)에 이어 12월과 1월에는 각각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중국에서 미리 만난 '열차 페리')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한반도의 대운하를 꿈꾸며)의 글을 실었다. 앞으로도 다른 대선 주자들이 글을 보내오면 최대한 '원문 그대로' 실을 방침임을 밝혀두고 있다.

아마도 대선 주자들에게 이처럼 통째로 하고 싶은 말을 다하도록 지면을 할애한 것은 전에는 없었던 일인 듯싶다. 공격적 인터뷰 등 찾아가는 대선 보도 대신 찾아오도록 하는 대선 마케팅 보도로 바뀐 것일까?

물론 <한겨레>의 지면은 대선 주자들의 정책적 소견을 비교적 소상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얼마 전 한 때 유행했던 대선주자 24시간 '동행 취재' 혹은 '동행 인터뷰' 보다 더 내실 있는 포맷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썩 유쾌한 일은 아닐 성 싶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야 원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언론인 출신이니, 직접 그가 쓴 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대선 주자들 글은 '대필'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책 소개를 위주로 하는 것인 만큼 누가 썼느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쓰지 않은 글이라면 그것을 그의 '이름'으로 신문에 싣는 것은 독자들에겐 '기만'일 수 있다. 정치가 '글의 정치'가 아니고 '말의 정치'인 것은 그나마 육성이 '정치인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활발한 검증 벌이는 미 언론... 한국 언론도 검증 미뤄선 안돼

시시콜콜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면 한 면을 대선 주자들에게 통째로 '대여'하는 언론의 모습은 언론과 정치인(대선주자)들의 역전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더구나 언론의 대선 주자 검증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태여서 더 그렇다. 비단 검증 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북한 핵문제를 비롯해 한미FTA, 개헌 등 차기 정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굵직굵직한 쟁점들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이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견해와 입장을 또렷하게 드러내주는 기사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겨레>는 마침 오늘(13일) 국제 면에서 미국과 일본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치인 검증 기획(특파원 보고/ 정치인 검증, 미·일은 어떻게 하나-추적보도·여론조사 '정치인 검증 쌍권총')을 실었다. 대선이 1년 넘게 남은 미국에서는 이미 활발한 후보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의 언론 또한 이를 미룰 일이 아니다.

범여권의 후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한나라당 주자들만을 놓고 이뤄지는 검증이라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대선 주자들로서 일거수일투족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이점을 고려한다면 지금으로선 형평의 문제 또한 대선 주자 개개인별로 측량할 일이다. 범여권 후보는 그 윤곽이 드러나면 그 때 가서 또 '집중'하면 될 일이다.

태그:#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백병규, #미디어워치, #조간신문 리뷰, #후보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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